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병의 이야기(53)

<대통령 각하 압록강수 잡사 보십시요(19)>
B포대는 계속 쏘아서 포신이 고열이 일어나서 불이 일어날 정도로 뜨거워 웃동을 벗고 연신 쉬지 않고 쏘았다. 차에서 탄약운반과 물통으로 물운반은 동내 민간인들의 협력이 도움은 컸다. 내가 "시쓰 파이아"(사격중지) 할 때까지 쏘았다. 사격을 중단할 수 없었다. 적군은 계속 증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춘천은 비는 계속 오고 있으니 더욱 질척한 늪지대에서 적병들은 우박처럼 쏟아지는 포탄으로 머리위에서 폭발하는 시한탄 파편 등에 그 늪지대 벌판에서 적병들은 살상병으로 죽 깔았다. 퇴각하는자 부상별 끌고 가려는자 도망치는자 진격하는 병사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고함 지르는자 부추켜서 서로뭉개고 얽히고 아수라장이다. 전쟁터가 아니라 시장터로 전투가 아니었다. 그 참상은 눈뜨고 볼 수 없는 처절하였다.

마치 개미 군단의 모양세다. 그래서 사격목표를 개미군단 3개 연대 병력이라 하였던 것이다. 그 늪지를 밟아서 군화가 76미리 전차포가 봉의산 301 관측소에 5,60 예발 집중 사격하여 3~40년되는 참나무 여러나무가 절단되는 피해가 전부다. 그 외는 일체 사격하지 하지 않았다. 76미리 곡사포는 사거리 미달로 포대 이동중 인 것 같았다.

인민군 사상자는 무려 4~5,000명 막대한 피해전과는 포병 제16대대와 B포대 및 관측장교 심호은 소위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전과의 절대 공로자는 딴데있다. 그러한 피해로 인민군 2사단은 전투능력 상실로 증원군 지원과 재편성 때문에 3일간이나 전투중단 함으로써 아군은 대전(對戰) 준비 기회와 관공서 등 시민의 피난의 여유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만일에 만일 이기회에 이때 섬멸된 인민군 제2사단에 대해서 정말 아군이 괴멸하는 적을 놓치지 않고 총반격 하였드라면 전쟁의 양상은 어찌 되었을까?(김일성이가 쏘련 스탈린에게 보고사항에서 6.25새벽 선제 공격하자 북한군 제2사단의 병력 49%의 사상자를 입었다. 오직 남한의 포병에 의해서 피해를 보았다. 포병의 포술이 대단하였으며 명중율이 정확하였다고 김일성이가 직접 보고하는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쏘련의 "엘친 대통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6.25전쟁문서를 기증하였다. 그 기증한 문서와 자료를 번역하여 6.25 전쟁 제50주년 기념 행사로 KBS에서 제작한 DVD로 방영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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