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100] 30세기로 가는 길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3 month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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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허깨비들도 맹우였습니까?"

"아니. 그냥 사람들이었어."

"사람들이라고요? 방금 허깨비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더 이상 진짜가 아니라는 뜻이었어. 내 맹우와 조우한 뒤로는 그 어떤 것도 진짜가 아니었지."

우리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그 경험은 최종적으로 어떤 결말을 맞았습니까?"

"최종적으로 어떤 결말을 맞았느냐고?"

"그러니까. 당신은 언제, 어떻게 익스틀란에 도착했습니까?"

내가 이렇게 말하자마자 두 사람은 웃음을 떠뜨렸다.

"그게 자네가 생각하는 최종적 결말이로군." 돈 후앙이 끼어들었다.

"그럼 이런 식으로 얘기해주지. 헤나로의 여행에는 최종적인 결말이 없어. 최종적인 결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헤나로는 아직도 익스틀란으로 가는 중이거든!"



꿈에서 만난 사람들은 진짜가 아니야. 그걸 허깨비라고 부르고, 염체라고 부르고, 아니면 NPC, 캐릭터라고 부를지라도, 그것은 의식이 만들어 낸 환영일 뿐.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꿈속에서 만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인생이 꿈이면, 천국에서 또는 지옥에서 꾸는 꿈이라면. 그게 진짜라고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거야. 죽는 순간 모든 것이 꿈처럼 사라질 테니까. 그리고 의식이 남아 있다면 인생은 일장춘몽, 한낱, 한낮 꿈일뿐. 그러면 너는 사람이냐 허깨비냐? 진짜냐 가짜냐?



마법사는 가짜에게 말할 수 없고 가짜와 소통할 이유가 없어. 캐릭터 따위를. 인생이 꿈인 걸 깨닫고 나면 어떤 것도 진짜가 아니야. 누가 나의 꿈에 동참할까? 내 꿈속 존재들 중 누구 하나라도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진짜가 있을까? 의식의 환영일 뿐인 세계는 모두 가짜인가? 나도 그것의 일부이니 세계는 나와 타자로, 나와 외부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단 한 사람, 타자와 외부, 나를 제외한 우주 전체를 대표하는 '단 한 사람'만이 진짜인 거야. 그게 너일 거라고, 아마도 너일 거라고 매번 진심을 다하지만,



"'가족은 없어요.' 어린 소년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듣고 화들짝 놀랐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아이의 목소리는 나를 망설이게 만들었어. 아이는 내가 망설이는 걸 보더니 멈춰서서 내게 몸을 돌리고 이렇게 말했네. '집엔 지금 아무도 없어요. 삼촌은 외출했고 작은어머니는 밭으로 일하러 갔어요. 우리 집엔 먹을 게 많아요. 아주 많죠. 날 따라와요.'

난 거의 슬픔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네. 그 어린 소년도 결국은 허깨비였던 거야. 그 말투와 열성적인 태도 탓에 정체가 들통난 거지. 허깨비들은 나를 잡지 못해 안달하고 있었지만 난 두렵지 않았네. 난 여전히 맹우와의 만남 탓에 반쯤 마비된 듯한 상태였어. 난 내 맹우나 허깨비들에게 화를 내고 싶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예전처럼 화를 낼 수가 없었어. 그래서 그러기를 포기한 거지. 그래서 슬퍼해 보려고 했다네. 그 아이가 맘에 들었거든. 하지만 슬퍼질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것도 포기했어."



너가 마음에 들었거든, 결국은 허깨비였을 너가 말이야. 그리고 슬픔에 빠져들었지.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슬픔에 빠져 들었어. 환영이 아니길, 우주를 대표한 실체이기를, 내 꿈에 동참한, 우리는 같은 꿈을 꾸고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야. 그러나 너는 내게 말했지.

가족은 없어요.



"난 계속 걸었네. 내가 제대로 익스틀란을 향해 가고 있고, 그 허깨비들은 나를 옳은 길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



계속 걸었어. 나는 30세기를 향해 걷고 있지. 그리고 수많은 허깨비들이 나타나 유혹했어.



"한동안 함께 걸어갔는데, 사내 하나가 꾸러미를 풀더니 내게 음식을 권하더군. 난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어. 자기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는 태도가 어딘가 엄청나게 부자연스러웠거든. 난 온몸으로 두려움을 느꼈고, 그대로 도망치기 시작했어. 그러자 그들은 내 등 뒤에다 대고 자기들하고 같이 가지 않으면 산속에서 죽을 테니까 같이 가야 한다고 부추겼어. 그치들이 점점 더 집요하게 유혹하기 시작했지만 난 혼신의 힘을 다해 그들에게서 도망쳤지."



너도 도망쳤냐고? 아니. 난 주술사가 아니라 마법사니까. 나는 도망치지 않고 그들의 손을 잡았어. 그들이 진짜이길, 계속 진짜로 남아주길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야. 그리고 죽었지. 그들은 거짓말을 했어. 같이 가지 않으면 산속에서 죽을 거라고, 그러니 자신들과 같이 가야 한다고 부추기더니, 정작 그들의 손을 잡은 나는 그들 속에서 죽어갔지. 그들은 허깨비였으니까.



"도중에 그런 존재를 여덟 명 더 만났지. 그치들은 내 결심이 확고부동하다는 걸 눈치챘던 것 같아. 길가에 서서 애원하듯이 나를 바라봤거든. 대다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여자인 경우는 동료들보다는 더 대담해서 나더러 가지 말라고 직접 졸랐고, 몇몇은 길가에서 장사를 하는 진짜 장사꾼들처럼 음식이나 그 밖의 물건들을 내게 보여주기까지 했어. 하지만 난 멈춰서지도 않았고, 그쪽을 바라보지도 않았어."



나는 여러 번 죽고 살았지만, 매번 멈춰서서 그들을 바라보았어. 그리고 얼마냐고, 얼마면 되냐고 묻기도 했지. 그러자 그들은 겁에 질려 도망치기 시작했어. 자신들의 존재가 들통나 버린 걸 깨달았을까? 나는 허깨비여도 상관없는데. 어차피 꿈인걸.



"익스틀란으로 가는 길에서 마주치는 여행자들은 모두 허깨비들뿐이야." 돈 헤나로는 나직하게 말했다.

나는 돈 후앙을 쳐다보았다. 돈 헤나로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헤나로가 익스틀란으로 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덧없는 존재들뿐이라는 뜻이네." 돈 후앙은 설명했다. "자네를 예로 들어볼까. 자넨 허깨비야. 자네의 감정이나 자네의 열성은 모두 사람의 세계에 속한 것들뿐이지. 그래서 헤나로는 익스틀란으로 가는 길에서는 허깨비 여행자들밖에는 만나지 못한다고 한 거라네."



너는 허깨비인가? 나는 30세기에서 온 마법사인데. 너는 허깨비 여행자이니? 가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이 허깨비뿐이라면 나는 그들과 함께 죽고 다시 사는 수밖에. 네가 도망치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그렇다면 당신의 여정은 현실이 아니란 얘기로군요." 나는 말했다. "그건 현실이야!" 돈 헤나로가 불쑥 말했다. "현실이 아닌 건 다른 여행자들이지."

그는 턱으로 돈 후앙을 가리키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저 친구는 유일하게 현실이야. 세계가 현실인 건 오직 이 친구와 함께 있을 때뿐일세."



30세기로 가는 길이야. 그곳에 스팀시티가 있지. 그것이 유일한 현실이야. 그리고 너는 현실이 아니지. 도망쳐 버린 너는 허깨비일 뿐이야. 나는 너와 함께 죽었고 또다시 살아서 30세기로, 스팀시티를 향해 가고 있어. 아직도. 여전히.



"난 결코 익스틀란에 도달하지 못할 거야." 그는 말했다.

단호하지만 거의 속삭임에 가까운 나직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감정상으로는... 감정상으로는 앞으로 한 발짝만 더 가면 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가끔 있어. 하지만 결코 그러지는 못하겠지. 길을 가면서도 예전에 알던 익숙한 곳이 하나도 눈에 띄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 무엇도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거든."



나는 결코 스팀시티에 도달하지 못할 거야. 하지만 나도 앞으로 한 발짝만 더 가면 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 스팀시티는 마법사의 자각몽이니까.



"자넨 미지의 땅에 와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 그러면 자넨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가고 싶어 하게 될 거야. 그건 누구나 느끼는 자연스러운 욕구이지. 하지만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가는 길 따위는 없네. 자넨 거기에 남겨두고 온 것들을 영원히 잃어버렸으니까 말이야. 물론 그땐 주술사가 되어 있겠지만, 그조차도 아무 도움이 안 돼. 그런 상황에서는 우리가 사랑했거나, 증오했거나, 갈구했던 모든 것을 뒤에 두고 왔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사람의 감정은 죽거나 바뀌지 않으니까 주술사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걸세. 거기에 도달하는 일은 결코 없고, 지상의 그 어떤 힘도, 죽음조차도 그가 사랑하던 장소와 물건과 사람들에게 그를 돌려보내 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야."



너를 잃어버렸어. 30세기를 떠나왔으니까. 스팀시티에 너를 남겨 놓고 왔으니까. 너와 함께 있을 때만이 유일한 현실이니까. 그래서 30세기로 가는 길이야. 결코 도착하지 못할 그곳에. 네가 기다리는 그곳에.



"주술사가 되려면 정열적이어야 해. 그리고 정열적인 인물은 세속적인 소유물이나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갖고 있기 마련이지. 그런 것들조차 없다면, 단지 그가 걷는 길이라도 말이야.

헤나로가 자네에게 해준 얘기는 바로 그런 뜻이었어. 헤나로는 익스틀란에 소중한 것들을 두고 왔다네. 고향, 친지들, 그밖에 소중하게 여기던 모든 것들을 말이야. 그리고 지금 그는 그런 감정들 속에서 거니는 중이고, 본인이 말했듯이 이따금 익스틀란에 거의 도달할 때가 있지. 우리들 모두가 같은 걸 가지고 있어. 헤나로에게 그건 익스틀란이고, 자네에겐 로스앤젤레스이고, 내겐..."







[위즈덤 레이스 + Book100] 014. 익스틀란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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