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 이 또한 지나가겠지
오랜만에 걸려온 친구의 전화. 이 친구는 이상하게도 연락이 올 때마다 늘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이런저런 근황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은 현실의 팍팍한 문제들로 대화가 흘러갔고, 스승의 날이라는 핑계를 빌려 서로에게 조언인지 잔소리인지 모를 이야기들을 한참 늘어놓다가 전화를 마무리했다.
사실 지금의 나는 남에게 무슨 조언을 할 처지도 아니다. 내 앞가림하기도 벅찬 상황이라, 누군가의 고민에 답을 준다는 게 조금은 머쓱하게 느껴진다.
전화를 끊고 나니 카톡 알림이 연달아 울렸다. 지난번에 이야기만 오가던 연구 프로젝트를 좀 더 구체화해보자며 연구 모임 단체방이 새로 만들어졌고, 조만간 한 번 모여 이야기를 정리하자는 말들이 오갔다. 또 다른 단체방에서는 앞으로 예정된 출장과 그 자리에서 이어질 디스커션 이야기가 슬쩍 등장했다.
생각해보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혼자 이것저것 공부하고 새로운 분야를 익혀가는 재미만으로 하루를 채우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무언가를 배우는 일 자체가 목적이었고, 호기심 하나만으로도 꽤 오래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일단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해보고, 또 필요해서 이것저것 공부하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일들이 계속 흘러들어온다. 흐름에 떠밀리듯 다음 일이 이어지고, 정신을 잠깐 놓기라도 하면 금세 뒤처질 것 같은 감각이 계속 따라붙는다.
덕분에 요즘은 가끔, 내가 무언가를 쫓고 있는 건지, 아니면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저 한 줄기 빛이라도 붙잡겠다는 마음으로, “이 또한 지나가겠지”라는 생각 하나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예전에는 미래를 상상하면 막연한 기대감이 먼저 떠올랐는데, 요즘은 그보다도 “일단 오늘만 어떻게든 넘기자”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정리하게 되는 날들이 더 많다. 해야 할 일들은 끊임없이 밀려오고, 겨우 하나를 끝내면 또 다른 일이 자연스럽게 다음 자리를 차지한다. 잠깐 숨을 돌릴 틈이 생기면 오히려 불안해질 정도로, 어느새 이런 흐름에 익숙해져 버린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신기한 건, 그렇게 정신없이 흘러가는 와중에도 사람은 또 자기 몫의 일들을 어떻게든 해내며 앞으로 간다는 점이다. 친구와의 전화 한 통, 새로 만들어진 연구 모임, 가볍게 오가는 디스커션 이야기들 속에서 문득 지금의 시간들 역시 결국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과정 한가운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모든 게 버겁고 정리되지 않은 채 한꺼번에 밀려오는 느낌이지만, 지나고 나면 이 시절 역시 “그때는 참 정신없었지” 하고 돌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 그래서 사람들은 힘든 시기마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같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순수하게 연구만 할 수 있는 환경이면 참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