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6(월) 11세기북송시절의 고구려인식(1)
북송 인종시절인 가우嘉祐 5년(1060년)
'신당서'라는 책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있다.
그 책 권220, 제145, 동이열전에 고구려에 대한 기록이 있다.
고려髙麗는 본래 부여扶餘의 별종이다.
땅은 동쪽으로 바다를 넘어서 신라 新羅에 이르고,
남쪽 또한 바다를 넘어서 백제百濟에 이르며,
서북쪽으로는 요수遼水를 건너 영주營州와 접하고,
북쪽에는 말갈靺鞨이 있다.
그 군주(君)는 평양성平壤城에 거처하는데 또한 장안성長安城이라 이르니
한漢나라의 낙랑군樂浪郡이다.
경사(京師, 당나라 수도 장안)와는 오천 리 五千里 남짓 떨어져 있고,
산을 따라 굽이지게 둘러싸서 성곽(郛)으로 삼았으며,
남쪽은 패수浿水에 닿아 있어 왕이 그 왼쪽에 궁궐을 쌓았다.
또한 국내성國內城과 한성漢城이 있어 별도别都라 불렀다.
강(水)으로는 대요大遼수와 소요少遼수가 있다.
이 내용이 가장 먼저 나온다.
1)백제와 신라는 고구려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단다.
- 서북쪽으로 요수를 건너면 당나라의 영주에 접한다고 한다.
- 평양성의 별칭이 장안성인데, 한나라의 낙랑군이라고 주장한다.
- 장안(지금의 서안)과 5천리 떨어져 있단다.
- 산을따라 성곽을 만들고, 남쪽이 패수에 닿아있다.
- 국내성과 한성은 별도라고 불린다.
- 강으로는 대요수와 소요수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강이라는 뜻이다.
요수에 대해서는 아래 영상에서 소개한바 있다.
산서성 진중시 유사현 또는 좌권현에서 흘러 내려와는 청장하이고,
탁장하와 합류해서 <장하>가 되는 강이다.
고구려가 대륙의 하북성 중북부에 있었다는 결론이 된다.
지금의 산동성 동남부일대와 장쑤성(=강소성江蘇省) 일대에
백제와 신라가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해지는 기록이다.
이런 해석의 근거에는
중국고대에 지명을 정할때
'산남수북'을 '양' 이라고 했다는 사실이 있다.
강의 북쪽, 산의 남쪽에 있는 지명에 '양'이 붙었는데
요수의 북쪽, 요산의 남쪽에 있는 지명이 바로 '요양현遼陽縣'이었다.
지금 구글에서 <요양현>을 검색하면 당연히 '요녕성 요양현'이라고 나온다.
하지만 고구려가 존재했던 수-당시절에
요양현이 어디에 있었는지 확인하면 간단하다.
산서성 진중시 좌권현이
요양현遼陽縣이었고, 때로는 요산현遼山縣이었으며
요遼주가 되었다.
요양현을 검색하면 요녕성이 나오지만,
요산현과 함께 검색하면, 산서성 진중시 좌권현이 나온다.
역사기록에도 요양현이 산서성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금나라 시절까지도.
隋開皇十六年改置遼山縣, 因縣西北遼山爲名.
수 隋나라 개황 16년(596)년 에 고쳐 요산현 遼山縣을 두었으니,
현의 서북쪽에 있는 요산遼山으로 인하여 이름을 지은 것이다.
복잡하고, 변화가 심했던 중국의 군현때문에 혼란을 겪는 사람들도 있지만
앞뒤를 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능히 판단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5천리니 1만리니 하는것은 전형적인 허풍이라는 것을
여러차례 사례를 통해 설명했으니
순진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