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노모에게 배우는 요리교실

in AVLE 일상10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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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노모 집에 오면 늘 마음이 먼저 분주해집니다. 이것저것 챙길 일은 많은데, 막상 밥상 앞에 서면 제일 난감한 건 역시 요리였는데요. 제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음식이라고는 계란후라이와 라면 정도라, 어머니 식사를 차려드려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손이 굳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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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그랬습니다. 냄비를 올려놓고 재료를 꺼내는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지요. 그때 뒤에서 어머니가 하나씩 알려주셨습니다. 무는 이렇게 썰어라, 양파는 너무 크게 넣지 마라, 국물은 조금 더 끓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받아 손발처럼 움직였을 뿐이었습니다만, 그 과정이 참 묘하게 따뜻했습니다.

무를 처음 썰어봤는데 너무 두껍다고 핀잔도 들었습니다. 저도 놀랜것은 무우 두께가 노안으로 잘 보이지 않았다는 점. 순간 머쓱했지만, 그 말조차 반가웠습니다. 아직 제 뒤에서 그렇게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기 때문입니다. 서툰 칼질도, 우왕좌왕하는 손놀림도 어머니 눈에는 다 보이셨던 모양입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시해주셨지요.

우여곡절 끝에 찌개가 완성됐습니다. 처음엔 “과연 먹을 만할까” 싶었는데, 막상 한 숟갈 떠보니 맛이 기가 막혔습니다. 제 실력이라기보다 어머니의 손맛이 말로 옮겨 붙은 것 같았습니다. 꼭 오래된 지도 한 장을 따라 길을 찾는 느낌이었달까요. 저는 냄비 앞에 서 있었지만, 맛의 방향은 어머니가 다 잡아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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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 마치고 행주말기기는 울 노모 지시 없이 제가 직접했네요..

살다 보면 잘하는 일보다 서툰 일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그 서툼 옆에서 누군가 차분히 알려주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더라고요. 어제의 찌개는 한 끼 식사이기도 했지만, 제게는 어머니와 함께 만든 작은 추억이었습니다.

뒤에서 하나하나 말씀해주시는 그 모습, 오래오래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가까운 사람의 말 한마디를 따뜻하게 담아내는, 그런 행복한 하루 보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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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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