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라이프] 꿈
이틀 전에 과식 덕에 몸살기가 있었나부다. 집에서 몸을 두어시간 담그고 태국산 타이레놀 격인 사라 한알을 먹고 커피한 잔을 갈고 내려서 마시고. 그렇게 털어버리고는 이웃동네에 가서 족발을 먹었다. 집에 있는 9천원쯤 하는 와인을 들고 족발집에서 콜키지 만원을 내고 마셨다. 돌아와선 주말을 즐기며 푹 잤다고 생각했는데, 6시쯤 아침에 잠이 깼다. 아직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았는지 몸살기도 좀 있다.
한 번 더 집에서 담글까 하다가 동네 목욕탕을 가기로 했다. 냉탕과 온탕을 텀벙텀벙 하다보면 온몸이 편안해지니까.
목욕을 다녀와선 사라 한 알을 더 먹고 스크린을 내리고 드라마를 틀었다. 그리고 무중력의자를 폈다. 한 30분 쯤 자고 나면 마실 두유기가 따끈한 두유를 만들어 주겠지. 아몬드랑 서리태, 땅콩을 너고 돌려두곤, 불을 어둡게 하고 드라마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유럽, 아니… 남미인가… 어느 마을. 가본 적 없는 멕시코쯤의 분위기에 내가 5년도 넘게 살았던 태국을 반쯤 섞어 놓은 듯 한 마을에 도착했다. 삐걱거렸지만, 넓은 공동 목욕탕 같은 곳이 있고, 수영장도 있고, 뒷 산에는 마치 노르베리 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의 표지에서나 떠오를 법한 중년의 아줌마 - 찾아보니 이 표지엔 거의 할머니급 같은데 - 가 전통복장을 입고 걸어다니고 여기저기 티벳식일 것 같은 텐트가 쳐져있고, 사람들은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하듯 어울려서 이야기를 하며 돌아 다닌다.
저, 여기 여기 여행왔습니다. 3박 하고 오늘 떠나는데, 여기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 내가 한국말로 질문했는지, 그건 기억나질 않는다.
저 위 산등성이에만 넘어가지 않으면 찍어도 됩니다. - 내 한국말로 들었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방으로 급히 카메라를 챙기러 왔다. - 내 카메라는 해외여행지에선 아직 돌려보지 못한 신품. 뒷산의 풍경은 막 눌러도 전부 작품일거란 기대를 하며 숙소로 돌아왔지만, 내 방은 열려있었고, 바닥페인트 보수중이었다.
(아니 이미 임대한 방에 참 잘도 이런 걸 하는군..)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짐을 뒤졌는데, 이사라도 온 건지 짐이 너무 많다는 걸 인식했다. 예닐곱게 되는 가방 - 지금 돌이켜보니 그걸 다 어떻게 들고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을 뒤지며 카메라를 찾다가 문든 시계를 보니 3시쯤 되었던가…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밖으로 뛰어나갔다.
가깝게 지내던 친구 J가 비지니스로 여기 와 있었다. 퍙소와 같이 누군가와 열심히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M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뒷산에서 만난 아줌마 같기도 하고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M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마 한참 못본 M이 생각나서였을 것이다. 왜냐면 그 순간에 한국에 있는 M과 통화를 했던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J에게 다급하게 소리쳤다.
뒷산이 너무 이뻐. 떠나기 직전 사진을 찍기로 했는데 내 방은 수리중이고, 카메라를 찾다가 보니 오늘 나 다른 나라로 이동해야 하는 날이잖아. 근데 시계를 보니 시간이 벌써 오후야 기억은 안나는데 나 비행기 시간 놓친거 아닐까? 근데 몇 시 비행기였는지, 어느나라로 이동인지 기억이 안나…
J는 어서 스케줄을 찾아보라고 했다. 노트에 적혀있는 스케쥴을 찾으려 검색을 해도 빨리 나와주질 않았다. 그러다가 이번 여행의 스케쥴을 잔뜩 적어둔 노트를 찾았다. 그걸 보니 이번 여행의 날짜, 비행편, 호텔이 쫙 쓰여져 있었는데, 오늘은 이동이 아니라 남은 마지막 1박 일정이었고, 다음날은 그냥 귀국이었다.
갑자기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아, 그럼 뒷산을 찍어야지. 카메라를 찾으러 방으로 다시 뛰어올라갔다. 이제 여유있게 풍경을 담아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만일 것이었다. 3층이었던가, 4층이었던가, 뛰어올라갔지만 방을 결코 찾아낼 수가 없었다. 온 복도를 헤매던 난 하던대로 "그냥 엘리베이터를 탈걸"하고 중얼거리다가 잠이 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