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는 착하다] ① 그 소년들은 잘 살고 있을까

in #tripsteem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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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에서 대한항공의 크로아티아 광고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9월부터 자그레브까지 직항이 뚫린 탓이다. 덕분에 요즘 크로아티아 병이 슬슬 도지는 중이다. 나의 크로아티아에 대한 애정은 꽤나 깊은 편이다. 얼마나 깊냐면, 책도 한 권 냈다. 눈부시도록 푸르른 아드리아 해, 너무도 이국적인 석회암 산맥, 새빨간 지붕의 중세풍 마을, 지금 당장 엘프가 튀어나와서 말태워 줄 것 같은 플리트비체 계곡 등 느타리 버섯처럼 생긴 국토 구석구석 아름다운 것이 넘치는 나라지만, 이 나라를 여행하면 할수록 난 이 나라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생긴 얼굴로 햇살처럼 웃는 더없이 착하디 착한 사람들. 나를 자꾸만 크로아티아로 이끄는 그 나라 사람들과의 기억을 하나하나 써볼까 한다.

첫번째 기억은 지금으로 부터 한 5~6년전.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던 때다. 나의 크로아티아 첫 여행때 일이다. 헝가리에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로, 거기서 다시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로, 거기서 피란으로 갔다가 다시 해안을 따라 크로아티아 로빈으로 가려고 했다. 피란까지는 잘 갔다. 문제는 피란에서 발생했다. 동절기 비수기에는 로빈 가는 버스가 일주일에 두 번 다닌단다. 직선거리로 80km도 안되는데, 걸어도 15시간이면 가는 거린데 버스가 일주일에 두 번이라는 거다. 운전은 못하고 걸어갈 자신도 없어서 피란에 사흘동안 발 묶여 있다가 간신히 로빈 행 버스에 올랐다. 가뜩이나 저녁 출발 버스인데 무려 한시간을 넘게 늦게 와 주시는 바람에 내가 로빈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를 훌쩍 넘겨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강원도 삼척이나 전라남도 신안 쯤 되는 시골 동네에, 초행인 외국인이, 혼자서, 떨어진 거다.

숙소는 미리 예약을 해 뒀었다. 렌털 아파트먼트였는데, 주소지에 가도 간판이 없고 리셉션도 안보이는 거다. 백번을 확인해도 주소는 맞는데 말이다. 이땐 내가 크로아티아 아파트먼트 들이 리셉션 같은 걸 안차려놓고 개인적으로 열쇠를 주고 받는다는 걸 전혀 몰랐다. 나는 한없이 그 근처를 뺑뺑 돌았다. 근처 피자집 주인 아저씨가 나오더니 서툴지 않은 영어로 내게 물었다.

"뭘 찾소?"
"이 근처에 아파트먼트를 하나 예약했는데... 못찾고 있어요."
"그래요? 이 골목에 아파트 천지인데...."

아저씨는 고개를 휘휘 둘러보더니 내가 서 있던 집의 벨을 눌러주었다. 이윽고 집에서 청년 두 명이 나왔다. 아파트먼트 리셉션 직원들인 모양이었다. 나는 피자집 아저씨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짐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제법 가팔랐다. 청년들은 주저주저하며 내 짐들기를 도와주었다. 집은 아파트먼트 영업하는 집 치고는 좁고 가재도구가 많았다.

"오늘 예약한 손님입니다. 제 방은 어디죠?"
"예약이요....?"

두 청년이 몹시 당황했다. 아, 손님인가? 아파트먼트라고 알고 있었는데.... b&b였나? 주인장은 어딜가고 손님들이 나를 맞고 있는거지?

내가 갸우뚱하고 있는데 청년 중 한명이 서툰 영어로 말했다.

"여기.. 우리집인데요;;;"

뭐라고??
나는 스마트폰을 켜서 숙박 바우쳐를 확인했다. 내가 예약한 숙소는 그 골목의 3번지였다. 청년들은 그것을 확인하더니 빙그레 웃으며 '우리집은 8번지'란다.

나는 최대한 정중히 사과한 뒤 전광석화같은 속도로 짐을 챙겨 그 집을 나섰다. 그리고 조금 후 주인장에게 전화를 해서 내가 원래 가야할 집을 제대로 찾아갔다. 도대체 그 청년들은 짐을 들어 주며 무슨 생각이었을지, 피자집 아저씨는 도대체 뭘 믿고 그 집의 초인종을 눌렀는지, 아무것도 알수 없지만 쪽팔리긴 더럽게 쪽팔리고 근데 또 한편으로는 웃긴 감정으로 그 밤을 보냈던 걸로 기억한다.

그날 이후 난 가끔 상상한다. 내 작업방에 앉아 한참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리는 거다. 문을 열어봤더니, 가슴에 허연 털이 가득하고 배가 남산만한 아저씨가 잭다니엘 냄새를 펑펑 풍기며 방을 내놓으라고 하는거지.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는 동안 저쪽 침실로 건너가 멋대로 짐을 풀고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스타 스팽글드 배너를 부르다가 '트럼프 만세!!'를 외치며 잠드는 아저씨. 그날의 그 청년들에게 나의 존재는 내 상상속 미국인 아저씨와 거의 같은 거였을 거다. 그러고 보면 그 청년들 정말 착했다. 나라면 경찰 불렀을 거 같은데.




[크로아티아는 착하다] ① 그 소년들은 잘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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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tsguide 입니다. @micketnox님 첫 글 작성 감사합니다~ 사진없이 글만으로도 상황이 보이는 것 같아 재미있는 소설을 보는 느낌이네요. 앞으로도 좋은 여행기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트립스팀 좋은 것 같네요 ㅎㅎ

직항이 있어서 크로아티아를 많이들 가시는군요 ㅎ ㅎ 요짐 사진으로만 크로아티아를 보니까 왠지 가본 느낌이 들어서 더 가고 싶은거 같아요

직항은 올해 9월부터 다녔습니다 ㅎㅎㅎ 한동안 크로아티아 여행객이 뜸했는데 이제 다시 좀 살아날듯요!!

ㅋㅋㅋ재밌는경험을하셨군요 크로아티아의 이쁜사진들도기대가되네요 담편쯤엔 나오겠죠?

글로만 때울 생각이었는데 한번 찾아서 발라보겠습니다 ㅎㅎ

크로아티아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잘 모르는 곳이었어요 .덕분에 많은 것을 알고 갑니다

크로아티아 얘기 너댓번 더 해볼까 합니다. 더 많은 것을 알려드릴 수 있다면 좋겠네요 ㅎㅎ

저런 행동 하나하나가 국격을 올리는군요 ㅎ

아... 어느나라 사람인지는 몰랐을 거예요 ㅎㅎ 암 차이니즈라고 해서 중국의 국격을 올려줄걸 그랬나봐요 ㅋㅋ

안녕하세요 :)

크로아티아 책도 내셨다니!! 서점에서 한번 찾아봐야겠는걸요!!?

내년에 책 개정판 나오면 스팀에서 이벤트나 해볼까 싶기도 하고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