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100] <또 다시, 크루즈> 또 다시, 승선

in Wisdom Race 위즈덤 레이스9 months ago

대서양 횡단 크루즈를 기다리며 나를 가장 긴장하게 만든 건 '카보 베르데'였다. 크루즈를 예약하고 나서야 도시들의 위치와 간략한 정보를 확인했다. 대서양을 건너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해서 사실 도시는 뒷전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들르는 나라가 뭐든 어디든 상관없었다. 대부분의 도시가 낯설긴 해도 얼핏 TV나 책에서 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중에 듣도 보도 못한 생경하고 이질적인 나라가 하나 섞여 있었는데 그게 바로 카보 베르데였다. 카보베르데는 아프리카 서쪽 근방에 섬으로 이뤄진 나라로 포르투칼의 지배를 500년 가까이 받았고 1975년도에서야 독립한 나라이다. 그러다 보니 아프리카이지만 포르투칼어를 공용어로 쓰고 포르투갈의 종교인 카톨릭을 국민의 대부분이 믿고 다수 인종도 흑인과 포르투칼계 백인 혈통이 섞인 혼혈인이다. 카보베르데가 생소한 건 비단 나만이 아닌 듯하다. 오미크론 변이로 아프리카발 입국자를 제한하던 시절 아르헨티나의 방역 담당자는 카보베르데를 아시아 국가로 착각해 입국을 허용한 적도 있고, 아프리카 최서단 에서도 더 서쪽으로 떨어진 해상에 위치해 있다 보니 세계지도에 조차 자주 누락되기도 한다고. 그야말로 미지의 땅이다.

크루즈 여행에 앞서 기항하는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비자가 필요한지 꼭 확인하고 준비해야 한다. 대한민국 여권은 무적이라 꽤나 방심하고 있었는데 카보베르데에는 비자가 필요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비자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검색을 해보니 한국어로는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다. 시간을 들여 영어로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다 다행히 크루즈 여행자에게는 면제를 해준다는 사실을 입수했다. ‘휴우’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한시름 덜었을 때 우연찮게 알고리즘에 뜬 영상을 봤다. 미리 비자를 받고 카보베르데에 갔는데도 입국 거부를 당한 한국인 여행 유튜버의 영상이었다. 카보베르데에 대한 검색을 많이 하다 보니 자연스레 뜬 모양이었다. 어떠한 명료한 설명도 없이 쫓겨나 황망하게 비행기를 타고 출발한 곳으로 돌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불현듯 공포를 느꼈다. 카보베르데라는 낯선 나라에서 거부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 그에 앞서 크루즈에 승선을 거부 당할 수도 있다는 공포감, 비싸게 지불한 크루즈 비용을 허공에 날리고 황망하게 집에 돌아 갈 수도 있다는 공포감, 그런 것들이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인지 대서양을 횡단하는 크루즈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서웠고 떨렸다. 처음 크루즈 탈 때보다도 몇 배는 더한 떨림이었다. 그 때는 크루즈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었다면 이번에는 낯선 도시들과 그 낯선 도시로 인한 예상할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한 상황과 긴 여정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리스본을 여행하면서도 포르투를 여행하면서도 그런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 나는 모든 약함과 무지로 무장한 작은 병아리가 된 기분이었다. 작은 알 속에서 잔뜩 웅크리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들바들 떠는 그런 작은 병아리. 태어나기 위해 하나의 작은 세계를 깨뜨려야 하는 그런 병아리. 크루즈 승선 날이 되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리스본 항구로 향했다. 조금도 지체하는 시간 없이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흘러갔다. 모든 걱정과 근심이 너무도 한심할 만큼. 크루즈에서 신분증이자 방키,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씨패스 카드를 손에 쥐고서야 해맑게 웃을 수 있었다. 나의 대항해 시대는 어떤 모습일지 조금도 그려지지 않았지만 2001년에 첫 운항을 시작했다는 오래되고 작은 크루즈는 올라타자 마자 이미 오랜 친구처럼 친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