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국적 요리 - 루시드 폴
"음악하는 애가 쓴 소설이야 이건..." 웃기게도 이 대사는 실제 소설 중에 나온다. 이 책은, 바로 그 '음악하는 애', 루시드 폴이 쓴 글들을 모아놓은 단편 소설집이다. 이적의 [지문사냥꾼]이나 가을방학의 정바비가 쓴 [너의 세계를 스칠 때]가 그러했듯, 이 책 또한 독자의 선입견으로 시작된다. '그래... 음악하는 애가 쓰는 글은 어떤지 한번 보자...'
루시드폴은, 우리가 아는 유희열의 안테나 뮤직에 소속된 가수이다. 원래 그 집단이 그러하듯, 가방끈 긴~ 이 뮤지션은,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 생명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박사님이시다. 후덜덜... 자기의 시들을 모아서 시집 [물고기 마음]을 출간했고, 의사이자 시인인 '마종기'와 나눈 편지를 모아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이 뮤지션은 도대체 못하는게 뭐가 있을까. 공부도 잘하고 글도 잘쓰고, 당연하지만 음악도 잘하고.
그의 소설들을 읽으며 가장 먼저 느끼는 건, 일단 '세련됐다'는 진부한 느낌이다. 진부하지만 다른 말로 대체 불가능한 '세련미'가 있다. 이제껏 본적 없는 소재에, 등장인물의 이름들도 특이한 이야기들. 그리고 무엇보다 독자로서 내가 감동한 지점은, 어느 누구의 글도 아닌, 작가 '루시드폴'의 글을 썼다는 거다. '음악하는 애'가 그저 이야기가 좋아서 흉내내 본 글이 아니라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 작가로서 진지하게 쓴 글. 도드라지고 기상천외하고, 거기다가 유머까지 있다.
'행성이다'라는 소설은 재미도 있지만, 충격적인 결말 앞에서 정말 실소를 금치 못한다. 그 충격적인 반전결말 마저도 루시드폴의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세상에도 없는 기상천외한 작품은, SF적인 요소가 너무 강해서 그 분야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그런 류의 글에는 전혀 끌리지 않는 것처럼 , 일상 속에서 '루시드폴'이라는 작가가 가져와서 그 상상으로 만들어낸 정말 듣도보도 못한 소재들이 줄줄이 등장해서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너무 과해서' 읽어내기가 힘들기도 하다. 왠만하면 완독하는 내가 읽다가 중단하고 그냥 넘어간 작품이 두 편 정도 된다는...
그렇다고 해서 그 작품들이 평가 절하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시간을 들여 읽고 싶을만큼 내 흥미를 끌지 못하는 소재라 그렇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 소설집에 담긴 각각의 단편들은, 하나같이 기발하고 상상력으로 가득하지만, 독자들의 호불호에 의해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릴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작가의 상상력은 그 자체로 작품 안에 부유하지 않고, '루시드폴'의 지성에 의해 재조합되어 독자들의 신뢰를 이끌어낸다. 기발한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소재들은, 실재하는 학술적 지식들과 결합한 후, '그럴 법한' 개체로 만들어져 독창성을 지닌다. 예전에 김중혁의 '미스터 모노레일'을 읽으면서, 인터넷에 계속 무언가를 검색해봤던 것처럼, 소설 속 용어들을 찾아보게 만든다. 그럴 듯한, 작가가 만들어낸 창조어들로 풍성하게 차려져 있다.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 속에, 그럴 듯하게 창조되어 그럴 법하게 읽히는 이야기들.
루시드폴의 그 감미로운 음색이 좋다. 제주도로 내려가 감귤농사를 짓다가 앨범이 나와서, 홈쇼핑에 출연해 감귤에 그의 앨범을 끼워 파는 그의 호기가 마음에 든다. 재미있다. 그런 그의 삶은 얼마나 호기롭고 재미있을까.
이적의 '지문사냥꾼'을 구입하면서 같은 패키지로 묶여있길래 습관적으로 묶음패키지로 구매하고, 잊고 있다가 퍼뜩 생각이 나서 가방에 넣어두기를 한달, 책이 더러워질 기미가 보여 이제야 가볍게 읽어 나가다 보니, 오늘 밤, 문득, 다시 이 뮤지션의 음악을 진지하게 들어보고 싶어진다. 대단하게 좋았던 글은 아니지만, 그 말대로 '음악하는 애'가 쓴 글이라 사람이 궁금해지고, 이 '애'가 만든 '음악'은 그의 글들과 어떻게 닮아있을까... 하며 연신 미소지으며 읽었다.
멋지다.
북키퍼님은 어떤 책 리뷰를 쓰시든 '읽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출판사에 전화하세요~!~!
이렇게요~ㅎㅎㅎㅎ^^;
생각만 해도 좋네여 ㅎㅎ 고마워요
저는 '검은 개' 노래 좋아해요.
오... 저두요 ㅎㅎ
글보다 그의 음악이 더 좋을지 모릅니다 ^^
그래서 '음악하는 애' 거든요 ㅎㅎㅎ
감귤 팔때 저도 봤는데 사람이 참 좋아요 루시드폴.
보셨군요 전 나중에 기사오 보고 알았어요 울뻔했어요 솔직히ㅜ 나중에는 미담이 되고 했는데 그 기사를 접하고는 짜식... 어뜩해ㅜㅜ
음악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농사도 잘 짓는, 이런 사람에게도 뭔가 부족한 구석은 있겠죠? ^^ 아, 홈쇼핑에 귤 모자를 쓰고 나와 앉아있는 걸 보니 편안한 구석도 있군요ㅎ
편안한 사람같아요. 노래할 때 목소리도 말할 때 목소리도...
조윤석의 글이 아니라 루시드 폴의 글이군요. 루시드 폴을 참 좋아했는데, 소설을 낸 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예전엔 참 많이 듣던 가수였는데... 그냥 뜬금없는데 좋아하는 곡을 남기고 싶었어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책 읽어볼게요.
조윤석 하니까 정말 스위스 로잔 공과대학의 화학박사 이미지네요 ㅎㅎ 저도 좋아하는 곡이네요 감사해요
저도 기회되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레오님 ㅎ
루시드폴의 노래 참 좋아하는데 루시드폴의 인생도 참 멋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티비에서 본 것이 다지만 항상 평온한 미소와 조근조근 재미없는 개그를 하면서ㅎㅎㅎㅎ
조곤조곤 재미없는 개그와 말투와 그 목소리... 정말 매력있고 그의 삶 또한 너무 멋져요
진정한 엄친아네요..ㅎㅎ
조물주의 실수가 아닐까요..
엄청난 독창성의 정체가 뭘지 궁금....
엄청나게 독창적ㅎㅎ 확실해요. 조물주의 실수였다면 아마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뽀대나게 살고 있겠지요? 현실적으로는 좋아하는 사람 아니고는 알지도 못하고 그렇게 어마무시한 학벌도 귤농사 짓는데만 사용하니... 훌륭하게 태어나 행복하게 사는 평범한 조물주의 정상 창작물 쯤 되시겠어요 ㅎ
호불호가 갈린다니, 제 취향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체로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모두가 공감하는 것 보다 그게 더 자기다운 매력있는 글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저도 음악하는 애라는 편견으로 글은 읽어볼 생각을 안했는데, 편견일수도 있었겠다 싶네요.
댓글이 플레이리스트가 되었네요ㅎㅎ저도 하나 남겨봅니다 :)
감미로운 음악 감사합니다 ㅎㅎ소설이 제 취향도 아니었어요. ㅎㅎ 근데 매력있어요. 몇 작품은 재미있기도 하구 웃기기도 해요 ㅎ
예전에 알쓸신잡 제주편을 보며 예고편을 보는데 벙거지모자를 쓴 뒷모습이 유홍준 교수님인거에요. 이제서야 나오시나 했는데...귤 한무대기를 가져온 루시드폴이었습니다. ㅎㅎㅎ
루시드폴과는 잘 맞지 않아 소설은 기대가 안되지만 그의 삶은 응원해주고 싶네요. 페퍼톤스 신곡 나왔던데 그 둘이 소설을 쓴다면 또 어떨지 상상해보게 됩니다. ㅎㅎㅎ
아마 그들도 조용히 소설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