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4(수) 무구검(관구검)의 침입과 '불내不而'성 대한 올바른 해석

서기 245년을 중심으로 당시 조조의 위나라 장수였던
무구검이 3차례 고구려를 침입했다.
마지막 침입에서 고구려가 패해서 후퇴를 했는데
한족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기들이 100% 이겼다고 꾸며놓았다.
김부식이 남겨놓은 이야기를 보더라도
고구려가 거의 망한것처럼 기록했으니
스토리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그런가보다 하고 읽고
고구려를 별 볼일 없는 나라였다고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럼 그 사건과 관련해서 소문을 살펴보자.
우리가 무구검(관구검)의 침입에 대해 들은 내용은
동천왕이 간신히 수천리를 도주했다가
신하들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측 기록에는 환도성 불내성에 기공비를 남겼고
그것이 현재의 집안근처에서 발견되었으니
그 지역이 고구려의 수도였다는 결론으로 연결시킨다.

진실은 무엇일까?

불내성不耐城은 무엇인가?
불내성이라고 읽고 있는 이 지명에서 '耐(내)'는 견딘다는 뜻이다.
그러면 불내성은 '견디지 못하는성' 이라는 이상한 이름이 된다.
이 이상한 이름에 대해 신채호 선생이 일찌감치 지적한 바 있었다.
耐(내)가 아니라 '而(이)'라는 것이다.
즉 '불이성(不而城)'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불이(不而)'는 '부리'이고 '불'이며
도회지 즉 도시를 가리키는 고구려의 명칭이었다는 해석이었다.

신채호선생의 해석에 대해서는 찬반이 나뉘었다.
도시를 '불''부리'라고 했고,
그것을 한족들이 '불이(不而)'로 표기했다는 것인데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좀더 근거를 확인하고 싶었다.

耐(내)
이 글자는 참다, 견디다라는 뜻이 있지만
형벌의 일종이기도 하다.
'구렛나루를 자르는 형벌'이다.
한족들은 주변국을 부를때 욕을 섞은 글자로 바꿔서 적었다.
'耐(내)'는 '耏(내,이)'와 연결된다.
'而(이)'를 '耏(내,이)'로 사용하다가 '耐(내)'로 바꾸면서
도시를 말하는 '불이(不而)'가
아무관계없는 '불내不耐'로 변한 것이다.

관련 기록을 보자.

不而巍志東夷傳作不耐
'불이不而'를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서는 불내不耐로 썼다.

다른 기록을 본다.
당나라시절 통전이라는 책에는

其不耐屯有帶方、安市、平郭、安平、居龍、文城,皆漢二郡諸縣,則朝鮮、濊貊、沃沮之地。
그들의 불내<不耐: Bù nài> 에 대방帶方, 안시安市, 평곽平郭, 안평安平, 거룡居龍, 문성文城 등의 성들이 있었는데, 모두 한漢나라 두 군郡의 여러 현縣이었으며, 곧 조선朝鮮, 예맥濊貊, 옥저沃沮의 땅이다.

'불내不耐'라고 조작한 '불이不而(=도시)가 '여러곳이고
그 중에는 유명한 안시성, 안평성도 있다.
신채호 선생의 해석이 맞았다.
아마도 선생은 이 기록을 보지 못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