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나의 막노동 일지
저자 : 나재필
대학에서 신문방속학 전공하고, 27년간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8년 갑작스런 조기 퇴직 후 한식 조리사, 경비원, 비계 기능사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는 한 편, 단기 일용직 아르바이트, 식당 설거지 보조 등을 전전하다가 2022년 겨울 대기업 건설현장에서 본격적으로 막노동을 시작했다.
"계속 일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하여"
2023년 저자는 <오마이뉴스>에 <나의 막노동 일지>와 <베이비붐 세대의 애환> 글을 연재해서 화제를 모았었다.
이 책은 그 내용을 기반으로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막노동 관련 서적을 접하면, 과거에 읽었던 송주홍 작가의 <노가다 칸타빌레>와 <노가다 가라사대>가 생각난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막노동, 노가다로 일하며 사는 삶에 대한 책이 있으면 손이 간다.
일을 함에 있어 육체 사용 여부의 대척점에 있었던 내가, 아무래도 궁금증이 많이 생기나 보다.
같은 막노동에 대한 내용의 책이지만, 송주홍 작가가 쓴 책들과 이 책은 결이 많이 다르다.
어느 쪽이 더 괜찮았냐고 하면 쉽게 선택하기는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한 표 더 주고 싶다.
송주홍 작가는 나보다 10살 정도 어린 경우라서, 그가 살아가는 삶이 나에게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재필 작가는 나보다 10살 정도 많은 경우라서, 앞으로 내 미래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기에 더 마음에 와 닿는 것 같다.
노가다라고 다 같은 노가다가 아님을 알았다.
인력사무소를 거쳐 하루하루 일거리 받아서 하는 일반 건설현장의 막노동이 있고, 대기업 공사현장의 막노동은 많이 다른 거였다.
대기업 공사 현장은 일당이 아니고 철저하게 월급제이며,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일을 하겠다고 출근했다면 무슨 소일거리라도 만들어서 일을 할 수 있게 한다.
출근해서 일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불상사는 음주 출근, 복장/안전 지침 불량 빼고는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일반 건설현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기업 현장에서는 보안상의 이유로 고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기왕 막노동을 하게된 상황이라면, 그 시점 대기업 공사현장이 주변에 있는지 찾아보고, 지원해보는 것이 좋겠다.
저자는 퇴직 이후, 처음부터 노가다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한식조리사 자격증 취득 도전, 대기업 직원 식당 주방 보조를 거쳐서 막노동으로 시작했다.
과거 십 수년을 매일같이 회사 내 식당을 이용하면서도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의 노고를 생각해보진 못했다.
저자가 3개월간 직접 겪은 대기업 직원 식당의 업무 강도를 보니, 진짜 힘든 일인 듯 하다.
펜(기자), 칼(주방), 삽(막노동), 이렇게 셋 중 어느 직업이 가장 힘든지 비교하는데, 그 중 칼(주방)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펜(기자)은 육체가 편하고, 삽(막노동)은 정신이 편한 반명, 칼(주방)은 둘 다 힘들었다 말한다.
아래부터는 책을 읽으며 기록해 둔 본문의 문장들 중 일부
결국 나는 27년 동안 붙잡고 있던 팽팽한 줄을 놓아버렸다.
갑작스러운 퇴직으로 인해 나의 인생 후반기가 오래된 충치처럼 아려왔다.
이전까지의 인생이 갑자기 '로그아웃'된 느낌이었다.
무엇을 해도 먹고살 줄 알았는데, 막상 세상 밖으로 내던져지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니,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남들 하는 재테크에도 관심이 없다 보니 모아놓은 돈도 없었다.
그때 절망의 끝에서 가까스로 붙잡은 게 '막노동'이었다.
이후 나의 삶은 막노동 이전과 막노동 이후로 나뉠 만큼 많은 게 변했다.
인생 후반기가 막노동으로 다시 '로그인'됐다.
중장년층, 특히 은퇴했거나 퇴직을 준비 중인 사람들은 직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세상이 두렵다.
일하고 싶어도 일거리가 없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도 시간은 자꾸만 뒤쫒아 온다.
젊은 노인, 늙은 청년의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엄살떨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집에 허덕이지 않고, 땀 흘린데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으며 살고 싶을 뿐이다.
나는 팀원이 하는 걸 보고 그대로 따라 했다.
그야말로 침팬지였다.
침팬지는 새끼 침팬지를 가르치지 않는다.
먹이 주는 일도, 먹이를 구하는 일도 독자적으로 한다.
그러면 새끼들이 보고 배운다. 흉내 내기다.
나도 선임 침팬지들의 행동을 보며 흉내를 냈다.
신기하게도 일은 배워졌다.
딱히 얘기해주지 않았는데도 몸짓을 보고 알아챘다.
현장에서의 소통은 말보다는 행동이었다.
나는 노동판에 뛰어든 이후 그들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편하게 살았던 내 삶을 고통스러운 늪지로 옮겨 놓으니 노동의 고뇌가 보였는지도 모른다.
극한의 고통은 괴로움을 견딜 만하게 단련되어 갔다.
명색이 중소기업인데 한순간에 맥없이 도산하는 걸 보고 참담함을 넘어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앞으로 성공 원칙이 아니라 실패하지 않는 원칙을 지킬 것이라고 했다.
15년 차가 됐을 때 편집국 간부가 돼 있었고 논설위원까지 겸직했다.
주말, 휴일은 물론 여름휴가까지 반납하면서도 일에 빠져들었다.
내가 없으면 신문사가 망한다는 착각으로 온몸을 바쳐 일하는 '회사 인간'이었다.
그냥 일하는 것이 아니라 막노동하듯이 일했다.
문제는 정신적인 노동이 육체를 좀먹는다는 거였다.
흔히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둘 중 하나가 무너지면 둘 다 무너진다.
정신과 육체는 한쪽이 다른 쪽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기레기는 언론사 경영진들이 만드는 종족이다.
기사 쓰는 본분을 잊게 하고, 기자를 돈 벌어 오는 세일즈맨으로 전락시키는 장본인은 사주다.
그들은 월급 받으려면 월급보다 더 벌어 오라는 지상 명령을 내린다.
그런 생태계를 수도 없이 목도했다.
돈 벌어 오는 기자는 승승장구하고, 기사 잘 쓰는 기자는 멸족하는 행태가 기레기 사육장을 만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취직한 다음 착실하게 일한 결과 과장, 부장, 사장, 회장이 된 다음 하나 더 올라가니 송장이 되더라는 우스개가 있다.
행복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자기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직장인들이 가늘고 길게 갔으면 한다.
서두르지 말고 다그치지 말고 닦달하지 말고, 천천히 갔으면 한다.
빨리 가면 빨리 지치는 법이다.
일에 빠져 행복을 위한 일상을 살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불행이다.
내 몸을 다스리고 삶을 챙기는 것 역시 인생의 귀중한 행보다.
조금은 부족해도 적당히 벌고 알맞게 쉬고 싶었다.
쉼 없는 노동이란 궁극적으로 행복을 앗아가는 일이란 걸 알았다.
일과 쉼의 경계가 없으면 결국 일만 하는 노예가 된다.
일은 목적이 아니라 쉼을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어쩌다 나이를 먹었고, 어쩌다 은퇴를 했으며, 어쩌다 보니 일거리를 찾아 떠도는 유목민이 됐다.
이 불안감은 의지와 상관없이 작동한다.
나약하고 초라한 상황은 이따금 죄책감이 되어 돌아왔다.
강한 척, 든든한 척했지만 막상 때가 닥치니 뭐가 뭔지 어리둥절해 하는 마음인 것이다.
아. 나는 어쩌다 이리도 하찮은 사람이 돼버렸을까.
우리 인생에는 세 번의 정년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회사가 결정하는 고용 정년, 두번째는 자기 스스로 정하는 일의 정년, 세 번째는 하늘의 뜻에 따른 인생 정년이다.
대다수 직장인은 은퇴 후 삶을 걱정하면서도 준비는 차일피일 미룬다.
노후 대비는 늙기 전에, 은퇴 전에 해야 한다는 사실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하지만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알고 있어도 못 한다.
바보가 되는 건 바보여서가 아니라, 바보여야 편하기 때문이다.
장수는 문명의 선물이지만, 고령자는 인류가 전혀 사용해본 적 없는 자원이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할 수 있다는 의지다.
인생을 젊게 사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후회파가 아니라, 긍정적인 회상파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0.0001%의 가능성에도 희망을 거는 건 도박이 아니다.
생각의 유연성이다.
우리는 낡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나이 들면 딱딱해야 할 건 부드러워지고, 부드러워져야 할 건 딱딱해지며, 옛날 일은 또렷이 기억하고, 어제 일은 까맣게 잊는다.
직장 생활에 목매는 사람들은 회사에 의존하고 회사에 종속돼 살다가 회사와 연이 끝나는 날이 돼서야 후회한다.
회사는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 그토록 몸 바쳐 일했던 나는 곧 잊힌다.
202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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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덤추천작가와 관심작가(202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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