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역 괴테의 말

in #kr-bookyesterday

오늘은 유난히 힘이 많이 빠지고, 유난히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이었다. 택배 작업을 하다가 손이 베여 피가 많이 났다.
회의까지는 두 시간 남짓. 평소 같았으면 자료를 다시 들여다보며 준비에 몰두했겠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대신 잠깐이라도 정신을 환기하고 싶어, 책꽂이에서 얇은 책 한 권을 꺼냈다. 『초역 괴테의 말』 이란 책이다.

image.png

책장을 넘기다 보니, 문득 일본이 떠올랐다. 이 책이 일본에서 엮인 책이어서였을까. 일본은 독일에 대해 묘한 동경을 품고 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국가의 틀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독일, 정확히는 프로이센을 중요한 모델로 삼았다. 헌법과 제도뿐 아니라, 사고방식과 학문 전반에 걸쳐 그 영향은 깊게 스며들었다.

그 영향은 문화에서도 드러난다. 일본의 만화와 음악 속에는 독일 문학과 예술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일본 만화의 거장 데즈카 오사무가 『파우스트』에 깊이 매료되어 여러 작품으로 재해석했다는 사실은, 그 영향의 깊이를 잘 보여준다.

괴테의 삶을 떠올려보면 흥미롭다. 그는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법학을 공부했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그는 결국 문학가다. 그리고 그가 그런 길로 나아가게 된 데에는, 어쩌면 반복된 사랑의 실패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 경험들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이어졌고, 그 작품은 당대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감정적 사건처럼 받아들여졌다.

image.png

이후 『이탈리아 기행』과 「마왕」을 지나, 그는 끝내 『파우스트』라는 거대한 작품에 도달한다. 한 인간이 평생에 걸쳐 쌓아올린 사유의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초역 괴테의 말』은 그러한 작품들 속에서 길어 올린 문장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246개의 짧은 문장들이 열 개의 주제로 나뉘어 담겨 있다. 길지 않은 문장들이지만,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삶과 사유가 응축되어 있다.

책을 읽다가 몇 문장에서 오래 머물렀다.

사람들 대다수는 누군가가 나아갈 길을 알려주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갈림길 앞에서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순간, 걸음을 멈추고 만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내가 지금 멈춰 서 있는 것도 어쩌면 비슷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향이 없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언제나 성실할 것임을 약속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항상 같은 신념을 관철하며 살 것이라는 약속은 할 수 없다. 신념이란 새로운 경험 혹은 새로운 만남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때그때의 신념을 성실히 따르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문장은 이상하게도 위로처럼 느껴졌다.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 흔들림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듯이.

일한다는 것은 훌륭한 행위다. 그러나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위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일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돈이나 명예가 인생의 진정한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또한 아뮐 대단한 상대라 할지라도 자신이 사랑할 수 없는 이를 위해 일하는 것은 가치가 없다.

평소라면 당연하게 넘겼을 말인데, 오늘은 조금 다르게 읽혔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 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사랑’과 연결되어 있는지, 잠깐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괴테의 유언

빛을 … 조금 더 빛을

아주 짧은 말인데,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거창한 변화나 결심이 아니라,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더 밝은 쪽을 향해 보라는 말처럼 들린다.

책을 덮고 나니, 컨디션이 완전히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마음은 조금 정돈된 느낌이었다.

회의까지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이제는 다시, 해야 할 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조금 더, 빛이 있는 쪽을 향해서.

Sort:  

Upvoted! Thank you for supporting witness @jswit.

잠깐의 독서가 두뇌에 여유를 주었군요. 잘 하셨어요.

Coin Marketplace

STEEM 0.06
TRX 0.31
JST 0.059
BTC 68904.51
ETH 2061.20
USDT 1.00
SBD 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