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린's 100] 뜨거운 감자

in #stimcity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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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는 못 먹는 감자입니다. 너무 뜨거워서 삼킬 수 없고 그러나 뱉기는 아까운. 내가 먹기는 뭣하고 남 주기는 아까운. 좀 식혀서 먹으면 될 텐데 그러면 맛이 뜨거울 때만 못하니 때는 지금뿐입니다.



그걸 사람들은 아쉬워합니다. 탐을 냅니다. 하지만 가지지도 못합니다. 그런 대상으로 여겨지는 이들은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매번 들었다 놓아지는, 삼키려다 뱉어지는 대상이 된다는 건 찝적대는 것 같아 불쾌하고 자신으로서는 불만족스러운 것이 없어도 사람들이 어려워하니 괜히 노력 같은 걸 더 해야 하나 싶어 짜증이 나기도 하는 겁니다.



뜨거운 감자는 그냥 보는 감자입니다. 손이 델까 두려운 그대는 그냥 보기만 하면 됩니다. 가지고 싶다면 용기를 내야 하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연약한 손을 보호해 줄 두꺼운 장갑을 찾아 끼던지, 입천장을 뒤집어 놓을 열기를 감당해줄 냉수를 잔뜩 머금던지, 암튼 위험한 일이고 꺼려지면서도 욕심이 나는 일입니다.



뜨거운 감자는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자신의 열기는 내부로부터 발생한 것이고 그 열기를 머금느라 오랜 고통과 인내로 담금질해 왔으니 더 뜨거워도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가질 수 있으면 가져 보렴, 감당할 수 있으면 말이야.' 하고 유혹을 해대도 좋습니다. 그건 자격이고 자랑입니다.



대신 뜨거운 감자는 함부로 못 먹는 감자여야 합니다. 용기로 무장하지 않은 이상, 내상을 감내할 각오와 자신이 없는 이들이 쉽게 집어먹을 감자가 되어선 안 되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자신의 열기를 포기해선 안 됩니다. 사람들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열기를 낮추는 순간, 못 먹는 감자가 먹는 감자가 되는 순간, 그대는 더 이상 뜨거운 감자가 아닙니다. 그러면 더 이상 누구도 그대를 열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함부로 손 대지 못하는 상태, 그것을 유지하는 일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고 가치를 더하는 일입니다. 그간 견뎌온 불같은 시간이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나, 이미 견뎌 와 익숙한 일이고 제로에서 다시 끓어올리는 일이 아니니 적절한 가열만으로도 충분한 일입니다. 그게 귀찮고 힘들어, 손쉽게 먹는 감자가 되는 선택을 하는 건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는 일입니다. 아닙니다. 한번 식은 감자를 데워 먹는 건 어쩔 수 없어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을 때나 찾는 아쉬운 존재로 자신을 추락시키는 일입니다. 자신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존재를 추락시킵니다.



남들이 자신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려면 뜨거운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뜨거운 것을 업신여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조심하고 더 조심하게 되지요. 그러나 자신을 업신여기는 사람은 뜨거워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쉬울 때라도 찾아달라고 구걸을 합니다. 거지 같은 인생을 살게 되는 겁니다.



그게 경쟁력이라고 배워 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사회의 질서와 안녕, 도덕과 규범, 억압된 관계와 종속된 서열구조 속에서 우리는 가열되어 본 적이 없습니다. 원천으로 차단된 삶의 열기는 우리를 적당히 먹다 버리기 좋거나 딱딱하게 굳어서 공장 벽돌로나 쓸 하찮은 상태로 머물게 방치했습니다. 그러니 이런 세계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려면 스스로 발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리저리 부딪히고 굴러다니며 스스로 열기를 머금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둡고 서늘한 지하창고 속에서 돌덩이가 되느니 뜨거운 대지 위를 굴러다니더라도 작렬하는 태양빛을 머금고 쏟아져 내리는 폭우를 견디며 싹을 틔우겠다 작정하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열망하는 뜨거운 감자를 넘어 싹을 틔운 감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과 같은 존재들을 계속 탄생시킬 수 있는.



업신여김을 받고 있는 어린 감자들에게, 세상이 업신여길지언정 스스로를 업신여기는 멍청한 짓은 당장 관두라고 말을 전합니다. 아쉬울 때만 찾는 하찮은 존재로 자신을 포기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업신여기는 마음을 사랑과 우정, 배려와 양보, 선함과 따뜻함 등에 빗대어 포장하려 들지 마십시오. 만져보면 압니다.



뜨거워지십시오.







[멀린's 100 (seaso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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