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감정] 06 열등감 - part 1

in #kr-series6 years ago (edited)

귀엽다는 말이 싫었다. 그런 건 못생겼다는 의미다.
차라리 멋있다가 좋았다. 어차피 예쁠 순 없으니 멋있고 싶었다.


이 시리즈를 기획하면서부터 정해져 있던 주제, 이 주제를 택하면 쓰게 될 게 뻔하고 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공존했던 나의 내밀하고도 부끄러운 감정을 꺼내보려 한다. 그건 역시 나의 열등감에 관한 이야기다.

내겐 이상한 열등감이 있었다. 보통의 한국 여자 같지 않다는 열등감. 내가 특별하단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기준에 못 미친다는 의미지. 어릴 적부터 오빠에게 은근슬쩍 세뇌를 받고 자랐다. '넌 못생겼어!' 정작 오빠는 자기가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빠는 귀신같이 나의 외모적 단점을 유머를 섞어 지적하곤 했다. 나의 높고 드넓게 벌어진 발을 보며 낙하산이라 놀렸고 치아교정 중인 내게 치과에 들인 돈으로 차라리 얼굴을 성형했으면 이빨 튀어나온 '구하라'가 될 수 있지 않았냐는 막말에 가까운 농담을 했다. 나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그다지 모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우리 오빤 진짜 웃기다. 죽어라 싸우다가도 오빠가 유머를 던지면 늘 웃겨서 싸움이 끝나곤 했다.) 왜냐하면 어차피 난 어릴 적부터 못생긴 존재였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나의 외모를 바라보자면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예쁘거나 아름답다는 이유로 이득을 얻는 일도 없었고 그렇다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은 적도 없었다. 그냥 주변에 있을 법한 외모, 사람에 따라서 취향에 따라서는 귀엽거나 예뻐 보일 수도 있는 그저 그런 외모다.

어렸을 적 아마 내가 크게 삐뚤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오빠의 사랑은 못 받았어도 작은 촌동네에서 친구와 이웃의 사랑은 많이 받았기 때문일 거다. 나는 자연스럽게 어릴 때부터 나의 효능감을 외모로 찾으려하지는 않았다.그래서 내가 별로 예쁘지 않아도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뭐랄까. 어차피 예뻐질 수 없으니 손을 떼고 포기한 케이스라고 해야 할까.

물론 나도 내 외모 중에 좋아하는 부분과 좋아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나는 나의 손과 특히 손톱을 좋아한다. 단적으로 나는 키가 작은데 키가 컸으면 좀 더 편하고 내 성격에도 어울렸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저 아쉬운 정도이지. 그런 생각이 나의 생활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나는 완벽히 내 외모에 적응했고 부모님을 원망하지도 않고 무언가를 개선(?)할 의지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화장이나 옷, 액세서리, 쇼핑, 머리하기 등 나를 꾸미는 데 별 관심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오빠가 말하는 예쁜 애들이란 비단 선천적으로 타고난 아름다움만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오빠는 잘 꾸밀 줄 아는 여자를 좋아했고 자기 여동생도 조금은 그런 면이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아니면 그러지 못하는 내가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크면서 나는 나의 포지션을 은연중에 이렇게 잡았다. '외모에 관심이 없고 털털하고 성격이 좋아 첫인상보다는 만나면 만날수록 괜찮고 매력적인 여자' 왜냐하면 별로 안 예쁜 내가 아무리 공들여봤자 예뻐지는 데 한계가 있었고 외모에 관심도 없고 꾸미는 건 역시 귀찮은 일이니깐 아예 선을 그어버렸다. 그리고 관심이 없어 하지 않게 되면 정말로 그쪽으로는 소질이 없어지더라.

나는 외모에 해탈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았나보다.

원래 내게 관심 없다는 남자에게 크게 미련을 갖지 않는데 차이고도 꽤 오랫동안 좋아한 남자애가 하나 있었다. 그 남자를 잊을 수 없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그중 하나는 그 남자가 나를 외모적으로 좋아해 주었기 때문이다.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나를 사귀는 남자는 그가 처음이었다. (그 후에도 그다지 많지 않다.) 정이 들어 예쁜 게 아니라 내 성격이 좋아 예쁜 게 아니라 그냥 보자마자 나를 예쁘게 봐준 그 남자에게 나는 절대적으로 설렐 수밖에 없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남자친구를 1년쯤 사귄 후 그의 친구를 만난 후 집에 가는 길이었다. 내 남자 친구는 아주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미적 감각에 예민했다. 그는 나의 외모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다. 그는 나와 달리 꾸미는 걸 좋아하고 쇼핑도 아주 좋아했다. 그 남자를 만나면서 화장하는 법을 배우고 그 남자가 골라준 옷을 입기도 했다.(감사하다. 혼자 했으면 몇 년은 더 걸렸을 거다.)

-너 내 친구한테 고마워해야겠다.
-왜?
-너 예쁘대.

마치 의외라는 듯이 말하는 그의 말투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어떤 날에는 무심결에 하루 일과를 말하다 무심결에 친구들에게 여자 친구가 못생겼다고 말하고 사진을 보여주니 친구들이 '뭐야! 너 어떻게 여자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해. 예쁘신데.'라는 핀잔을 들었다며 내게 아무렇지 않게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실은 상처를 받았었나 보다. 먼 훗날 1년도 넘은 시점에 말다툼이 있었고 '오빠는 나보고 못생겼다고 했잖아!'라고 공격하곤 울어버렸다. 그는 미안하다는 말 이외에 내게 할 말이 없었다.

뭐랄까. 외모에 관한 열등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나는 그 주제를 등한시 하면서 살았다. 그 열등감을 원래 없던 감정처럼 내게서 감춰두었다. 신경 쓰지 않는 척 화두로 올리려고 하진 않았지만 사실 내 마음속에는 '못생겼다. 꾸미지 못한다.'라는 열등감이 늘 존재했던 걸지도 모른다.

이런 나의 부자연스러운 선긋기는 여행을 통해 만난 한 언니에 의해 알게 되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서 '언니, 전 평범하지 못해요.'라고 말하자 그 언니는 의아하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여느 다른 한국 여자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데 왜 그렇게 생각해?' 그 순간 머리를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내 말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연 설명을 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언니 말이 맞았다. 마치 어릴 적 세상 물정 모르는 오빠가 정해놓은 것처럼 환상 속의 기준에 내가 부합되지 못한다고 내 맘대로 정했던 일이다. 그저 내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어쩌면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10년을 알고 지낸 베프에게도 오래도록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나의 이 열등감을 고백했을 때도 반응이 비슷했다. 나는 그녀에게 못했던 말이 없는데 이것을 고백할 때는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M. 나는 너의 친구라는 게 부끄러웠어. 너는 예쁘고 잘 꾸미는데 나는 전혀 그런 타입이 아니잖아. 원래 예쁜 애들은 예쁜 애들끼리 놀아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네 친구가 나라는 게 부끄러울 때가 있었어. 웃기지? 나도 알아. 이게 이상한 생각인 걸. 그런데 나는 계속 이런 마음이 들었어.

물론 나의 베프는 전혀 내가 이런 생각을 했는지 전혀 몰랐고 내 말이 이해도 되지 않고 말도 안 되는 말이라고 했다.

여전히 내게 외모가 그다지 중요한 관심사는 아니다. 화장도 안 하고 살고 있고 회사에 갈 때도 청바지에 운동화 신고 백팩을 메고 다닌다. 살이 쪄도 별로 신경도 안 쓴다. 나의 관심이나 취향을 바꿀 마음은 없다. 미용실도 잘 가지 않고 여전히 쇼핑을 좋아하진 않는다. 사람을 만나거나 특별한 날에는 화장을 하고 예뻐 보일 수 있는 옷을 입는다. 맘에 들거나 필요한 옷이 있으면 산다. 원하면 꾸밀 수 있고 그게 그렇게 특별한 일이라는 생각은 안 한다.

지금은 내가 특별히 유별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냥 나도 평범한 한국인 여자애다.(단지 조금 꾸미는 데 관심이 없고 트렌드에 뒤쳐진 여자애일 뿐) 그런데 모르는 사람,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면 여전히 신경이 쓰인다. 나의 이런 열등감이 혹여나 튀어나올까 싶어 조금이나마 예뻐 보이려고 노력한다.

이 글을 읽고 너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담담히 써내려간 마음 한 구석 숨겨졌던 열등감의 고백이다. 사실 나의 진짜 열등감은 따로 있다. 그것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해보겠다.


[안녕, 감정] 시리즈
01 입장 정리
02 감정을 드러내는 거리
03 평화의 날
04 다름에서 피어나는 감정
05 아플 때 드는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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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gomul님 넘치는 사랑 감사합니다~

저도 언제느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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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도 안 하고 살고 있고 회사에 갈 때도 청바지에 운동화 신고 백팩을 메고 다닌다. 살이 쪄도 별로 신경도 안 쓴다. 나의 관심이나 취향을 바꿀 마음은 없다. 미용실도 잘 가지 않고 여전히 쇼핑을 좋아하진 않는다. 사람을 만나거나 특별한 날에는 화장을 하고 예뻐 보일 수 있는 옷을 입는다. 맘에 들거나 필요한 옷이 있으면 산다. 원하면 꾸밀 수 있고 그게 그렇게 특별한 일이라는 생각은 안 한다.

저랑 비슷한데요? 나이가 한해 한해 먹어가면서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고 생각하고 예쁘게 꾸미려고 하는 생각이 들어서 관리하고는 있어요 ^^
결혼하신다는 이야기에 웨딩드레스에 티아라하신 모습 상상해봤는데 예쁘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는데 ㅋㅋㅋㅋ

댓글을 어떻게 달아드려야하나 조심스러워져서 ㅋ 댓글을 이제야 다네요.

오늘이 가장 젊은 날 완전 공감돼요:D 어릴 땐 어리다는 자각이 없었죠 ㅎㅎ 지금도 젊은 나이에요 우리 ㅋㅋㅋ
전 말씀드린대로 그닥 결혼식 로망같은게 없어서 제모습이 상상이 잘 안되요-

저는 가끔 그런 생각해보는데요.
뚱뚱하고 못생긴 것 같은데도 당당하고 멋진 여자(내가 여자라 ㅋㅋ)가 있는 반면,
제법 예쁜데도 움츠러들고 열등감에 잡혀 사는 여자도 있더군요.
제 생각으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얼마나 당당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영화 I am pretty가 생각나요. ㅎㅎ
객관적 조건이나 평가에 상관없이 당당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늘 아름답죠!

왜 제 이야기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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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 정훈님 공감해주시다니 ㅎㅎ 동질감이 드는 동시에 조금 슬퍼지네요 ㅎㅎ

나이가 들면 어느순간 아름답다 이쁘다는게 외면 보단 성격 그 나이때 젊음 자체가 아름다워 질거에요 이 댓글 다니 할아버지 된듯 ;; 나이가 30을 넘어가면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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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저 역시 skymin님이 말씀해주시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나이가 되었죠 과거의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고물님 그럼 할맹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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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물건님,

최고로 이쁜 것이 무엇인가 하면, 白賁(백비)입니다.
아무것도 치장하지 않는 것이지요. 순수한 아름다움이 그대로 외부로 드러나기 때문에 치장이 필요없다는 것이지요.

백비라 좋은 말씀이시네요.

아무리 치장해도 본 모습을 숨길 순 없겠지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에 공감을 하면서도

때로는 여전히 치장이 필요한 순간이 있지고 느끼는건 제가 어리석어서 인 것 같아여 ㅎㅎ

고물님이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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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그러게여 제가 어떻다는 건 아닌데; ㅋㅋ

내가 아닌 남이 바라보는 시선에 민감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게 남성이건 친구이건. 전 요즘은 평범하고 싶다거나, 한국인같아 보인다거나, 여성스러워 보이고 싶다는 마음자체가 잘 안들어요. 내가 보기에 매력적인 나이고 싶고, 있는 그대로의 나는 어떤 모습인지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장난으로라도 외모지적하는 사람 있으면 그 사람이 무례한 거니까 고물님이 움츠러들지 않으셨음해요. :D

앗 P님 좋은 말씀감사합니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저 다운 모습으로 아끼며 살겠습니다! ㅎㅎ

네 움츠려들지 않을게요! 😊 감사합니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몇 살인지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ㅎㅎㅎ), '예쁘다'는 말을 객관적으로 할 수가 없어요.
아기들이 얼마나 예쁜지 아세요? 눈이 크든 작든, 통통하든, 대머리든, 이가 두개 밖에 안 났든.. 아기들은 참 예쁘죠.

마찬가지 맥락에서 젊은 사람들도 참 예뻐요. 특히나 유쾌한 모습,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노라면 더욱. 젊음이 예쁘고, 유쾌한 에너지가 예쁘죠. (제가 단어를 잘못 사용하는 걸까요?)

연예인이라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내가 그 사람을 다 알 수는 없으니. 근데 연예인도 어떤 계기로 호감이 생기게 되면 참 예쁘게 느껴져요.

전 '예쁘다'는 말을 여자한테만 하진 않아요. 남자한테도 많이 써요. 일례로 요즘 축구를 잘해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손흥민 선수도, 골을 넣고 기뻐서 해맑게 웃거나 동료들과 허그하는 모습을 볼때면 참 예쁘다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제가 고물님을 더 많이 알게 될수록 고물님도 제겐 더 예쁜 사람으로 다가올 것 같아요. :)

저는 불이임 말씀이 무슨 말 인지 알 것 같아요 ㅋㅋ 평소 예쁘다는 말을 특별한 생각없이 남발하면서 살았거든요. (이번에 laylador님의 댓글보며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ㅎㅎㅎ)
지나가는 학생들 보면 남녀할 것없이 예쁘고 놀이터에서 노는 애들 봐도 예쁘고 하늘도 보고도 어쩔 땐 생각해주는 마음이 예쁘고 ㅎㅎㅎ

특히 애정있는 대상에겐 예쁘다는 생각을 많이하게 되죠.

불이님 생각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