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야, 덤스 데리고 집에 가요!
아빠야, 덤스 데리고 집에 가요!
살다 보면 참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순간을 마주하곤 한다.
세상에 태어난 지 백 년이 훌쩍 넘은 이야기, 그리고 이미 반세기 전인 1950~60년대 세계문학전집의 유행과 함께 이 땅의 수많은 이들에게 읽혔다는 해묵은 소설이 이제야 내 삶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오늘 나는 오 헨리의 단편 《오래된 물레방아의 노래》를 눈이 아닌 '귀'로 읽었다.
조용히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해 작품을 마주하니, 한동안 알 수 없는 아득함과 깊은 감동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왜 나는 이토록 아름답고 기발한 작품을 이제야 만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방앗간 주인 에이브람 스트롱은 어린 딸을 잃고 절망에 빠졌다가 훗날 거부가 되어 돌아온다.
그는 가장 비싼 가격에 파는 최고의 밀가루를 생산하면서도, 세상에 위급한 상황이나 재난이 닥치면 그 귀한 밀가루를 신속하게 무료로 나누어 주는 따뜻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었다.
돈을 버는 것보다 사람을 살리는 상생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철학은 작품을 듣는 내내 큰 울림을 주었다.
그는 추억이 깃든 옛 물레방앗간을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개조하고,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처녀와 함께 과거 방앗간에서 부르던 오래된 노랫가락을 나누어 부른다.
어린 딸에게 이제 그만 일 마치고 저녁 먹으러 집으로 가자고 다정하게 부르던 바로 그 노래였다.
그 순간, 처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한마디. "아빠야, 덤스 데리고 집에 가요!"
비로소 잃어버린 딸을 극적으로 확인하는 그 순간은 말로 다 못할 짜릿한 전율과 눈물을 선사한다.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멈춰 있던 방앗간의 톱니바퀴가 '저녁 먹으러 가자'던 따뜻한 노랫말을 통해 다시금 삶의 기적으로 굴러간 것이다. 귀로 전해지는 노랫가락과 대사의 여운은 눈으로 읽을 때보다 훨씬 더 묵직하게 가슴을 울렸다.
특히 내 시선을 붙잡은 것은 이야기 속에 담긴 놀라운 '공간의 재해석'이었다.
버려지고 낡은 시골의 방앗간을 사람들이 모여 마음을 나누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주인공의 발상은 참으로 기발하다.
문득 얼마 전 지나치며 보았던 풍경이 머릿속을 스쳤다.
시골의 오래된 방앗간을 고치고 다듬어 아주 세련된 카페로 운영하던 곳이었는데, 당시에는 그저 "참 아이디어가 좋다" 하고 감탄하며 지나쳤었다.
그런데 오늘 《오래된 물레방아의 노래》를 귀로 들으며 비로소 큰 깨달음이 왔다.
아, 그 트렌디하고 멋진 공간 재생의 원류가 이미 백 년 전 이 소설 속에 고스란히 들어있었구나, 하고 말이다.
작품 자체의 감동과 따뜻한 나눔의 철학도 컸지만, 그 속에 담긴 시대 앞선 비즈니스 통찰력에 다시 한번 탄복하게 되었다.
이렇게 멋진 아이디어와 감동이 버무려진 작품을 왜 여태 모르고 살았을까 싶어 슬그머니 자료를 찾아보았다.
한국에는 이미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사이, 세계문학전집이나 단편선집이 본격적으로 발간되면서 대중에게 널리 읽혔다고 하더군.
그 시절 수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눈물을 훔치고 영감을 얻었을 텐데, 나는 그 통로를 오랫동안 비껴 지나쳐왔던 셈이다.
설령 젊은 날 스치듯 읽었다 한들, 내 기억 속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쉬워하거나 후회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인생의 산전수전을 다 겪고, 상생의 가치와 세월의 무게를 알아볼 수 있는 눈과 귀가 생긴 지금이기에 이 작품이 지닌 진면목이 더 선명하게 와닿은 것일지도 모른다.
작품을 다 듣고 나니 문득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로 생각이 이어졌다.
내가 열심히 하고 있는 애터미 비지니스 역시, 이 작품의 주인공인 방앗간 주인과 같은 마음의 자세로 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되 위기의 순간에는 아낌없이 나누고 베풀 줄 아는 상생의 철학, 그리고 잃어버린 소중한 존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리워하는 진심 어린 태도 말이다.
내가 그런 단단하고 따뜻한 마음의 자세를 늘 유지하고 있다면, 세상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소중한 파트너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마치 주인공이 간절히 불러온 노랫소리에 반응해 잃어버린 딸이 눈앞에 나타났던 것처럼, 내 진심의 노래에 공명하는 진짜 파트너가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녹슨 물레방아는 멈추었어도 그곳에 흐르던 노래와 따뜻한 마음은 영원히 살아남아 마침내 오늘 내 귀를 타고 가슴에 가닿았다.
뒤늦게 찾아와 영감을 준 이 한 편의 소설처럼, 우리의 남은 삶도 주변을 돌보고 낡은 것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는 창의적이고 따뜻한 발걸음으로 채워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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