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기자단] 느림의 미학
봄비가 포슬포슬 내린 뒤 촉촉한 공원, 한시간을 달리고 숨을 고르던 중 발밑에서 작은 움직임을 발견했다. 녀석은 자기 몸집보다 몇 배는 무거워 보이는 집을 등에 지고,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보폭으로 길을 건너고 있었다.
내 페이스는 km당 6분 정도로 평소보다 힘을 뺀 가벼운 조깅이었지만, 달팽이의 눈에 비친 나는 아마 광속으로 지나가는 거인이었을 테다. 하지만 녀석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자니 오히려 조급하게 앞만 보고 달려온 내가 길을 잃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러너들에게 '느리게 달리기'는 생각보다 고차원적인 기술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고강도 훈련만이 실력을 키워줄 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낮은 심박수를 유지하며 달리는 'Zone 2' 훈련이야말로 우리 몸의 유산소 시스템을 가장 단단하게 다져준다. 나는 그런 사실도 모른 채 한동안 몸을 혹사시켰다. 빠르게 달려야만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어리석은 생각의 결말은 결국 부상이었다.
세포 속 미토콘드리아가 증식시키고, 지방 연소 효율이 극대화되는 기적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지루하고 느린 시간 속에서 일어난다. 더 빨리 달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더 천천히 달리는 시간을 견뎌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달리기뿐 아니라 성장을 갈구하는 모든 삶의 영역에 적용되는 역설의 미학이 아닐까 싶다. 성장은 선형적인 우상향도, 계단식 상향도 아닌, 오름과 내림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늘 '즉각적인 성과'와 '압도적인 속도'를 독촉한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과도하게 채찍질하고, 결국 '번아웃'이나 '부상'이라는 벽에 부딪히곤 한다. 달리기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나는 얼마나 빠르게 달리기만 했는지 돌아보았다. 문득 아이들에게 방정리를 빨리 하지 않았다고, 밥을 빨리 먹지 않았다고, 뭐든지 빨리 하지 않았다고 다그치던 일이 떠올라 부끄러웠다.
오늘 만난 달팽이옹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그분에게 중요한 건 '얼마나 빨리'가 아니라 '어디로 향하는가'였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매일 새벽(?)을 깨우며 얻은 깨달음도 결국 같다. 기록이라는 결과보다 중요한 건, 매일 아침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길 위에 서는 그 꾸준한 과정 자체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느림은 포기가 아니다. 뒤쳐짐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내 보폭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강력한 자신감이다.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에서 가장 우아하게 결승선에 들어오는 사람은, 가장 빠르게 달린 사람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은 사람이라 확신한다.
가끔씩 조급함이 마음을 짓누를 때면 오늘 아침 젖은 길 위에서 만난 작은 스승을 떠올려야겠다. 느리기에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그 정직한 걸음을, 나 또한 매일 새벽 조금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나만의 속도를 유지해야겠다. 언젠가 뒤돌아 봤을 때, 달팽이처럼 아름다운 흔적만 남을 수 있도록 말이다.
나에게 깊은 깨달음을 준 우리 달팽이옹은 안전하게 풀숲으로 이동~!!


몸을 의식하며 달리는 것도 좋지만.
외부를 의식하며 달리는것도 명상이 되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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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르 좋아하는 제가 스치는 러너 볼때 드는 생각은
"천천히 걸으면 더 소중한것을 많이 볼텐데..."입니다.
러너는 걷는 사람 볼떄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지는 글이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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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옹께서 좋은 가르침을 주셨네요~~~
느림의미학..인내심의미학이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