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요가나 슬슬'은 오산이었다.

in #kr-workout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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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에 요가 좀 해봤잖아


오랜 기간은 아니지만, 내가 그래도 왕년에 요가는 조금 했었다. 요가원에 다니며 익힌 게 1년은 됐으려나? 타고난 막대기 체질이라 1년이 지났어도 할 수 있는 자세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에 뿌듯하기도 했다. 왕초보 시절을 지나며 여러 자세들을 익히고, 개나 소나 고양이나 뱀 등이 나오는 동물원 같은 자세들의 이름에도 얼추 익숙해질 무렵 요가원을 그만뒀다. 이제는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미국에 오게 됐을 때도 혼자서 요가를 할 요량으로 요가책 한 권과 매트만 달랑 사들고 왔다. 물론 처음에는 집에서도 꽤 열심히 요가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요가를 하는 간격이 띄엄띄엄 벌어지기 시작했다. 게으름신과 귀차니즘이 발동한 것이다.

그렇게 혼자서 설렁설렁, 띄엄띄엄, 대충대충, 깨작깨작 하던 요가는 어느 순간 멈춰버렸고, "다시 요가 해야지." 하고 생각만 하다가 해가 바뀌곤 했다.

이번에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무리하게 발레에 도전했다가 호되게 당한 나는, 그래, 역시 운동은 요가지, 하며 요가 클래스로 향하게 됐다. 요가를 그만둔 지 꽤 오래되긴 했지만, 그래도 하던 가락이 있는데 괜찮겠지.



괜찮기는 개뿔.


자신만만하던 내 모습은 요가 시작 5분만에 무척이나 겸손하게 바뀌었다. 분명 예전에는 다 됐던 동작인데. 분명 예전에는 더 잘 돌아갔었는데.

그랬다. 다 할 수 있는 동작이라고 여겼었는데, 이제는 무릎과 허리와 어깨의 비명 속에 마치 녹슨 로봇마냥 어설프게 동작을 흉내내는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당혹스러웠다. 이거 뭐지? 왜 그러지?

이거 뭐긴, 나이가 든 거지. 왜 그러긴, 그동안 운동을 안 했으니 그렇지. 아주 잠깐 혼자 자문자답하며 실망을 했지만, 나는 초심자로 돌아가서(라기 보다는, 몸이 안 따라주니 어쩔 수 없이 초심자로 돌아가서) 열심히 선생님을 따라했다.

이 요가는 내가 고리짝시절에 한국에서 배웠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요가의 종류가 달라서인지, 한국과 미국의 차이인 것인지 그건 모르겠다. 한국에서 배웠던 요가는 좀 더 정적이고 고요했는데, 이곳의 요가는 더 동적이고 활기차다. 더 많이 움직이고, 더 속도가 빠르다. 한국에서 다녔던 요가원에서는 하나의 동작을 오랜 시간 유지하는 데 중점을 뒀는데, 이곳에서는 동작을 마치고 다음 동작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데 중점을 둔다.

길게 쓰긴 했는데, 한 마디로 더 힘들고 어렵단 소리다. 뭐, 내가 그만큼 나이가 들어서일 수도 있고.


계단 난간에 고마움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안 되는 동작은 무리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러다 발레처럼 요가도 그만두게 되면 안 되니까. 처음에는 힘들어서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요가 클래스가 끝날 즈음에는 왠지 내 몸이 예전의 기억을 조금이나마 찾은 것 같아 기뻤다.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랄까? 그래, 역시 요가는 할 만하구나. 아직 동작이 잘 안되고 몸이 뻣뻣해서 그렇지 괜찮아. 이대로만 죽 가다오!

요가 수업은 2층에서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계단을 내려오던 나는 흠칫 멈춰섰다. 아, 이게 어찌된 일인가? 요가는 별로 큰 운동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허벅지가 당기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계단을 한 칸 내려가는데 무릎이 꺾였다. 이런 저질 체력 같으니라고! 요가 한 시간에 다리가 풀리다니. 나는 주위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어깨를 푸는 척 하며 자연스럽게 계단 난간을 붙잡았다. 그리고 다리가 꺾이지 않게 조심하으며 난간을 잡고 1층으로 내려왔다. 운동하러 왔다가 계단에서 구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아, 난간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그건 할머니 할아버지들만 잡는 게 아니었던 거다. 나처럼 오랫만에 운동을 하는 바람에 후들거리는 다리로 1층 탈의실로 내려가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였던 것이다.

도대체 그동안 얼마나 운동을 안 했으면 요가 한 시간하고 다리가 풀린 걸까? 요가나 슬슬해보자는 내 생각은 오산이었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요가는 슬슬해도 되는 운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뭔가 운동을 했다는 느낌이 확 들어서 좋다. 생각보다 재미도 있고. 앞으로 꾸준히 하면 체력도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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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잘하시는 불이님 역시~ 다치지 않게 살살하세욥~

넵. 몸 사리면서 하고 있어요. ^^

아 웃으면 안되는데 글을 너무 재밌게 쓰셔서.

발레->요가->그 다음은 뭘까요ㅎㅎ

근데 진짜 운동마다 다 쓰는 근육이 달라서 오랜만에 하면 뭐든 땡기는 것 같아요.

쓰는 근육이 다 다르단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용

ㅎㅎㅎ 고맙습니다.
당분간은 요가에 집중해보려고요. 오랜만에 해서 그런가 생각보다 재밌네요. :)

앉았다 일어나면 어이구 소리가 절로 나는 요즘..계단 난간에 고마움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100% 공감 갑니다..ㅎㅎㅎ

맞아요. 앉았다 일어날 때 무릎 짚으면서 에구구~ 소리가 절로 나죠. ㅋㅋㅋ

저도 다시 요가해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전보다 더 힘들겠죠??? ㅠㅠ ㅠㅠ

그래도 하루라도 젊었을 때(?) 다시 시작하는 게 나을 거 같아요. ㅋㅋㅋ

ㅎㅎ 요가 시작하신건가요? 어떤 운동이건 오랜만에 하면 힘들죠!! 저질 체력이 아니더라도...ㅋ
다음엔 요가하는 영상 몰수 있는건가요?

요가하다가 거울 보면 얼굴은 시뻘개져 있고, 머리는 산발이고..
뭔가 찍을 몰골이 아닙니다. ㅎㅎㅎ

꾸준히 운동하셔야겠습니다.^^
오랜만의 운동으로 많이 후달리셨군요~

넵. 그동안 운동 안 한 걸 반성하며..
앞으론 꾸준히 해보려고요. :)


@bree1042님 곰돌이가 최대 두배로 보팅해드리고 가요~! 영차~

고마워, 곰돌아. 다시 푹 자렴. :)

그래도 발레보다는 요가가 낳죠? 낫죠?

ㅋㅋㅋ

발레보다는 요가가 훨씬 낫네요. ㅋㅋㅋ

운동 수난기 시리즈군요!ㅋㅋ

원래 운동이 이렇게 힘든 거였나요? ㅎㅎㅎ
하고 나면 괜히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어 좋긴 합니다. ㅋㅋㅋ

요가 진짜 제대로하면 온몸이 다 뜯어지는 느낌이 ㅠㅠ

아, 그겁니다. 온몸이 뜯어지는 느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