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꽃 다운 일생이어야 함을

in #avle-pool23 day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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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 by Herman Hesse

헤세 그림 중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 이다. 해바라기가 시들어 가는 것으로 보아 가을이었을 것이다. 봄 꽃 시즌이 지나감이 아쉽지만 곧 여름 꽃도 필 것이고 가을 꽃도 필 것이고 쇠락 해 갈 것이다. 변해가는 세상 차분하게 느끼고 싶다면 같은 장소에서 피어나는 식물의 사계절 생태를 바라보는 것이다. 고호 역시 해바리기 꽃을 즐겨 그렸는데 시들어가는 꽃을 그린 것에 인상 받은 적이 있다. 고호의 그 그림을 헤세가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의 마음과 공명 했을 것이다. 55세의 헤세는 가을의 한 시점 무상(無常)의 아름다움을 꽃을 통해 담고자 했을 것이다. 발전하고 번창해 가는 아름다움보다 쇠락해가는 아름다움이 더 간절하고 값지다.

초록 꽃받침으로부터 아이처럼 불안스럽게 꽃은 제 주변을 둘러보지만 감히 제대로 볼 용기는 내지 못한다. 빛의 파도에 휩쓸린 듯 느끼고 낮과 여름이 영문도 몰래 푸르러가는 걸 감지한다
 
빛이, 바람이 나비가 꽃에게 구애를 하고 첫 미소 안에서 꽃은 삶에게 제 불안한 가슴을 열고 그리고 배운다. 찰나적 생애, 잇단 꿈들에게 자기를 내줘야 함을,
 
이제 꽃은 활짝 웃고 그리고 그 빛깔들 불타오른다. 꽃 대궁에선 금빛 꽃가루가 부풀고 있다. 꽃은 무더운 한낮의 불볕을 알게 되고 그리고 저녁엔 기진하여 고래를 떨군다. 잎 속으로
 
꽃의 가장자리는 성숙한 여인의 입을 닮았는데 그 입술 주변엔 늙음의 예후가 파르르 떤다. 뜨겁게 그 웃음은 피어나지만 그 밑바닥에선 이미 포만과 쇠잔의 냄새를 맡고 있다.
 
이젠 또한 그 꽃잎들 지쳐서 씨방 위에서 오그라들고 가닥도 드러난 채 매달려 있다. 빛깔들은 유령처럼 창백해지고 거대한 비밀이 사멸해가는 꽃을 보듬어 안는다.
 
꽃의 일생 1934


헤세의 마음을 엿보다


시작하며 | 헤세의 연금술 | 뻐꾸기 소리는 배신하지 않는다. | 인내심 놀이 | 노인의 향기 | 50세 헤세의 유머 | 헤세가 죽기 전 날 밤 썼던 시 | 바람 결의 감촉 | 다시 시작하는 가을 몸맞이 | 내몸 아닌 내몸 같은 | 색채보다 감촉 | 닮은 꼴의 헤세와 융 | 방외 화가 두 사람의 풍경화 | 헤세가 사랑한 음악 1 | 헤세 정신의 곳간 | 요즈음 젊은 것들은...과 변화에 발맞추기 | 하리 할러의 꿈을 분석하며 (황야의 이리1) | 헤세의 아니마(황야의 이리2) | 왜 사냐면 웃어야지요(황야의 이리3)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융의 분석심리학 적용 (황야의 이리4) | 괴로움과 번뇌속의 위안 | 기억의 가치 | 우주는 조바심에 가득차 있다 | 죽음에 관한 단상 | 가면 살이 | 백일홍 쇠퇴기 | 우주는 조바심에 가득차 있다2 | 인욕 바라밀과 쾌락의 줄다리기 | 죽음과 탄생 즐기기 | 부드러운 오기 | 아름다운 이기주의 | 잡생각의 미학과 예술 | 노인이 되어가는 | 노년의 덕목 |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 | 예배당이 있는 곳 | 인플루언서란? | 기억의 궁전 | 마음 운용의 기술 | 그대로의 모습 | 그래도 은밀히 우리는 갈망한다.| 모두가 꽃 다운 일생이어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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