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열어온 타임캡슐

in #upvu11 days ago

선선해진 아침을 볼 참으로 이른 시간 창을 열어 제칩니다.

밤을 건너온 바람이 얇고 서늘합니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 끝에 어디선가 오래전에 잊고 살았던 냄새가 묻어옵니다.

고향의 냄새입니다.

어린 시절 시골의 아침에는 저마다의 냄새가 있었습니다. 외양간에서는 소여물 만드는 구수한 냄새가 피어났고, 어느 집 부엌에서는 보리밥 뜸 들이는 냄새가 담장을 넘었습니다. 볏짚 타는 매캐한 냄새도 새벽 안개와 섞여 골목을 천천히 돌아다녔습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동리 사람들의 새벽 인기척도 들리는 듯합니다.

싸리비로 마당을 쓰는 서걱서걱 소리, 삐걱 열리는 대문 소리,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소리.

“밥 묵었는가?”

담장 너머 안부 한마디가 오가고,

“오늘은 날이 좀 풀리겄네.”

누군가 툭 던진 말에 또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그것이 특별한 줄 몰랐습니다. 소여물 냄새도, 보리밥 냄새도, 볏짚 타는 냄새도 그저 늘 거기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알게 됩니다.

그 냄새가 고향이었고, 그 소리가 사람이었으며, 그 안에 어린 날의 내가 있었다는 것을.

참 신기한 것은 냄새입니다.

사람의 얼굴은 희미해지고 마을의 모습도 변했는데, 냄새는 좀처럼 늙지 않습니다. 수십 년 세월 어디쯤 숨어 있다가 어느 날 바람 한 줄기에 묻어와 마음속 빗장을 슬며시 풀어버립니다.

오늘 아침이 그렇습니다.

창밖을 바라보니 어린 내가 저만치 마을길을 걸어갑니다. 굴뚝에는 연기가 오르고, 외양간에서는 소가 느릿하게 숨을 쉽니다. 어느 집 아궁이에서는 보리밥이 뜸 들고 있습니다.

“야야, 밥 묵고 가거라.”

누군가 부르는 것만 같습니다.

그 한마디가 어찌 그리 그리운지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인데 오늘 아침에는 그곳이 그리 멀지 않은 듯합니다.

어쩌면 고향은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냄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다가 문득 바람이 좋은 날이면 슬며시 찾아와 어깨를 토닥이며 묻는 것입니다.

“잘 지냈는가?”

나는 창을 닫지 않습니다.

조금 더 이 바람을 맞고 싶습니다.

오늘은 오래전 고향이 바람을 타고 찾아온,

참 사랑스러운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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