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사변 육군전사 5권(46)

in #kwh7 days ago (edited)

제2절 전투 경과 개요(부도 제9,10 참조)
4283년 12월 25일을 전후하여 38선 전역에 연한 적의 현저한 활동 상황은 주로 국련군에 대한 진지 배비의 수색 공격이 있었고, 특수한 변동은 아직 없었다. 이러한 적의 완만한 압력을 받으면서 아군은 일선 전투부대와 후방의 지원부대에 이르기까지 일층 긴밀한 연결을 취하는 동시 강력한 종심 진지를 가진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 지점으로 계속 철수하였던 것이다.
제8군은 미 제2사단을 예비대로 하여 전 병력을 전선 중앙 후부에 위치하게 하여 전방 방어진지가 적에 의하여 돌파할 경우에 대비하여 신속히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던 것이다.
이에 제8군사령관 워커 중장은 그의 예하 각 군단장들에게 모든 병력을 도동리로부터 의정부 그리고 퇴계원 동방 1마일의 지점을 통과하여 한강 남방에 이르는 교두보선까지 철수하도록 명령하였다. 이러한 교두보는 서울 지구로 아군 병력을 질서 있게 철수 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종심을 가졌고, 또 이와 동시에 전진하여 오는 적에게 대하여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었으며, 역사적인 적의 접근로인 의정부 지역은 고저 많은 고지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이 고지로부터 협곡을 연하여 전진하는 적에게 격심한 타격을 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서울 북방의 방어선이 구축되는 동안 4281(1948)년 9월 30일 이래 제8군을 지휘하여 오던 워커 장군이 12월 23일 전선 방문 도중 자동차 사고로 전사하였으며, 12월 26일 그 후임으로 리지웨이 장군이 취임하여 제8군을 지휘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는 동안 12월 27일에 이르러 적은 동부전선에서 한국군 제9사단에 대하여 일대 공격을 가하여 왔으므로 아군으로 하여금 약 15㎞ 후퇴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이러한 적의 대공격은 한국군 제9사단과 수도사단의 전투지경선인 간격을 돌파한 것이며, 제9사단을 전방과 후방을 분리시켜 그의 병참 보급선이 위협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앞서 전선 중앙 후부에 배치되었던 제2군단은 원주, 홍천 지구로 이동하여 북측과 동측으로부터의 적의 전진을 저지함에 노력하였다. 적은 또다시 국군 제9사단의 제28, 제29연대를 공격하여 제8군의 동측면에 위협을 가하였으며, 이때 적의 공격 방향의 서부에는 유재흥 장군이 지휘하는 국군 제2군단이 배치되었고, 제9사단의 제28연대는 남방에, 제29연대는 동측면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제9사단은 김종갑 장군이 지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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