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낭만일기] 웰컴 투 개미지옥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3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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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질 하는 도중에 소수점님이 도착하셨다.


그러니까 이곳 20세기 소년은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붙잡는데 이상하게 한 번 발을 들이면 좀처럼 발길을 끊을 수 없는 묘한 마력이 깃들었다. 심지어 손님으로 왔는데 대접은 커녕 자꾸 일이나 시키고 자기들은 사진찍고 구경만 하고 말이지. 하나 같이 독특하고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루 종일 뭐가 그리 즐거운지 깔깔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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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존재하는 빠박 작가님, 이쯤 되면 노동력 착취 아니냐구;;;


20세기 소년을 만난 이래로 가장 급격하게 아름다워진 이 날의 공은 순전히 빠박 작가님 덕분이다. 반쯤 눈감고 포기하려고 했던 지하공간을 쓰윽 보고, 엉겁결에 벽을 칠하고, 또 사진 찍으러 오라고 해서 어쩌다보니 치킨을 함께 먹었을 뿐인데. 정신 차리고 보니 소환되어서 우리의 손을 거쳤으면 매우 오래 걸리거나 불가능했을 작업들을 하나씩 척척 해주시는 거다. 벽면 고양이를 가리는 천을 멋드러지게 달아주신 걸 보고 함께 돌고래 포효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에! 이게 이렇게 바뀌다니. 너무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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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음침하던 지하공간이 아늑해져버렸다. 지하도 좋아!

그것도 모자라 우리는 계속 그를 기다리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이미 그와의 이야기는 20세기 여름에 차곡차곡 담기고 또 담기고 또 담길 것이다. 그와의 만남은 시작이었다.


빠박 작가님의 지인분인 박 대표님은 하필 오늘 연락을 했고, 설명하기 귀찮으니 와서 보라는 그의 말에 영문도 모른 채 20세기 소년에 발을 들이고야 말았다. 그곳에선 마치 기다렸듯이 우주북스를 알고 있고 예인 미술과 함께 일했던 출판사 춘자가 떡하니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 손사래를 치며 매우 겸손했던 그는, 소싯적 연애부 기자에 방송 경력도 엄청났다. 말하다보니 20세기 여름동안 관련 책을 판매하는 것과 무슨 형태가 되었든 강연 혹은 프로그램을 하나 하는 게 어떻겠냐는 질문에 그는 흔쾌히 좋다고 말했다. 또 진행 본능이 있어서 너무나 부드럽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다.

그는 이름 있는 사회적 기업들의 모순과 부조리에 지쳐있었다. 좋은 일을 한다는 명분으로 상식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 비일비재로 발생해도 누구하나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이 사회 구조에 질렸다고 했다. 설사 용기를 내어 문제제기를 한다한들 결국 문제를 보게 되는 건 그들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였다. 이를 알고 있는 단체는 오히려 이들을 방패삼아 역으로 협박을 가한다고 한다. 우리라도 없으면 이들은 더 어려워져. 참으로 어렵다.

듣고 있던 우리는 암호화폐가 기부자와 실질적으로 후원금을 받을 사람을 직거래로 연결하는 투명한 수단이 될 수 있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아직은 시작이지만 분명 더 좋은 방법이 생길 것이다. 그가 우리를 만나게 된 것 역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 또한 개미지옥에 슬쩍 빠진 건 예외가 아니어서 바 의자에 앉아 흰 셔츠를 입고 삼겹살을 맛나게 구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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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고기고기! 빠박 작가님 고기까지 구우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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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점님의 선물 중 일부, 그는 좋아한다고 말하면 기억해두었다가 선물로 건네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거 많이 말해두라는 그 말이 참 다정하더라.




갑작스레 스팀잇에서 간혹 글을 보고 유튜브로만 보던, 소수점님이 드디어 도착했다. 얼마 전 메뉴 시식을 위해 와달라고 요청할 때는 너무 바빠 거절을 하셨다던데, 연락 없이 갑자기 등장한 소수점님에게 젠젠님이 '아니! 왜 연락도 안하고 왔어요? 라고 물으니 '가족끼리 연락하고 오나요?' 쿨하게 답하셨다.

게다가 술집에 오시면서 젠젠님이 좋아하는 술과 온갖 맥주를 잔뜩 사오시고 라라님이 좋다고 말했던 '마카다미아'도 공수해오셨다. 양손 가득 바리바리 선물을 들고 온 소수점님께 딱히 만들어 드릴 게 없어서 트러플 짜파게티를 만들어 드리니 맛있다고 해주셨다. 소수점님 역시 짜파게티 한그릇 해 먹이고 지하 공간을 꾸미기 위해 무거운 짐을 옮기는 데 자연스럽게 동원되셨다.

소수점님은 물론 20세기 소년에 도착하기도 전에 '열성 스팀시티' 일원으로 스팀시티 분들과 가족처럼 지내고 있어서 만남은 예정된 일이었다. 집과의 거리가 매우 멀어 일반적이라면 자주 놀러오라는 말이 부담이겠지만 우리는 몇 번이고 프로그램도 하고 자주 놀러오시고 나고야 일기도 얼른 쓰시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물론, 누군가는 20세기 소년의 20세기 여름에 놀러와서 그저 커피 한 잔, 술 한 잔 마시고 떠났던 공간으로 남겠지만, 이 곳이 포탈이 된 이상 마법은 기적과 인연을 만든다. 우리는 자꾸 비슷한 꿈을 꾸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붙잡지 않고서도 붙들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자꾸 그들을 부르고 또 부르고, 만나고 또 만나고, 새로운 일을 벌이고 서로를 알아갈 것이다. 하하호호 웃으며.

웰컴 투 개미지옥!
음료는 모르겠고, 공간은 완성되지 않았어도, 사람들은 즐겁다.


p.s. 소수점님은 박 대표님을 보고 '정말 잘 생기셨네요' 했다는, 이곳은 뜻하지 않게 자꾸 남성분들이 남성분들의 외모를 치하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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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ears ago 

재미나게 정리를 참 잘하는 고무 타쿠,,리스펙

젠젠님 댓글은 언제나 짜릿해 😎🖤

'20세기 소년'의 발전과정(?), 페인트 칠부터 시작해서 잘 보고 있어욥!!ㅋㅋㅋㅋ
읽을때마다 제가 창업할 때의 기분과, 자영업할 때 셀프인테리어 하던 때 생각도 많이 나네욥 'ㅡ' ㅎㅎㅎ

장충동 쪽에 있는 거 맞죠??ㅎㅎㅎ
정확한 주소는 모르지만, 혹시나 근처에 들리게되고
인연이 닿아 20세기 소년 '느낌이 나는 곳'을 지나치게 된다면,
'몰래' 한 번 들려볼게욥!! >_< ㅋㅋㅋㅋㅋ

어머 뉴발님 대놓고도 몰래도 완전완전 환영이에요🙋🏻‍♀️💜

네 동대입구역 근처 20세기소년이립니다!!
꼭꼭 지나가시길 물떠놓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매일 심상화해야징 ㅋㅋㅋ

제일 쪼꼬만 애가 있으면 그게 저에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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