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이야기] Chapter7. 목요일의 아이는 온몸 비틀기 중

in #stimcity2 months ago (edited)



가브리엘 교장은 학교를 그만두었다. 여자 친구와 결혼을 한다면서. 소년에게 날아온 공지 메일에는 교장이 공석이 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소년은 멘붕에 빠졌다.



'가브리엘이 결혼을 한다고? 교장인 것도 이상한데 학교를 인수했다더니, 이젠 결혼을 해야 해서 학교를 관둔다고? 도대체 이놈의 학교는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아니, 결혼이 아니네? 사회적 결합은 또 뭐야?'



가브리엘은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브리엘은 여자 친구와 사회적 결합을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동성 간의 사회적 결합인 것이다. 가브리엘의 여자 친구도, 가브리엘도 여자이므로.



"사회적 결합이 아니라 시민연대계약이라는 거예요. 결혼보다 자유롭고, 간단하게 서류 제출만으로 성립되지만, 법적, 사회적 안정성을 보장받는 제도지요. 국가가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책임과 연대를 인정받는 제도랍니다."



소년이 묻지도 않았는데 카림이 말했다. 소년은 또랑또랑한 눈으로 소년을 올려다보고 있는 카림에게 짜증 섞인 말투로 답했다.



"알아요, 알아. 동거 같은 거잖아. 그게 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내가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다만, 왜 무책임하게 교장을 관뒀냐, 이 말이야. 학기가 시작하는 이 시점에. 그러면서 여자 친구는 어떻게 책임지겠어?"

"시민연대계약의 책임은 서로 지는 것입니다. 이 사회에서, 한쪽의 일방적인 책임 부과는 가부장제의 폐해로 금기시되어 있어요. 물론 저는 어느 쪽 편도 아닙니다만."

"너가 가부장제의 아름다움을 몰라 그래. 어렵고 힘들어 봐, 다 힘센 가부장 찾아 스펙 쌓고 줄을 서고 그러는 거야. 이 도시 사람들은 살만한 가보지? 시민연대계약이 뭐야 대체, 결혼이면 결혼이지. 어쨌거나, 가브리엘 성격에 덜컥 결혼을 해버릴 것 같지는 않은데, 일단 살아본다는 얘기인 거지? 결혼은 구속이라고 할 것 같은 아이가. 암튼 축하할 일이네. 이 도시에 살고 싶어서 마법 학교 교장이 되었다고 하더니, 아주 정착할 작정인가 보네. 여자 친구가 시민권자인가? 짜식, 책임 따르는 결혼은 안 하고, 제도는 보장되는 시민 뭐시기로 잘도 엮었구만."



소년은 가브리엘이 여자 친구와 맺는다는 시민연대계약이라는 것이 가브리엘의 이 도시 정착을 위한 편법이 아닌가 의심했다. 어쨌거나, 가브리엘이 이 도시를 좋아하는 것만큼은 더욱 증명된 것이다. 연을 맺었으므로.



소년은 마법 학교에서 처음 사귄 친구가 교장이어서 한편으론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학교를 관둔다고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다시 친구가 없어진 것이다.



'이 학교는 도대체 수업을 시작할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언제 개강 한다는 말이 없으니. 학교를 가야 친구를 사귈 텐데. 하나 있던 친구마저 가버리고... 어! 뭐라고? 수업이 이미 시작됐다고? 뭐야? 교실에서 수업받고 그러는 게 없는 거야?"



투덜거리며 공지 메일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던 소년은 다시 멘붕에 빠졌다. 공지 메일에는 수업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소년은 개강 사실을 자신만 몰랐나 순간 당황했지만, 자세히 읽어보니, 교실에 앉아 강의를 듣는 수업 따윈 이 학교에 없다는 말 같았다. 공지 메일을 보낸 이는 휴고 교수였다. 그는 자신을 신입생 담당 교수라고 소개했다.



"친애하는 신입생 여러분, 입학을 환영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담당 휴고 교수입니다. 모두들 수업은 잘 받고 계십니까? 어리둥절하겠지만, 마법 학교의 수업은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므로, 전통 학교의 수업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대신 수업을 코치해 줄 개인 교사를 이미 신입생 여러분의 손에 배정해 드렸습니다. 세 번째 눈 말이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각자 배정된 세 번째 눈에게 물으면 됩니다. 친절하게 답해 줄 겁니다. 그럼, 커리큘럼에 따라 여러분에게 첫 번째 과제를 내드리겠습니다. 과제는 학생 개개인의 특성과 직관어 구사 능력을 고려하여 모두 다르게 제시됩니다."



휴고 교수는 수업이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삶의 현장이 수업의 현장이라고. 그러면서 기이한 첫 번째 과제를 내주었다. '공작 찾기', 공작 찾기가 소년의 과제였다.



"공작을 찾으라고? 날아다니는 새? 공작 말이야? 이게 뭐지? 도대체 설명이 제대로 되어 있지를 않으니. 카림, 이 과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궁금한 게 있으면 너한테 물어보라는데? 너가 내 보조 교사라며?"



소년은 공지 메일에 적혀 있는 대로 자신에게 배정된 세 번째 눈, 카림에게 물었다. 소년은 벌써 한 달째 카림과 동거 중이다. 꿈에서 깨어난 소년은 자신의 손에 생겨난 눈에 깜짝 놀랐지만, 꿈과 현실의 구분이 없는 마법사들의 세계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카림이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서 자신에 대해서는 곧 알게 될 거라며 소개를 미루었다. 소년은 궁금증을 못 참고 계속 추궁했지만, 카림은 때가 이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밝힐 수 없다며 소개를 거부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그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이다. 학교에서 배정한 보조 교사.



"네, 맞습니다.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면 무엇이든 저에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저는 직관어로만 답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 주세요. 어쩌면 더 이해가 안 가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안님이 마법 학교에 입학한 목적은 직관어를 배우기 위함이니까, 저야말로 가장 좋은 실습 파트너이지 않겠습니까? 이번 과제는 공지 메일에 나와 있는 대로 '공작 찾기'입니다. 좀 더 읽어보시면 힌트가 적혀있을 겁니다."

"힌트가 적혀 있다고?"



소년은 카림의 말을 듣고는 길고 긴 공지 메일을 천천히 다시 읽어보았다. 메일에는 목요일의 아이를 쫓아가면 공작이 나타날 거라고 적혀 있었다.



"힌트라.. 목요일의 아이를 쫓아가라고? 목요일의 아이? 내 최애 캐릭터인 그 목요일의 아이를 말하는 거야? 드라마 <목요일의 아이는 온몸 비틀기 중>의 그 목요일의 아이?"

소년이 카림에게 물었다.

"아마도 그렇겠죠? '목요일의 아이'가 최애 캐릭터시군요. 제시된 게 힌트라, 저도 힌트 이상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암튼 목요일의 아이를 쫓아가세요. 그러면 공작이 나타날 겁니다."

"목요일의 아이를 어떻게 쫓아? 그건 드라마 주인공인데?"

"이안님도 주인공이시죠. 삶의 주인공. 주인공들끼리는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답니다."



소년은 카림의 말에 짜증이 났다. 이해 못 할 과제와 난해한 힌트보다, 카림의 말이 더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소년은 카림에게 더 물으려다 그만두고 고민에 빠져들었다. 카림은 소년의 동향을 학교에 보고라도 하는 듯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소년의 표정을 쫓았다.



'쟤한테는 물어봐야 소용이 없어. 이상한 말이나 늘어놓고. 아.. 공작을 찾으라고? 목요일의 아이를 쫓아서? 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마법의 세계는 역시 난해해. 괜히 입학했나...'



소년은 고민을 하면 할수록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비관적인 생각만 드는 것 같아 마음이 심란해졌다. 수업은 시작한다는 얘기도 없더니, 삶의 현장이 수업이라며 이상한 과제를 내주지 않나. 보조 교사라고 손에 생겨난 눈은 도움을 주는 건지, 감시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고. 그러면서 한편으론 결혼 아니 시민연대계약을 맺는다며 학교를 훌쩍 떠나버린 가브리엘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소년도 어느새 이 도시를 좋아하게 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 도시에 온 건 잘한 것 같아. 너무 내 스타일이긴 해.'



소년은 낭만 가루가 섞인 향수로 분칠한 듯한 이 도시의 취향에 어느새 중독되어 가고 있었다. 복잡한 마음으로 집을 나설 때마다 소년은, 이 도시에 오길 잘했다고 감탄을 내뱉곤 했다.



'역시, 에펠탑의 도시는 달라. 아, 이러지 말고 집을 나가보자. 걷다 보면 뭔가 실마리가 찾아지겠지. 마법사는 걷는 자이기도 하니까.'



소년은 집을 나섰다. 그리고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에펠탑의 도시는 넓지도 크지도 않은데, 매번 새롭고 또 처음 보는 듯한 길과 골목이 나타났다. 신기한 눈으로 두리번거리다보면 어느새 만 보, 이만 보를 넘겨 걷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그러다 배가 고파진 소년은 먹을 데를 찾다가 또 몇천 보를 걸어버렸다. 마땅한 식당이 없는 데다가, 이 도시의 시민들은 모두 함께 점심을 먹는지, 오후 2~3시가 되면 모든 식당이 브레이크 타임을 내거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소년은 점심을 해결할 곳이 없어지는 것이다.



'아, 식당이 다 브레이크 타임에 걸려 버렸네. 맥도날드에 가야 하나? 연 데가 없으니. 쓰레기로 배를 채우고 싶지는 않은데.'



바른 식생활을 지향하는 소년은 정크 푸드를 혐오했다. 햄버거도 딱히 좋아하지 않는데 패스트 푸드는 더더욱. 맥도날드는 불가피할 때만 최소한으로 가는 곳이다. 2년 전 마법사는 그런 소년에게 한소리를 했다.



'그래도 맥도날드를 무시하지 말게. 길 떠난 여행자에게 맥도날드와 별다방은 집이나 다름없어. 언제 어디서나 일정한 공간과 음식을 제공해 주니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북극성 같다고 할까? 인생에 기준이 되어주는 불변의 공간을 갖고 있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지. 언제든 다시 리셋할 수 있으니까.'



마법사도 평상시에는 잘 가지 않지만, 여정을 시작하면 결국 그곳에 가게 된다며, 순례자의 여관 같은 곳이니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아니면 매번 새로운 도시의 새로운 주문 방식을 익혀야 한다고. 낯선 음식은 물론이고.



'그래, 어쩔 수 없다. 오늘 점심은 맥도날드에서 해결하는 수밖에.'



소년은 점심을 맥도날드에서 때워야겠다 생각하고는 대로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사거리 코너에 맥도날드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맥도날드 현관문을 밀고 들어서던 소년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맥도날드와 '목요일의 아이'가 콜라보 프로모션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소년의 최애 캐릭터 피규어를 사은품으로 주는.



'뭐야, 이거! '목요일의 아이' 캐릭터 피규어를 주잖아!'



소년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프로모션이었다. 게다가, 꼭 가지고 싶었던 '목요일의 아이' 피규어라니.



'세상에, 맥도날드에서 '목요일의 아이' 프로모션을 할 줄이야! 게다가 피규어가 사은품이라니. 이거 정말 목요일의 아이를 쫓다 보면 공작이 나타나는 거 아냐?'



소년은 사뭇 긴장된 마음으로 주문용 키오스크를 터치했다. 그러자 '목요일의 아이' 프로모션 메뉴가 여러 개 화면에 나타났다. 소년은 메뉴 구성을 보며 고민이 들었다. 먹을 만한 세트들은 다 비싸고, 만만한 게 디저트류였다. 사실 배도 고프고 하니 좀 비싸도 먹을 만한 세트를 고르는 게 맞을 것 같았지만, 소년은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음.. 그냥 제일 저렴한 디저트류 중에서 하나 시키고, 대신 싼 치즈버거를 하나 더 시키지 뭐.'



소년은 합리적인 타협을 했다. 저렴한 디저트 메뉴를 시키는 대신 양이 적을 수 있으니, 버거를 하나 더 시키는 걸로. 그래도 그것이 먹을 만한 세트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소년은 잔뜩 기대하는 마음으로 주문을 마치고는 자리에 앉아 세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점원이 가져다준 세트에는 피규어가 없었다. 착오가 있는 건가 싶어 카운터에 가서 물어보았지만, 점원은 자신은 아르바이트라 잘 모른다며 아마도 프로모션 행사 기간이 끝날 때가 되어서 재고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년은 실망하며 자리로 돌아왔다. 아쉽지만, 없다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건너 테이블에서 어떤 여학생이 소리를 질렀다.



"이런 제길, 이건 내가 원한 피규어가 아니잖아!"



여학생은 '목요일의 아이' 랜덤 박스에서 자신이 원하는 캐릭터의 피규어가 나오지 않았다며 소리를 질렀다. 소년은 분명 피규어 프로모션이 끝난 것 같다고 점원이 얘기했는데, 저 여학생은 어떻게 피규어를 뽑은 거지 의아했다. 당장 가서 따지고 싶었지만, 이미 너무나 배가 고픈 상태여서 다시 카운터로 가서 실랑이할 마음의 에너지가 없었다. 소년은 말라비틀어진 감자튀김을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으며 운이 안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카림, 너는 감자튀김 좋아하니? 햄버거는?"

"저는 눈이에요. 그런 건 입에게 물어보셔야죠."

"아, 그렇구나. 너는 눈이지."



소년은 키오스크 앞에서 카림이랑 나눠 먹어야 하나 생각했던 자신이 웃기다 생각했다. 카림은 눈인데. 그러면서 몸이 지치니 멘탈도 제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은 햄버거를 우걱우걱 씹으며 카림에게 다시 물었다.



"피규어는 포기해야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맥도날드에 올 걸 그랬어. 매진 됐나 봐."

"후회는 끝난 다음에 하는 것이지요.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니까요."

"뭐야? 너도 아까 들었잖아. 프로모션이 거의 끝났다잖아."

"완전히 종료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맥도날드가 이 도시에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뭐? 그럼, 지금 나보고 피규어를 찾아 이 도시의 맥도날드를 다 뒤지라는 거야?"

"그건 이안님 마음이구요."



소년은 급피곤이 몰려왔다. 그러잖아도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데, 피규어를 찾아 이 도시의 맥도날드를 순례하라니. 있을지 없을지, 있다면 어느 지점에 있는지 아무런 정보도 없는데. 헛수고가 될지 모를 일을 이런 몸으로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때 옆 좌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일어나다 소년의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콜라를 넘어뜨렸다. 촤르르 얼음이 테이블 위로 쏟아졌다. 다행히 마른 목을 축이느라 음식이 나오자마자 소년이 원샷을 때린 터라 콜라가 많이 남아 있지는 않았다. 남자는 티슈를 가져와 테이블을 닦으며 연신 소년에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때마다 남자가 쓰고 있던 모자에 적힌 글귀가 선명하게 소년의 눈에 들어왔다. 모자에는 'NOW or NEVER'라고 적혀있었다. 남자가 떠나자, 카림이 말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데요."

"나도 봤거든. 에휴~"



소년은 알고 있었다. 남자의 모자에 쓰인 글귀가 직관어로 적혀있었다는 것을.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며. 소년은 솜뭉치처럼 무거워진 몸을 일으켰다. 직관의 표지를 목격했을 때에는 지체해선 안 된다는 것을 짧은 경험에도 소년은 알고 있었다.



'직관의 메시지는 우주와 우주가, 세계와 세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더욱 분명하게 자신을 드러낸다네. 그런데 그게 개기일식이나 월식처럼 순간적이라, 탁 붙들지 않으면 상식의 어둠이 밀고 들어와 뭉개버리고 말아. 우주의 움직임이 겹치는 순간에 드러나는 메시지니까.'



마법사의 말이 직관어로 소년의 귀를 울렸다. 지금 당장 일어나, 피규어를 찾아 나서라는! 소년은 헐레벌떡 일어나 목요일의 아이를 찾아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달리기 시작했다. 돌아야 할 지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도시의 맥도날드는 24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년은 반복했다.



"혹시, 목요일의 아이 있나요?"



목요일의 아이는 없다는 답이 매번 반복되었다. 소년은 맥도날드 순례를 이어가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목요일의 아이는 어쩌다 맥도날드와 콜라보를 하게 되었는가. 목요일의 아이는 어쩌다 내 최애 캐릭터가 되었나. 그것은 소년이 목요일에 태어났기 때문이기도 하고, 목요일의 아이 역시 드라마 속 마법 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른들과 사회의 압박 속에서도 언제나 의기양양한 그의 모습이 부러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목요일의 아이 역시 실수와 오해를 남발했다. 넘치는 자신감은 스스로 장애물을 만들기 마련이니까. 그때마다 목요일의 아이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온몸을 한껏 비틀었다. 장애물을 넘어야 하니까. 목요일의 아이는 온갖 장애물을 딛고 성장해 갔다. 어른으로.



맥도날드 순례가 이어질수록 소년의 몸은 더 무거워졌다. 마른 목을 축이느라 연신 콜라를 들이켰기 때문이다. 바른 생활 소년의 친절 강박은 카운터에서 주문은 하지 않은 채, 목요일의 아이가 있냐고 문의만 할 수는 없었다. 뭐라도 하나 시켜야 하는 것이다. 주문은 손님의 의무이니까. 만만한 건 콜라였다. 뛰느라 목이 마르기도 하니. 방문하는 지점마다 콜라를 사 마셨더니 소년의 방광이 점점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갔다. 그러다 소년은 무언가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며 잊고 있던 어떤 광경이 생각났다. 콜라를 들고 엉거주춤 뛰지도, 걷지도 못하던 2년 전 그때.



'아, 2년 전에도 이랬던 것 같은데... 그래! 폼클렌징과 햄버거 말이야. 앗차,'



소년은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 상황이 마치 데자뷔처럼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기억해 냈다. 2년 전 마법사와 로마 기차역에서 햄버거 때문에 기차를 놓쳤던 그 일을. 그 여정 중에도 소년은 가격 때문에 폼클렌징 구매를 여러 번 망설였다. 그러다 억압이 튀어나와, 평소에는 먹고 싶어 하지도 않던 햄버거를 먹으려 들다 기차를 놓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기차를 놓쳤지. 자네는 파마시에서 원하는 폼클렌징을 살 수 있었어. 하지만 비싸다는 이유로 포기했지. 번번이. 욕구를 억압한 셈이야. 그리고 넘쳤지. 억눌린 압이 햄버거로 튀어나와 버린 거야. 그리고 스스로에게 억압한 대가를 지불케 한 거지. 원하는 것을 포기한 대가로 원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게 하고, 기차를 놓치는 낭패를 경험하도록 말이야. 그런데 자네는 대체 뭘 얻었나?”



질책하던 마법사의 말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때는 욕구의 억압이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적절하지 못한 소비가 문제였다. 만약 소년이 옆 테이블의 여학생처럼 세트 메뉴를 시켰다면, 어쩌면 피규어는 소년의 몫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소년의 문제는 적절보다 저렴한 소비였다.



"같은 선택을 반복하셨군요. 그렇다면 같은 곤란을 당하시는 것도, 기록된 역사겠죠. 크하하하"



카림이 소년을 비웃었다. 소년은 뭐라 대꾸는 못 하고 주먹을 꽉 쥐어 카림의 입(?)을 막았다. 하지만 후회가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구나. 비싸더라도 세트 메뉴를 시켰야 했어. 난 디저트 메뉴를 시켜도 사은품을 주는줄 알았지. 사실 고픈 배를 생각하면 세트 메뉴를 먹는 게 상식적인 건데 말이야. 이렇게 콜라로 배를 채울 게 아니라. 아, 또 이런 실수를.'



저렴한 소비는 서민의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적절한 인생을 즐기고 경험하기 위해 태어났음에도, 인간은 최대한 아끼고 저렴한 인생을 살며 주어진 생의 에너지를 긴축하고 저축한다. 그리고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사용하지 못한 생의 에너지는 그대로 둔 채. 물론 억울해하는 인간도 없다. 그랬다면 인류가 저렴한 소비로 인생을 탕진하도록 진화하지 않았을 터. 그러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자들 중 누구도 저렴한 소비로 부를 일군 이가 없다. 그것으로 부를 지킬 지는 모르겠으나, 더욱 고도화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저렴한 소비는 경제를 망치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반복되는 적절한 투자는 자산을 불어나게 하고 적절한 소비는 경제를 활성화시킨다. 물론 인류 진화의 가장 중요한 동력은 적절한 도전과 적절한 모험이다. 예수께서도 꾸짖지 않으셨는가,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고 안전하게 땅에 묻어둔 이에게 저주를 내리셨으니. 소년은 그 법칙이 삶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마법사의 반복되는 강조에도 애써 부인해 왔다. 소년에게는 서민의 상식대로 소비는 죄악이고, 욕구는 통제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충족되어야 하는 것은 알찬 가계부일 뿐. 그러나 대를 이어 내려가는 '생의 소비 관념'의 반복은 적절한 소비를 하는 이들과 저렴한 소비를 하는 이들의 후손을 갈라놓았다. 누군가의 후손들은 태어나 보지도 못한 채 저축되어 버린 것이다.



소년은 결심했다. 방광이 터지기 직전이기도 하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먹고 싶은 것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다시 맥도날드 지점을 찾아다니느니, 눈앞에 보이는 백화점에서 미루고 미루던 파인 다이닝을 즐겨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향수 빛 도시에서 언제가 해보겠다 다짐하며, 성공한 그날로 미루던 그 식사를. 소년은 부리나케 백화점 화장실로 달려갔다. 미련한 콜라를 변기에 쏟아내고는, 깨끗이 비워진 내장을 원하는 삶의 메뉴로 채워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백화점 레스토랑으로 발길을 돌렸다. 소년은 도시의 화려한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백화점 루프탑 레스토랑을 향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어차피 그 돈 없어도 안 죽는다며 자신을 납득시켰다. 그 순간, 백화점 천장을 가득 메우고 있던 그림이 소년의 시야로 쏟아져 들어왔다.



'아니, 저기 있던 그림이 공작이었잖아!'



백화점 천장이 노란 날개를 활짝 편 공작 그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화장실 가느라 몇 번을 들렸던 백화점이었는데. 소년은 이번에야 천장 가득 채워진 벽화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도 공작으로 가득 채워진 천장을.



"열쇠는 사람의 마음에 있어요. 있다고 믿으면 있는 게 되고, 없다고 믿으면 없는 게 되죠. 없다고 믿는 사람은 있는 것도 보지 못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는 것도 만들어 내는 거예요. 저 공작 천장화는 100년 전부터 저 자리에 있었답니다. 하지만 저 그림을 보기 위해선 온 몸을 비틀어야 하죠. 부담감과 싸워야 하니까요."



카림이 소년에게 말했다. 소년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마음을 따라 교장을 관둔 가브리엘과 마음을 따라 에펠탑을 타고 떨어져 내렸던 소년의 선택이 다른 것이 아님을. 무책임하다고 가브리엘을 힐난하던 손가락은 사실 자신에게 사람들이 내뻗던 그 손가락임을. 저렴한 소비로는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 인생을 대비할 수 없지만, 적절한 소비는 삶의 신비를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진리를. 서민의 소비 관념으로 살아온 소년이 그 열쇠를 획득하려면 온몸 비틀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카림의 말에 소년은 깊이 동감했다. 절약을 미덕으로 생각하며 살아온 소년의 체질에 적절한 소비는 사치와 같은 말이었으니까. 방광이 차올라도 온몸을 비틀며 저항하던 것이었으니까.



소년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와인을 한 잔 주문했다. 알코올의 쓴맛이 입안에 퍼져나가자, 인생은 달콤한 것이어야 한다던 마법사의 말이 생각나 소년은 얼른 디저트를 시켰다.



'욕구를 억압하는 것은 용변을 참는 것과 다르지 않네. 결국 터져 나오기 마련이지. 다 같은 욕구니까. 자네는 달리면서 용변을 본 적이 있나? 참으면 그렇게 되는 거야. 얼마나 쪽팔린가! 자신에게 말이야.'



소년은 2년 전 기차를 놓친 뒤, 마법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자신에게 욕보이는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다. 그러자 웨이터가 소년이 주문한 디저트와 함께 무언가를 같이 내밀었다.



"손님, 마법사님께서 이걸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웨이터는 소년에게 배낭을 내밀었다. 소년은 배낭을 보자마자 기억했다. 2년 전 로마에서, 마법사가 매고 있던 배낭을 소년이 탐을 내자, 언젠가 소년이 순례를 시작하게 되면 주겠다던 바로 그 배낭이었다.



"이걸, 어떻게?"

"저희 레스토랑으로 2년 전에 배달 되었습니다. 보통은 이런 걸 보관해 드리지는 않는데, 마법사님은 저희 레스토랑 VIP시라 특별히. 2년 안에 손바닥에 눈을 가진 사람이 와서 디저트를 주문하면 전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런데 손님 손을 보니 눈이. 마침 오늘이 2년째 되는 날인데 다행입니다. 내일 폐기할 예정이었거든요."



배낭에는 소년의 순례가 시작된 것을 축하한다는 마법사의 메시지가 적힌 카드가 들어 있었다. 평범한 이들의 순례가 시작되었다는.



'평범한 이들의 순례를 시작한 걸 축하하네. 평범한 이들은 삶을 가치 있게 소비하는 이들이지. 욕구를 따라 먹고 자고 싸는. 아끼고 아끼는 이들이야말로 특별한 이들이라네. 그들은 방광을 통제할 줄 아는 돌연변이들이거든. 마려우면 싸야 하지 않겠나! 우리 같은 평범이들은 말이야. '



소년의 순례가 시작되었다. 적절한 소비로 인생을 경험하는 평범한 이들의 순례. 소년은 천장 가득 날개를 펼친 공작 그림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도 만개하기를, 아끼고 아끼느라 접어둔 날개 없이 활짝 펴서 인생을 가득 채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소년은 마법사가 보내온 배낭을 열려고 지퍼를 만졌다. 그런데 지퍼 고리에 무언가가 달려 있었다. 고개를 젖힌 채 온몸을 비틀고 있는 목요일의 아이 피규어. 소년이 찾던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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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소년 이안/시즌2_ 뒤집힌 Chapter7. 목요일의 아이는 온몸 비틀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