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1한숨인 요즘

in #japan3 years ago (edited)

1990년대 후반. 일본에서 중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사회시간이 정말 싫었다.일본어가 서툰 내가 한자로만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이름을 외는 것은 정말 곤욕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곤욕이었던 것은 3.1운동과 한일합병의 역사를 배우는 것이었다. 그 시절에도 대한제국의 마지막은 고작 몇 줄로 간단하게 요약되어있었다. 사회선생님이 어떤 식으로 수업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일본인'으로 가득찬 그 교실에서 홀로 '한국인'으로 앉아있어야만 하는 것이, 어린 마음에 불편했고, 그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랬다. 쉬는시간마다 다른 반 아이들이 '외국인'인 나를 구경하러 올 정도였다. 그게 싫어 쉬는시간에 화장실에 도망 간 날도 있다. 더는 튀기 싫었고, 역사수업은 그 '튐'이 가장 눈에 띄는 시간이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가 수업이 다 끝난 후 미안하다고 했을 때 조차 난 정말 불편했다.

그때 나는 토요하시라는 지방 소도시에 살고 있었는데, 집 앞에 고의적으로 개똥을 버리고 가는 이웃이 있었고, 밤에 동네 산책을 하면 조선으로 돌아가라는 말도 몇 번 들었다. 간간히 오는 장난전화에서도 조선인은 일본을 떠나라는 소리도 들어봤다. 날카로운 걸로 교복치마가 찢긴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싫은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았다.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을 두었고, 한 달 먼저 졸업해서 한국에 와야했던 나를 위해 전교생이 나만을 위한 졸업식을 준비해 주었다. 나에게 일본은 전혀 낯선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일본이 낯설기 이를데 없다. 재특회의 가두연설이나 넷우익의 외국인차별적인 발언을 듣는 횟수가 잦아들면서,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지인으로부터 한국에 국왕이 있었냐는 어이없는 질문을 받아 일본제국이 다 죽이지 않았냐고 쏘아 붙였지만, 그런 한 마디 한 마디가 일본에서 살면서 스트레스가 되어 가고 있다. 어떤 지인은 아무렇지 않게 한국을 싫어하는 또 다른 지인이 왜 한국을 싫어하는 지를 말하며 안주거리로 삼는다. 똑같은 식민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만인은 일본인을 좋아한다는 말을 하며, 왜 너희 한국은 일본을 싫어하냐는 말을 돌려 말한다. 하나 하나가 스트레스로 돌아온다.

일본의 상황은 내가 일본에 왔던 10년전보다 좋지 않다. 부모님은 하루가 멀다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한다. 내가 아직 이렇게 일본에서 살 수 있는 이유는 그나마 내 연구주제가 한국 혹은 일본 어느 곳과도 관계가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내가 그저 무지했고 무관심했었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에서 이런 분위기는 언제나 있어왔고 내가 귀기울이지 않았던 것에 굉장히 반성하는 나날이다.

요즘 나에게 약간의 시간의 틈이 생겼다. 3월은 가장 여유로운 시기이고 격리때문에 온갖 글과 영상들을 접하게 된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외국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혐오가 날로 표면화되고 있는 요즘, 고등학교를 갓졸업한 아이들조차 외국인은 '국민'들이 낸 세금을 날로 먹는 존재라고 착각한다. 비단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외국인'을 거주국의 단물만 쏙쏙 빨아먹는 존재로 그린다. '외국인'도 세금을 내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그저 무시한다. 당연히 국가와 국가사이에 존재하는 재일교포나 난민의 위치는 더욱 위태롭다. 죽창으로 찔려 죽을 수 있다는 상상을 몇 번이나 했다. 스무살 학생들에게 타인을 이해해보려는 그 시도라도 할 수 있게 수업을 준비하고 있지만, 그것도 쉽지가 않아 또 한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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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제시대 재일교포를 다룬 책을 읽고 있어서인지 더 공감이 되고 와닿는 이야기였어요. 더 많은 글 올려주세요 :)

글 잘 읽었어요. 뭐라 덧붙이기 어려운 마음의 무게가 있는 글이네요. 비록 좋은 친구와 선생님을 만났지만 그 시절 역사 수업을 들으며 얼마나 외로우셨을까요. 게다가 최근에는 그 불편과 혐오를 수면위로 끌어올리기를 부끄러워하지도 않죠. 그래도 쉬운 절망보단 희망을 품고 기다려야죠. 작은 위로를 건네고 가요.

다른 문화권 안에 녹아드는건, 하는 입장에서도 받는 입장에서도 힘든가봐요...

어려움을 잘 극복하셨군요
그 시간들이 빛을 발하는 때도 오지 않을까요~

I'm sorry for your experience. I'm worried about my kids being half race and treated like they did to you too. So far they are ok, but maybe they didn't tell me the whol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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