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킹 암살

in #kr6 years ago

1968년4월4일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1967년 4월 4일 킹은 이런 연설을 통해 미국 정부를 불편하게 했다.

"전쟁이 흡혈귀처럼 사람들의 기술과 돈을 흡입하는 한, 미국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 자금 또는 힘을 결코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 전쟁에 반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전쟁은 가난한 사람들의 아들, 형제, 남편들을 전쟁터로 보내 싸우다 죽게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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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순한 평화적 인권 운동가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반전운동가로서 킹 목사가 대중 앞에 섰을때 미국 정부는 크게 동요한다. 기왕에 달라붙어 있던 FBI는 더욱 도청과 감시를 강화하고 킹 목사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도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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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적 방법을 고수하는 온건한 흑인 목사와 자유를 위한 전쟁에 반대하고 가난한 이들이 무엇을 위해 전쟁터에서 죽어가는가를 묻는 '주제넘는' 흑인 인권운동가에 대한 대접은 다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루터 킹 자신도 그때까지는 뜻을 달리하던 흑인 과격파들과도 공감대를 넓혀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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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정확하게 365일 뒤 1968년 4월 4일 킹 목사는 암살당한다. 테네시주 멤피스를 방문했던 그는 이날 저녁 오후 6시1분 호텔의 발코니에 서 있다가 제임스 얼 레이라는 인물에게 저격당했다.

총탄은 오른쪽 관자놀이를 뚫고 어깨에 박혔다. 쓰러진 그를 끌어안은 것은 제시 잭슨 목사. 그리고 킹이 유언을 남긴 이는 가수 벤 브렌치였다. "오늘 밤 '주여 내 손을 잡아 주소서'를 멋지게 불러 줘요." 그리고 곧 킹은 그의 유언을 들은 것처럼 주저없이 내민 신의 손을 잡았다. 서른아홉의 젊은 나이.

그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예전에 노예였던 부모의 자식과 그 노예의 주인이었던 부모의 자식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을 꿈꾸었다. 그것은 비단 흑과 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란 모두 동일한 권리를 지니고 어떠한 이유로든 차별받지 않으며 함께 일하고 함께 누리는 날에 대한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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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노예의 역사가 없는 나라에서도 그 꿈은 유효하며 '유연한 노동 시장'을 위해 사람을 자르고 붙이는 일을 더욱 자유롭게 해야 한다는 나라에서도 그 꿈은 절실하며, 같은 흑인 노예끼리도 '집안 노예'와 '들판 노예'로 나뉘어 집안 노예가 들판 노예를 멸시하던 것처럼 비정규직이 많아 혼잡하니 점심 시간 따로 두고 샤워도 따로 하자는 정규직들이 설치는 나라에서도 그 꿈은 뼈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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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sanha88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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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