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즈화의 조선전쟁 14, 스탈린이 중국을 한국전쟁에 개입시키고자 했던 이유에 대해steemCreated with Sketch.

in #zzan5 years ago

김일성 모택동 스탈린.jpg

션즈화는 스탈린이 한반도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면서 미국과 중국 문제에 대한 처리의 중점을 다음 세가지 정도로 정리했다.

미국과 직접적인 군사충돌이 발생하는 것을 가능한 피하라

션즈화는 스탈린의 이런 방침에 따라 “소련의 결정이 미국의 간섭을 야기할 것이란 점을 고려했다면, 전체적인 사건의 발단을 완전히 달라졌을 것”(222)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스탈린은 미국이 간섭할 경우를 고려하여 중국의 참전을 미리 생각했다는 것이다.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마오쩌둥과 전쟁문제를 상의하라고 한 것은 전쟁이 예상대로 단기간에 끝나지 못하고 장기전이 될 것에 대한 대비의 일환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한 접근이다.

  1. 스탈린은 “조선반도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미국이 직접 나서서 간섭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션즈화는 스탈린이 미국이 간섭하지 못할 것이라는 북한 지도자들의 평가를 믿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조선 지도자들의 평가는 미국이 직접적인 무장개입을 하지 못할 것이며, 기껏해야 공군을 파견해서 지원하거나 군사적인 지휘를 도울 것이라는 것이었다.”(223의 각주 43 참조)

  1. 만약 미국이 간섭하면 중국이 참전해서 상황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문제에 관해 션즈화는 스탈린이 중국을 참전시키는 방안을 구상했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스탈린은 만약 미국이 간섭하게 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당연히 고민하고 있었으며, 그의 대책은 만약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중국이 나서서 책임을 지는 것, 즉 중국군이 직접 미국의 위협에 대항토록 한다는 것이 스탈린의 방안이었다. 이런 생각에 근거해 스탈린은 조선의 군사행동을 허락한 동시에 이 문제에 대한 마오쩌둥의 의견을 들으라고 반복해서 강조했다.”(224)

만일 스탈린이 미국의 참전시 중공군의 참전까지 고려할 정도라면 그것은 스탈린의 한국전쟁 승인이 적어도 동북지역에서의 제국주의적 욕구를 한반도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임을 보여주는 근거라고 할 것이다.

스탈린은 1950년 4월에 있었던 김일성과의 마지막 회담에서 마오쩌둥과 이문제를 협의하라고 다시 한 번 촉구하면서 “만약 당신이 강력한 저항에 부딪힌다면, 나는 전혀 도울 수 없으니, 마오쩌둥에게 가능한 모든 도움을 요청하시오”라고 했다는 것이다.(224, 각주 47, 곤차로프의 저서)

스탈린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여 마오쩌둥도 단도리를 했다.

5월 14일 김일성이 스탈린의 계획대로 비밀리에 베이징을 방문에 마오쩌둥과 의견을 나눌때, 스탈린은 다시 마오쩌둥에게 다음과 같은 전문을 보냈다.

“모스크바가 이미 조선인들의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에 동의했으며, 이문제는 반드시 중국과 조선 동지들이 최종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만약 중국 동지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이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다시 토론해야 한다고 말했다”(225 각주, 48, 1950년 5월 14일, АПРФ, ф. 45. оп.1, д.331, л.55)

션즈화도 스탈린의 의도가 “근본적인 의도는 만약 미국이 나서서 간섭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중국이 조선을 지원하는 책임을 떠 맡으라는 것”(225) 라고 인정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마오쩌둥도 스탈린의 의도를 알았을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에 발을 들인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소련 공산당의 지도를 수용했을 경우, 그러나 이제 까지 중국과 소련의 관계를 볼때 그를 가능성은 별로 없다.

둘째, 소련으로 부터 한국전쟁에 참가할 경우 군사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 그것도 그리 희박하다. 미국과 전쟁을 할경우 엄청난 피해가 불가피할 것이고 그럴 경우 소련의 지원으로는 인민생활의 발전은 고사하고 현상유지도 어려웠을 것이다.

셋째, 한국전쟁 종료이후 중국이 대만을 통일하기 위한 군사적 지원을 소련이 약속했을 경우다. 당시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소련의 공군과 해군의 지원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소련 공군의 개입이 미국의 개입을 야기할 수 있다고 하면서 마오쩌뚱과 리우샤오치와의 회담에서 분명하게 말한 바 있다. 따라서 대만지원의 댓가라고 보기도 어렵다.

넷째, 한국전쟁에 참가할 경우 한반도에 대한 우선권을 약속 받았을 경우, 이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언급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당시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에서 중국이 한반도에 대한 기득권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소련이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 대한 기득권을 주장한 것을 보면 소련과 중국간에는 그런 거래도 전혀 불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네번째 상황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인천 상륙작전이후에 중공이 참전을 결정하는 것과 전쟁이전에 참전을 미리 생각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한국전쟁의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는 이것이 냉전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외피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전적 이데올로기의 외피를 한꺼풀 벗어 버리면 오래된 세력정치의 단층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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