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의 노래, 북유럽 8개국 패키지투어-27 에스토니아 탈린 송 페스티발 그라운드 공원(Tallinn Song Festival Grounds Park), 네브스키 대성당(Alexander Nevsky Cathedral)
발트해의 노래, 북유럽 8개국 패키지투어-27 에스토니아 탈린 송 페스티발 그라운드 공원(Tallinn Song Festival Grounds Park), 네브스키 대성당(Alexander Nevsky Cathedral)
2026.05.21
지금까지 투숙했던 호텔 중에서 시설이 가장 훌륭했다. 침대가 3개나 있어서 그냥 비워두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6시에 기상하여 6시 30분에 어제 털보 가이드가 소개해 준 공원으로 향했다. 동네에 있는 조그마한 공원 정도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탈린 시민들이 사랑하는 역사적인 공원이었다.
7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했다. 과일이 여러 종류 나왔지만 맛은 별로 없었다. 아무래도 일조량이 적은 지역이라 그런지, 열대 지방에서 맛보던 달콤한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9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네브스키 대성당으로 향했다. 호텔을 나서는데 인솔자가 자신도 사진 한 장 찍어줄 수 없느냐고 부탁했다.
함께 온 팀원들은 전부 나이가 많아 마땅히 모델을 해줄 만한 사람이 없어서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가장 나이가 어린 인솔자가 먼저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하니 무척 반가웠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단어는 바로 '초상권'이다. 첫날 덴마크 가이드가 초상권이 중요하니 자신의 사진을 찍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는 바람에, 이번 여행에서는 아예 사람 사진을 찍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탈린 송 페스티발 그라운드 공원(Tallinn Song Festival Grounds Park)
국민들의 민족적 자부심이자 독립의 상징과도 같은 역사적인 명소다. 핀란드만이 내다보이는 피리타(Pirita) 해안가 인근에 위치해 있어 평소에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훌륭한 산책로 역할을 하지만, 역사적·문화적으로 매우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소련의 지배하에 있던 에스토니아인들은 무력 대신 이 광장에 모여 다 함께 금지된 민족 민요와 애국가를 부르며 비폭력 저항 운동을 전개했다. 1988년 '야간 노래 축제' 당시에는 무려 30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이곳에 모여 노래를 불렀으며, 이 장엄한 '노래 혁명'은 1991년 에스토니아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기적적으로 독립을 쟁취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곳에서는 5년마다 에스토니아 최대의 축제인 '송 페스티벌(Laulupidu)'이 개최된다. 이 축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다. 축제가 열리면 전국에서 모인 약 15,000명에서 30,000명의 대규모 합창단이 거대한 아치형 무대에 오르고, 10만 명이 넘는 관객이 광장을 가득 메우며 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관이 연출된다.
마이클 잭슨, 메탈리카, 마돈나, 롤링 스톤즈 등 세계적인 팝·록 스타들이 에스토니아를 방문할 때 수만 명의 관객을 수용하는 초대형 야외 콘서트장으로 활용되는 곳이기도 하다.
알렉산더 네브스키 대성당(Alexander Nevsky Cathedral)
에스토니아 탈린의 톰페아(Toompea) 언덕 정상에 위치한 알렉산더 네브스키 대성당(Alexander Nevsky Cathedral)은 탈린 올드타운에서 가장 눈에 띄고 화려한 건축물 중 하나다. 에스토니아가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던 19세기 말(1900년 완공)에 건립되었다. 13세기 네바강 전투에서 스웨덴군을 격파한 러시아의 영웅 '알렉산더 네브스키'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다.
전형적인 19세기 말 러시아 복고풍(네오-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졌다. 양파 모양의 검은색 돔(어니언 돔) 5개가 솟아 있으며, 외벽은 정교한 모자이크화와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어 중세풍의 주변 건축물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건립 당시 러시아 제국이 에스토니아인들을 동화시키기 위한 '러시아화' 정책의 일환으로 에스토니아인들의 자존심인 톰페아 성과 의회 바로 맞은편에 의도적으로 크게 지었다. 이 때문에 1920년대 에스토니아가 처음 독립했을 당시 '러시아 압제의 상징'이라 하여 철거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예산 부족과 건축학적 가치 덕분에 살아남아 지금은 탈린의 대표적인 역사적 랜드마크가 되었다.
아픈 기억조차 잘 간직할 가치가 있지요.^^
아픈 역사도 기억해야하는 게 역사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