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life story-미역국 끓이는 아침
미역국 끓이는 아침 @jjy
엄마는 이른 새벽 더운 물에 미역을 불렸다.
밥물을 보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자 매캐한 연기가 부엌을 채우자
초겨울의 날씨는 따뜻하게 녹아든다. 불을 때면서 김치를 썰고
콩나물을 무치면서 눈물을 훔쳐냈다.
아궁이를 빠져나온 연기가 매워서만은 아니었다.
오늘은 딸이 서울로 대학 시험을 보러 가는 날이었다. 시어머니는
하나 있는 손녀딸을 그렇게 귀엽다고 물고 빨고 하셨지만 막상
아들이 재수 삼수를 해도 번번이 대학에 떨어지고 하는 수 없이
군대를 가게 되면서 공부 잘 하는 손녀딸에게 갑자기 쌀쌀하게
돌변하셨다.
딸은 그런 눈치를 아는지 모르는지 학교에서 늦게 와서도 저녁을
먹기만 하면 앉은뱅이책상에서 떠나지 않고 밤늦도록 공부를 했다.
어떤 때는 한 잠 자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들어오면 여전히
책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한 덕에 반에서 일등은
한 번도 놓치지 않았고 전교에서도 선생 집 아들과 서로 번갈아
일등을 했다. 그런 딸이 대견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예비고사 보러 가는 날에도 빈속으로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섰다.
아무도 내다보지 않는 골목길을 빠져 나가는 딸을 부르며 뛰어가서
꼬깃꼬깃한 백 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쥐어주고 시험 잘 보고 오라고
하면서 딸이 눈치 챌까봐 억지로 눈물을 몰아넣고 황급히 돌아섰다.
얼마 전부터 오늘 시험 보러 서울 간다고 말을 해도 누구 하나
열심히 공부해서 꼭 합격하라는 사람은 없고 한다는 말이
“네가 대학생이 되면 지나가는 개가 대학을 다니겠다.”
하고 빈정거렸다. 울먹이는 딸을 달래면서도 마음이 무너졌다.
시험 날이 다가오자 학교에서 오는 시간이 늦어지면서 큰 길까지
배웅을 가서 같이 들어오면 시어머니나 남편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서둘러 상을 차려주면
“다 큰 딸년 밥상을 차려다 바치느냐?”
고 호통이 이어졌다. 도시락 먹고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하고 돌아온
딸은 밥보다 눈치로 배를 불렸다.
어제는 일찍 집으로 와서 운동화도 빨아 말리고 교복도 손질하고
바쁘게 준비를 했다. 그러면서 엄마를 도와 저녁을 지으면서 앞으로
대학에 들어가 어떻게 할 것이며 나중에 잘 되어 엄마 용돈도 드리고
동생들도 보살피겠다며 벌써 입학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들떠서
조그만 입으로 큰 꿈을 들려주었다. 그런 딸의 얘기가 돌 더미가
되어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밤새 뒤척이며 생각을 해도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아들이 시험
때는 며칠 전부터 시어머니께서 미역이나 콩나물은 집안에 얼씬도
못하게 감시를 했다. 그리고 아들에게는 찰밥을 해 먹이고 시험
전날부터 찰떡을 하고 엿을 먹이고 시험 당일에 학교까지 따라가서
따뜻한 물을 먹이고 교문에 엿을 덕지덕지 붙이고 오시던 시어머니는
딸에게 눈길도 주지 않으셨다.
깨우지 않아도 딸은 어둑어둑 한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를 하는지
일찍 불을 켜고 있었다. 미역국과 콩나물 무침으로 차린 상을 들여가자
딸은 기도를 하는 것처럼 책상 앞에서 눈을 감고 앉아있었다.
시험 날 미역국을 끓여야 하는 엄마 마음은 아랑곳없이 딸은 국에 밥을
말아 맛있게 먹었다. 콩나물도 한 접시를 다 비우는 것을 보며 무슨
독이 든 음식이라도 먹이는 것처럼 떨렸다. 딸은 맛있다는 말을 연달아
하며 아침밥이 이렇게 맛있는 걸 보면 시험문제도 잘 풀 거라며 오히려
엄마를 안심시켰다.
잠결에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부스스 일어나 주방
쪽으로 나가니 딸은 언제 일어났는지 맛있는 냄새가 가득했다. 식탁
에는 울긋불긋 색색의 음식이 벌써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니, 조금이라도 더 누웠다 일어나서 밥 차려주면 먹고 출근이나 할
일이지 가뜩이나 잠도 모자라는 얘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일찍 기운을
빼고 그러니?”
딸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 원장이라고 해도 출퇴근도 힘들어 하는 것
같아 보기에 딱했다. 게다가 작년 갑자기 남편을 잃고 의지할 데가
없어 그런지 차돌 같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눈물이 많아져 애석하게
보던 차였다.
딸은 아무 말 없이 엄마를 식탁에 앉히고 밥을 푸고 대접에 가득 국을
뜨고 엄마 손에 수저를 쥐어 준다. 모녀는 뭔지 모를 어색함이 끼어든
아침 식사를 마치고 현관에서 헤어졌다.
남은 미역국을 데워 혼자 먹는 점심처럼 긴 하루가 달아오른 해를
꾸역꾸역 산 너머로 밀어 넣었다. 아들은 올 해도 못 온다는 전화를
했다. 작년에도 그랬듯 내년에도 후년에도 올 해는 못 온다는 전화를
할 것이다.
딸의 방으로 가서 침대머리에 둔 수첩을 펼쳐 서툰 글씨로 편지를
썼다.
“에미 메칠 바람 쇠고 오마. 기다이지 마라.”
화장대에 딸이 잘 보이도록 펼쳐두고 집을 나왔다.
버스가 도시를 벗어나자 연둣빛으로 무르익은 거리를 보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한참을 흔들리며 달리자 눈에 익은 능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숨을 할딱이며 넘던 고불고불 가파른 고갯길이
쫙 펴져 있었다. 지나가는 차를 피해 옆으로 비켜서는데 조팝꽃에
한쪽 어깨가 묻힌다.
산소 앞에 흰 머리를 풀고 서 있는 할미꽃 대궁이 보인다. 과일에
술을 따르고 망연히 서서 죽을 때까지 소 닭 보듯 하며 살던 남편을
불렀다.
“이렇게 찾아오는 것도 이게 마지막이에요.
이제 발 끊을 생각이니 그리 알아요.”
하루 묵어가라고 붙드는 사촌 동서를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일어섰다.
서둘러 걷는다고 해도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평소에 많이 걷지
않다 어제 산에 다녀온 표시를 하는지 무릎이며 발목이 트집을 한다.
돌보지 않는 산소는 몰라볼 정도로 봉분도 무너지고 잔디가 없어 빨간
흙에 쑥이며 잡풀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준비해 온 포와 과일을
차리고 술을 한 잔씩 올리고 절을 했다. 재배를 하면서 다시 일어서질
못하고 그대로 엎드려 뱃속에서 헛바람이 나오도록 울었다.
울면서 엄마를 불렀는지 등이 따뜻해지고 푸근했다. 보드라운 손이
머리를 쓸어주고 얼굴을 쓰다듬고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고 다시
말라붙은 젖가슴이 눌리도록 팔에 힘을 주어 와락 끌어안았다.
“엄마, 미안해.
나 그날 엄마가 일부러 미역국 끓인 거 다 알고 있었어.
그래서 더 악착같이 공부해서 장학금 받으며 학교 다녔으니까
다 잘 된 거잖아.
나 잘 됐으니까 엄마도 마음 아파하지 마.”
엄마의 가슴에서 마른미역처럼 단단하던 응어리가 뜨거운 눈물에
서서히 풀려 모녀는 물에 흠씬 불린 미역처럼 서로 한 몸으로 엉키어
흩날리는 산복숭아 꽃비를 맞으며 걸었다.


나도 오늘 아침에 미역국 먹었어요,ㅎㅎㅎ
좋은 날이셨기를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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