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이야기] Chapter13. 숨겨진 소년들 (2)
절대 받지 말 것
결국 물속에서 눈을 뜨지 못한 케말 지구의 소년은 아파트 보일러실에 숨어버렸다. 마법사가 떨어져 내려야 한다고 말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년은 주변이 조용해지자 슬그머니 기어 나와 마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이상한 말을 늘어놓았다.
"저기 그러니까요. 제가 여행사를 알아봤는데요. 떨어져 내리지 않고도 뒤집힌 세계에 갈 수 있는 멤버십이 있다네요. 마법사님도 떨어져 내리기 귀찮으시잖아요? 한 명을 더 데리고 오면 가입이 가능하다는데, 마법사님 같이 가입하실래요?"
마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소년은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케말 지구의 소년에게서 한밤중에 (시도 때도 없이 불현듯 연락을 하는 그에게는 시차에 따라 새벽이다) 전화가 걸려 왔다.
"마법사님, 제가 새로운 일을 시작했는데요. 뒤집힌 세계와 이 세계의 소년들이 서로 결혼할 수 있도록 결혼정보회사를 해보려고 하는데, 어떠세요? 같이 하실래요? 거기도 미혼 소년들이 많죠?"
마법사는 그냥 웃었다. 그리고 케말 지구 소년의 전화번호를 당장 지워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전화를 받지 않으려면 오히려 번호를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우는 대신 즐겨찾기에 저장했다. 마법사는 성명란에 그의 이름 대신 이렇게 기입했다.
'다단계, 절대 받지 말 것'
소년들의 떡잎
서쪽 끝 지구의 소년은 1차 추락에서 망설이다 거절을 했다. 마법사가 추락 비용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1억일세. 말하지 않았나. 이제 선불제로 바뀌었다고."
소년은 터무니없다 생각하고는 그 돈이면 항공기 비즈니스석을 구해서 타고 가겠다며 티켓을 예매했다. 하지만 뒤집힌 세계로 가는 항공기가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소년은 사기를 당했다. 이상한 계약 때문에 위약금까지 마법사가 제시한 추락 비용의 두 배를 물어내야 했다. 가긴 가야겠는 소년은 다시 마법사를 찾았다. 다른 방법이 없겠냐고 마법사에게 물었다.
"1억일세. 말하지 않았나. 역사는 반복되고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네."
소년은 사기를 당해 돈이 없었지만 차마 마법사에게 그 말은 하지 못하고, 돌봐야 할 애지중지하는 화초들이 있어 이번에는 안 되겠다며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자 화초들이 모두 죽어있었다. 바닥에는 떨어져 내린 죽은 화초의 잎들이 서로 엉켜서 떡져 있었다. 소년은 샤워기를 틀어놓고 망연자실해 울다가 욕실 창문 너머로, 탑 아래로 날아오르는 소년들과 마법사를 목격하고는 마법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마법사님, 저도 날아오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러고는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줄줄이 적어 내렸다. 얼마 안 있어 마법사에게서 답신이 왔다.
'날아오르려면 먼저 떨어져 내려야지. 2억일세. 말하지 않았나. 사기는 반복되고 사람의 의심은 변하지 않는다네. 물론 물가도 오르고 말이야. 그러니 자신에 대한 믿음을 증명하게. 떨어져 내리는 건 자네지 내가 아니야.'
소년은 번민에 빠져 들었다. 돈도 없고 믿음도 없기 때문이다. 한편, 마법사에게서 서쪽 끝 지구 소년의 사연을 전해 들은 뒤집힌 세계의 소년 이안은, 대뜸 마법사에게 가방을 사주겠다며 말했다.
"마법사님, 저에게 가방을 주셨으니, 저도 가방을 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즉각적 보상을 저의 재능으로 삼고 싶습니다."
마법사는 될성부른 녀석이라며 소년에게 말했다.
"하하하 고맙네. 하지만 2억일세. 말하지 않았나. 보상은 반복되고 축복은 배수라네. 30배, 60배, 100배. 얼마를 먹고 싶나?"
"얼마까지 가능합니까?"
"자네의 믿음만큼. 얼마인가, 자네의 믿음은?"
소년은 머릿속으로 숫자를 골랐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소년을 보며 생각했다.
'무서운 녀석. 크게 되겠어. 믿음이 실력이라는 걸 알고 있다니.'
가짜 거북이
20번째 지구의 소년들은 뒤집힌 세계의 소년 이안이 집어삼켜대고 있는 거리를 지나며, 뭔가 이상하다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뭐 좀, 이상하지 않아?"
"그러게. 데자뷔 같은 것이 느껴지네. 누가 뭘 막 하고 있나 봐?"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이상하네. 기분이 참 이상해."
20번째 지구의 소년들은 이상한 기운에 한동안 잊고 있던 마법사를 떠올렸다. 토끼를 쫓으라고 자신들을 내몰던 마법사는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다.
"그 마법사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택도 없이 토끼를 쫓으라고 하더니, 그만두겠다고 하자 '이생은 여기까지'라며 사라져 버렸잖아."
"아, 토끼? 그거 마법사가 먹어버렸잖아."
"그랬어? 마법사가 토끼를 먹어버렸어?"
"그래, 토끼 말야. 3년 전에 같이 레스토랑에 갔었거든. 그런데 오늘의 메뉴로 토끼고기가 나왔어. 그걸 보고는 마법사가 우걱우걱 토끼 고기를 씹으며 그러던걸. 자신이 토끼를 먹어버렸다고."
"그러면 토끼는 어디로 간 거지?"
"아마.. 마법사 뱃속에 있겠지?"
소년들은 자신들의 대화가 어째 이상하다고 느끼며, 뭔가 꺼림직해져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잘 지내라 인사하고는 헤어졌다. 하지만 돌아서자마자 소년들은 나락으로 미끄러져 내리기 시작했다. 뒤집힌 세계의 소년 이안이 그들이 샀어야 할 마르탱 거리를 집어삼켜 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로가 꺼지고 땅이 자꾸 내려앉았다. 하지만 소년들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나락으로 미끄러지며 연신 이상한 일이라고만 여겼다.
마법사는 뒤집힌 세계의 소년 이안에게, 여기는 어느 소년의 땅이며, 여기는 또 어떤 소년의 보물이었다고, 마르탱 거리 여기저기 숨겨진 것들의 역사에 대해 말했다. 그러자 뒤집힌 세계의 소년 이안은 팩맨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그들이 놓치고 흘린 것들을 모두 집어삼켰다. 소년이 삼켜버려 꺼지고 내려앉은 거리 여기저기 이상한 구멍이 생겨났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아무도 그 구멍 속으로 내려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길을 인도할 토끼를 마법사가 먹어버렸기 때문이다.
한편, 뒤집힌 세계에서 탑에 거꾸로 매달려 구멍 위로 소년들이 나락으로 미끄러지는 광경을 바라보던 마법사는, 뚫린 구멍 위로 튀어 나가려는 토끼들을 낚아채며 말했다.
"어딜 가, 앨리스는 뒤집힌 세계에서 여왕이 되었다구. 쟤들은 가짜 거북이야."

_ [소년 이안/시즌2_ 뒤집힌 이야기] Chapter13. 숨겨진 소년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