[멀린's 100] 졸업, 하겠습니까?

in #stimcity2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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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부는 곧 잉여입니다. 남는 것 말이죠. 필요한 것이 아니고. 공간의 잉여가 기본이긴 하지만, 요즘은 오히려 공간의 잉여는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것 같습니다. 넓은 땅 놔두고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로 못 기어들어 가 안달이 났으니까요.



열망은 시간의 잉여입니다. 인생의 소명, 삶의 성취로서의 노동은 간데없고 오로지 졸업! 졸업! 어서 빨리 은퇴할 수 있는 잉여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모든 이들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그 시간 모아 뭘 할까요? 얼마를 모으면 그 시간을 살 수 있을까요? 그게 얼마든지, 졸업을 바라는 이들의 목표는 일하지 않고 남은 여생을 평균 이상의 수준으로(그게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어쩝니까? 기대수명이 자꾸 늘어나니. 이러다 영원히 살게 되면 어떡하죠? 졸업은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마법사가 어렸을 때는 어떤 노인이 70세라고 하면 장수하신다 했는데 지금은 아직도 청춘입니다. 100세를 사는 시대니. 늘어나 버린 30년의 잉여는 아마도 이분들이 예상했던 기대수명과 크게 어긋나고 그것에 맞춰 준비되었던 잉여자금과는 더더욱 불일치할 겁니다. 큰일 났습니다. 다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그런가요? 평균수명이 늘어나니 노인들이 막 굶어 죽나요? 그럼 평균수명이 늘어나지도 않았겠죠. 아니요. 아무도 안 죽습니다. 자꾸 더 오래 삽니다. 그래서 노령 인구는 많아지고 오히려 젊은 인구들이 마구 줄어들고 있습니다. 자살은 두 세대에게 공통적입니다.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과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나은 사람들이 두 세대를 모두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졸업'을 즐기는 이들은 몇이나 될까요?



시간의 잉여를 사려고 현재의 축복을 보류하는 것이 이 시대의 보편적 삶입니다. 그 임무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시도는 이단이고 오로지 그 임무를 최대한 빨리 완수하려는 생각과 시도만 유효합니다. 그리고 이제 모두 압니다. 노동소득으로는 졸업이 절대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대의 투자 계좌는 마구 불어나고 있습니까? 노동소득을 초월한 잉여의 증가를 마구 증명하고 있습니까? 노동소득은 예측이나 가능하지 투자소득은 참으로 변화무쌍합니다. 오로지 운! 운! 에 달려 있으니 세력과 고래의 은총으로만 가능한 그것, 운 좋은 줄서기만이 유일한 졸업의 수단이라면 어떻게 졸업합니까?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시간의 잉여를 추구하는 일은 어리석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발달하는 과학기술과 문명의 발전은 우리의 예상 속도를 언제나 초월합니다. 게다가 한국 정도의 선진국이라면 굶어주는 일은 이제 불가능하기까지 합니다. 국가가 사회가 죽지도 못하게 합니다. 죽는다구요? 소비는 누가 하구요? 애 안 낳는다고 난리인 사회에서 사람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데 죽도록 놔둔답니까? 게다가 인권이란, 호흡만 겨우 붙어 있는 사람도 함부로 호흡기를 뗄 수가 없습니다. 누가 감히 생명의 중단을 결정한답니까? 소비는 누가 하구요? 의료비를 누구든 발생시켜야 병원도 먹고 살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머지않은 미래에 인류는 영원히 살게 될 겁니다. 사이보그든 트랜스 휴먼이든 무엇으로도 인간은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더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겁니다. 그대는 예외일까요? 그러면 얼마를 모아야 졸업하겠습니까? 졸업, 할 수는 있겠습니까?



시간의 잉여를 확보하려는 노력만큼 헛된 게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죽음은 어제도 수많은 도로에서 대상자를 찾았습니다. 다리도 무너지고 건물도 무너지는 세상에 내일도 나의 삶이 존속할 거라는 예상은 참으로 비현실적이지만, 이런 말은 이제 너무 식상해 관두겠습니다. 그냥 시간의 잉여만큼 허무맹랑한 게 없다는 말이 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시간의 잉여 말고 시간의 실존을 경험하자는 겁니다.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사는 것 말입니다. 아, 이건 더 식상합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이거 얼마나 고리타분한 말입니까? 내 생각과 욕심, 불안이 모두 내일에 붙들려 있는데 어떻게 현재를 즐깁니까. 그러나 이것만큼 정답이 또 없습니다. 잉여가 아닌 지금의 필요를 위해 사는 것 말이죠.



졸업하면 뭐할 겁니까? 세계여행 갈 겁니까? 매일 매일 편안하게 카페에 앉아 읽고 싶은 책 읽고 싶습니까? 방바닥에 누워 딩굴면서 웹툰 보고 싶습니까? 외제 차 타고 골프 치고 명품 사고 매일 비싼 거 먹고. 그거 지금 하면 안 됩니까? 그거 지금 못합니까? 그거 하고 파산하면 안 됩니까? 어쨌든 해봤잖습니까? 매일 매일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을거라구요? 해보기 전에는 그렇죠. 뷔페 가기 전 마음이 나온 뒤에도 똑같던가요? 그게 맨날 재미있을까요?



세계여행하는 데 돈 얼마 안 듭니다. 그대가 생각하는 졸업 자금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입니다. 그대가 미래의 수익을 위해 기어들어 간 아파트 팔면 세계여행 10번, 100번은 합니다. 그러면요? 그리고 돌아와서 뭐 먹고 사냐구요? 안 굶어 죽는다니까요. 못 굶어 죽는다니까요. 사회가 가만두지 않는다니까요. 그렇게 남은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구요? 그러면 어떻게 살고 싶은데요? 매일 지옥철 타고 출퇴근하면서, 그래도 내일은 뭐가 더 잘 되겠지 그러면서 상사, 동료 뒷담화나 까는 삶이 재밌습니까? 아, 이런 얘기도 지루합니다.



공간의 잉여를 위해 자본을 모으는 거라면 차라리 낫습니다. 오래 살 건데 그대가 살 공간이 자꾸 넓어질 테니 그만큼 쾌적해지겠죠. 부유해지겠죠. 그런데 그걸 꼭 내 이름으로 가질 필요는 있겠습니까? 공원이 저렇게 넓은데 어디든 가면 같은 햇살에 같은 자연을 느낄 텐데. 그걸 관리해가면서까지 가질 필요 있겠습니까? 죽도록 고생해서까지 가질 필요 있겠습니까? 그게 원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러나 오늘 이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을 유보하지 않고 시간의 잉여가 아니라 이 순간의 필요를 위해 돈이 필요하다면 그건 어떤 노동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돈 벌어 하고 싶은 걸 하는 것 말입니다. 그것이 필요한 만큼 버는 것 말입니다. 그건 보상이 분명하니까. 그런데 시간의 잉여를 위해 하는 고생, 그게 끝나겠습니까? 인간의 수명이 자꾸 늘어나는데, 벌면 그것보다 두세배 더 늘어날 텐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게다가 물가는요? 화폐가치의 하락은요? 투자로 벌충하면 된다구요? 그대가 고랩니까? 세력입니까? 근데 세력은 왜 그러고 있을까요? 이미 졸업 따위 수백번 할 만큼 벌었을 텐데 왜 허구한 날 펌핑하고 덤핑하고 지랄일까요? 그게 재미있나 보죠. 그게 세력이 즐기는 현재 가치입니다.



그러니까 고래가 세력이 즐기는 것도 잉여가 아니라 현재입니다. 그 하락의 맛, 상승의 맛. 현재를 즐기는 이를 잉여 따위 나불대는 불안한 인간이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그러니 그대도 현재를 즐기면 됩니다. 그게 대체 뭡니까? 졸업 말고, 잉여 말고, 지금, 지금 그대가 원하는 그것 말입니다.



그게 있을 리가 없습니다. 언제나 미래의 잉여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혀 온 인생. 오늘 뭐하고 싶은지 알 리가 없습니다. 그런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시간의 노예로 살아가는 겁니다. 자신의 오늘을 모두 내다 팔고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시간의 잉여만을 쫓다가 죽지고 못하고 숨만 쉬는 게 지겨워 사라지는 겁니다. 제 스스로.



오늘을 계속 만족시켜 왔다면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겁니다. 얼마를 살았든 만족하며 살았을 테니까요. 그런 삶은 좀 보기가 어렵긴 합니다. 그대들은 열심히 외면했을 테니까요. 그거 얼마나 허무맹랑합니까. 쓸데없는 소리라고 치워버렸을 테니. 그대들의 시야에는 운 좋은 놈들의 가짜 자기계발서들만 눈에 밟히는 겁니다. 저걸 안 해서 내가 이 모양인가 하고 말이죠.



시간의 잉여를 쫓지 마십시오. 잉여는 먹고 남는 게 잉여지, 굶어가며 모은 것으로는 쌓을 수가 없는 법이니까요.







[멀린's 100 (seaso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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