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다짐을 하는 삶을 다시 살기로 했다

in #kr-diary6 years ago



2018.08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의 내 삶은 게임과 같았다. 고등학교라는 1탄을 깨면 대학이라는 2탄이 나타났고, 기말고사라는 보스몹을 무찌르면 방학이라는 히든 스테이지로 이동할 수가 있었다. 어렵더라도 공략집을 충실히 따르면 게임을 순차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고, 남들보다 얼마나 앞서거나 뒤쳐졌는지도 판단하기가 쉬웠다.

선형적인 삶은 대학을 졸업을 한 뒤에도 이어졌다. 투자은행이라는 새로운 스테이지를 2년 안에 클리어해야 핬고, 나름 성공적으로 사모펀드라는 최종 보스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보스를 깬 후 마지막 관문을 통과했을 때 보물상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상자 안에는 지금까지 상상했던 인생을 해결해주는 열쇠 대신 "이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사십시오"라고 적혀있는 종이 한 장이 들어있었다.

10년이 넘게 달려왔던 경주의 끝은 마침표가 아닌 자유라는 신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답을 어떻게든 찾기만 하면 됐던 삶에 비해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삶은 내게 너무 혼란스러웠다. 인생은 더 이상 열심히 직진을 한다고 해결되지 않았다. 그렇게 방향을 잃은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다짐을 하지 않는 삶을 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질주를 멈춘 삶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동안 삶을 정주행 하다 놓친 것들을 재정비하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배가 항구에 정박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다시 항해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던 것 같다. 새로운 항해에 필요한 식량을 비축하고 다음 목적지를 고민하는 대신 그저 수평선에 늘어진 태양을 바라보며 하루를 넘기기 바빴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어쩌면 나는 마음속으로 '이 정도면 됐지'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현실에 만족을 하는 삶이 나쁜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진정 행복하게 사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욕망이 있으면서 삶이 만족스럽다고 말을 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다. 욕심을 내려놓거나 아니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시 한번 전진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여러 읽을 겪고 많은 사람을 만나며 변명 뒤에 숨는 대신 행동을 옮길 때가 왔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시작'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다.

나는 새로운 학기를 늘 의식처럼 기념했다. 오랜만에 몰스킨 노트를 꺼내 펜으로 뭔가를 열심히 끄적이기도 했고, 또 GQ 잡지에서 마음에 드는 페이지를 북북 찢어 벽에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여나가기도 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웃통을 벗은 채 청소기로 방을 밀기도, 이번에는 플래너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써나 가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우연인지 몇 년 동안 보지 않았던 GQ를 한국에서 다시 주문하게 되었다. 패션의 '패'도 모르는 내가 남성잡지를 열심히 뒤적거리는 것을 와이프는 어이없어 하지만, 내게 GQ는 단순 패션 매거진이 아닌 열정으로 가득 찼던 옛 과거로 연결시켜주는 매체이기도 하다.

그 당시 나는 GQ의 이충걸 편집장이 Editor's Letter를 적듯 새로운 달을 맞이하는 글을 매월 초마다 싸이월드에 적어갔다. 어쩌면 그 이상한 의식을 멈췄기 때문에 내 삶의 태도가 바뀐 것일지도 모른다. 스포츠 경기를 보기 전에 팀의 유니폼을 입지 않으면 우리 팀이 진다는 것만큼 말도 안 되는 행위지만 때로는 미신이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는 법이다.

물론 이충걸 편집장은 강지영 편집장으로 바뀌고 소년이었던 나도 이제는 아재가 돼버렸다. 하지만 오랜만에 옛 친구 같은 이 잡지를 펼쳐보니 잊고 지냈던 많은 것들이 생각난다.




원래 약속이라는 것은 많이 만들수록 지키기가 더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정말 간단하게 다섯 가지만 적어보려고 한다.

  1. 이번에는 꼭 운동을 6개월간 꾸준히 해보자
  2. 잡지(이코노미스트 / GQ)를 꼭 끝까지 읽고 버리자
  3. 새로운 학기처럼 커리어의 6개월, 1년을 계획해보자
  4. 취미생활을 포기하지 말자
  5. 뜨거운 마음으로 다시 한번 달려보자



공교롭게도 삶에서 새로운 다짐을 가장 많이 했던 시기는 바로 새 학년이 시작되기 전의 8월이었다. 어쩌면 늦여름의 열기에는 "시작"을 알리는 좋은 에너지가 함축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올해 8월 다짐을 하는 삶을 다시 한번 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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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너무 덥습니다......덥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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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미네르바 님은 아재라는 단어가 안 어울려요;;
좋은 글 읽고 자극받고 갑니다 ^^

영락없는 아재지만 피터팬마냥 나이를 잊고 살아갑니다 ^^;

월간에서 갸우뚱하고 들어왔는데 이런 얘기였군요.ㅎㅎ

몇년 묵은 습관을 서랍장에서 오랜만에 꺼내왔습니다 ㅎㅎ 별거 아닌 숨쉬는 글이죠

많다고 하면 많은 경험들을 했기에 아마 당장 행동하지 않아도 어찌될지 알고 있다는게 무서운것 같습니다. 영원 불멸의 보스몹은 아닐지라도 각자 분야에서 그래도 경험할 만큼 해보고 보스몹을 깨본 느낌을 어느정도 알기에 매일매일 행동에 옮겨 실행함이 나이가 들수록 어려워지는것도 같구요. 그만큼 나이가 들어 생각은 깊어졌고 판단력은 높아졌으며 이해력도 좋아졌기에 지금까지 축적된 지식들을 정리하고 재배치한다고 생각하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뭐 그러한들 어찌해도 매일 조금씩 행동하는 사람은 못이기는 법이지요. 다섯가지 항목 응원드리며 무더위 건강 챙기시길 바랍니다. 많을것을 생각하게 해주시는 글 고맙습니다. ^^

"나이가 들어 생각은 깊어졌고, 판단력은 높아졌으며, 이해력도 좋아졌기에 지금까지 축적된 지식들을 정리하고 재배치한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말 주옥같은 말씀입니다.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하네요. 이번주에 "당신을 채찍질 하는 것은 성공에 대한 열망입니까 아니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입니까?"라고 물어봤었어요. 한동안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었던것 같은데 이제는 성공을 위해 행동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너무 빠를 필요도 느릴 필요도 없이 자기 속도에 맞춰 사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

느림이 미학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너무 안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어요 ㅎㅎ 이제 페이스를 조금 올려야될 때가 온듯 합니다 ^^

저도 한동안은 큰 목표없이 살았는데
다시 열심히 살고 싶어졌어요.
패션잡지까지 주문해서 보시는 멋쟁이셨군요.ㅎ

럭키님은 훌륭한 가정을 꾸리고 또 투자도 엄청 잘하시잖아요 ㅎㅎ 이미 full 한 삶을 사시는 것 같습니다 ^^

제가 GQ 얘기를 꺼내면 저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 생길것 같아 자제해왔는데 ㅋㅋ 그냥 옷을 정말 못입는 사람이 심각함을 느껴 내린 처방전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ㅎ

잘 읽었습니다.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던것 같네요. 팔로우 할게요~

반갑습니다. 스팀잇 오신 것을 환영해요~

전 매일 다짐하면서 살아요. 의지가 약해서. ㅎ

매일 다짐만 하면서 아론님 같이 체계적인 삶을 살 수 있다면 전 그렇게 하겠습니다 ㅋㅋ 늘 보면서 자극받아요.

지큐를 보신다니 역시 멋쟁이셨어. 안그래도 한 번 쓰려고 했는데. 이충걸 편집장 없는 지큐는 충격적이었어요. 모든 건 변하기 마련이라지만.

제가 이런 이상한 선입견이 생길까봐 이 얘기를 이제껏 안 꺼냈습니다 ㅋㅋ

지큐가 '진보'하긴 했지만 이충걸 편집장 만의 특색이 사라져서 좀 아쉬울 따름입니다 ㅜ 어렸을 적 친구를 오랜만에 다시 만났는데 완전 변한 느낌? 칼님이야 말로 지큐 읽는 멋진 신사셨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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