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단(社稷壇) 경복궁(景福宮)
사직단(社稷壇) 경복궁(景福宮)
고궁박물관을 나와 근처에 있는 통인재래시장을 들러 보았다. 그렇게 큰 시장은 아니라서인지 두 번 정도 왔다갔다하며 적당한 식당을 찾았지만 와이프와 의견 일치를 볼 수 없었다. 나는 동물성 고기를 좋아하는 데 와이프는 국수 같은 탄수화물 위주의 음식을 좋아한다.
부부사이는 나이 들면 관계가 좋아지기보다 틀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이혼은 아니라도 별거하여 남남처럼 사는 부부도 의외로 많다. 내가 서로 양보를 해야 관계가 유지가 된다고 하는 반면, 와이프는 희생이라고 표현했다. 지금까지 우리 관계가 유지된 것은 자신의 희생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고함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나들이 나와서 언쟁하기는 싫다. 그녀가 원하는 메밀국수집에서 메밀국수와 꼬막비빕밥을 먹고 사직공원으로 갔는데 예전의 공원모습은 사라지고 사직단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사직단(社稷壇)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전기 종묘와 함께 토지의 신(神)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드리는 제단이다. 토지와 곡식은 국가의 기반과 민생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사직단은 전근대사회 왕조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을 두는 좌묘우사(左廟右社)의 원칙에 따라 사직단을 경복궁 서쪽 인달방(仁達坊)에 건설하였다.
이후 사직단은 임진왜란 과정에서 훼손되었다가 광해군 대에 수리되었지만, 1922년 일제가 부속 시설을 철거하고 사직공원을 조성하면서 기능을 상실하였다. 현재의 사직단은 1988년 문헌 고증을 토대로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며, 사적 제121호로 지정되었다.
경복궁(景福宮)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에 있는 조선시대의 궁궐 중 하나이자 조선의 정궁으로 사적 제117호로 지정받았다.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 천도를 단행하면서 조선 시대에 가장 먼저 지은 궁궐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275년간 방치되다가 19세기에 흥선대원군 주도로 중건되었다. 당시에는 7천여 칸이라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건축물로 거듭났었지만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절에 소수의 전각이 이전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수천 칸의 전각이 헐리고 매각되며 조선총독부 청사와 같은 다른 건물이 들어서는 궁 궐내가 크게 훼손되었다.
1990년에 이르러서는 고작 36동의 건물(고종 재위 당시의 7% 수준)만 남았고 지금도 계속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사라진 전각들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여 최근 복원한 전각들도 완벽하게 원형이라는 보장은 없으며, 후일에도 완전한 경복궁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우리나라는 남아 있는게 거의 없는거 같아요. 외세 침입만 당하면 탈탈 털렸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우리말, 우리글을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거 같습니다.
비록 남북으로 나뉘긴했지만 해방을 맞아 이렇게 살 수 있는 것만해도 거의 기적이라고 봅니다.
말했듯이 한글은 세계 최고의 발명품이지요.
저도 고기 보다는 면 종류를 좋아 합니다 ㅎㅎ
경복궁은 역시나 한복을 곱게 입은 분들 보는즐거움도 있는거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