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100] 시라트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3 days ago


신이 거대한 붓에 물감을 듬뿍 묻혀 우주 공간에 마구잡이로 흩뿌리고 있다. 날아가 흩어진 물감 방울 중 일부가, 천 년에 한 번씩, 만 년에 한 번씩, 암흑 속에 질서 없이 늘어선 하얀 캔버스에 묻는다. 나는 크고 작은 무한 개의 캔버스 중 하나다. 천 년에 한 번씩, 만 년에 한 번씩, 내 위에 점과 선이 생긴다.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백만 년을 기다렸더니 몇 개의 점과 선이 모여 어떤 모양을 이루었다. 그 모양이 꽃을 닮아서 신이 꽃을 그렸구나 여긴다. 또 백만 년을 더 기다렸더니 해를 닮은 모양이 나타나서 신이 해를 그렸구나 여긴다. 꽃을 닮은 모양도, 해를 닮은 모양도, 원숭이가 무한의 시간 속에서 타자기를 두드리다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셰익스피어의 전집을 완성해 내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 말이다. 신의 붓질은 무한의 시간 속에 있고, 캔버스의 크기는 정해져 있는데, 정작 이 창작자의 세계에는 무한도 유한도 없다는 거지. 무한도 유한도 꽃을 닮은 모양일 뿐이라는 거지. 그래, 좋다.

신의 의도든 우주의 법칙이든 그건 내가 경험할 수 있는 삶 바깥에 있고, 그걸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 물감은 이미 뿌려졌다. 물감 방울들은 정해진 궤적을 따라 날아와 차례로 캔버스에 묻을 것이다. 그나마 실낱같은 희망은 사는 동안 품은 모든 물음표는 내 의지나 추구와 관계없이 언젠가 답을 만나고 그리고 곧 알게 된 모든 걸 한 번에 잊게 된다는 믿음에 있는데, 사라진다면 이건 답도 아니고 앎도 아니다. 그러니 답도 앎도 불가능을 넘어 무의미한 셈이다.

어차피 불가능한 데다가 무의미하기까지 한 걸 밑도 끝도 없이 추구하며 살도록 설계된 딱한 존재가 인간이다. 부처님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이라도 남겨뒀지만 안티 구루라 불리는 인도의 어떤 현자는 그런 방법 따위는 없고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그건 인과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사건이니 애초에 모든 시도를 집어치우라고 한다. 트루 디텍티브에서 염세주의 러스트가 인간이 자아를 갖게 된 건 진화 과정에 일어난 비극이라고 하는데, 이거 인정 안 할 수 있냐. 그래, 생즉고도 맞고, 희망도 없고, 비극도 맞다.

지뢰밭에서 살아남으려면 생각을 멈추라고요? 하지만 어쩜 좋아. 풀도 나무도 돌멩이도 새도 구름도 신의 붓질로 탄생했지만, 나 인간 시지포스. 생각 멈춤 그거 뭔데 어떻게 하는 건데. 그럼 뭐… 사는 동안 인연, 운명, 인과응보 등 삶의 개연성과 맥락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만날 때마다 세상에 꽃 그림이네 똥 그림이네 하며 울고 웃고 테크노비트에 몸을 맡겨 보는 것이다. 사랑해 샬롯 드 비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