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기차

in #kr4 days ago (edited)

파리에서 크리스마스 연말연시 연휴기간이 끝났습니다.

2주만의 출근길. 회사로 떠나는 광역기차 속은 아직도 한산합니다.
흔하지 않은 영하의 날씨에 피곤한 몸을 창문에 기대어,
숨을 내쉬기만 해도 쉽게 김이 서리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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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지하철보다 빠른속도로 달리는 기차의 2층에서,
날숨에 생긴 캔버스에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의미없는 선을 그리던 때,
옆 선로 너머에서 반대편 기차가 달려와 빠른 속도로 지나칩니다.

파리 시내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여행객들이 보입니다.
이들이 제가 그리는 동작을 어떻게 이해를 할까요?
그저 피곤에 찌든 직장인이 출근길에 이리저리 낙서하는 것처럼 보일까요?

파리를 벗어난 둘의 기차는 약 260 km/h (72.22 m/s)의 속도로 서로를 지나칩니다.
광속의 0.0000240907402088%이죠.

로렌츠 변환식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의 굴절에 관여하는 인자는
운동하는 속도와 광속의 비의 제곱과 1의 차의 제곱근의 역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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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2미터 남짓한 창을 72.22 m/s 로 지나가는 0.02769230769230769231...초의 시간동안 제가 그린 선을,
상대는 0.02769230769230850153...초동안 보게 되는 것이죠.
즉 0.8049...펨토초의 시간지연이 생기는 셈입니다.
제가 그리고 있는 속도보다 더 느리게 그리는 것처럼 보이게 되겠죠.

하지만 상대방이 보는 것은 제가 그리고 있는 그 순간일까요?
4.23m 간격의 선로에 2.82m 너비의 RER 열차 둘이 지나갈 때,
두 열차의 창가 차이는 고작 1.41m입니다.
상대방과 제가 지나칠 그 순간에,
상대방이 보는 제 그림은 4.7033 나노초 전의 것이죠.
시간의 지연보다 빛의 지연이 더 지배적입니다.

물론 창문이 넓으므로, 시야각도 넓기에
다가올 때와 멀어질 때까지 계산에서 보면 더 길게 볼 수 있겠죠.
하지만 거리가 좁아지고 멀어지는 동안,
상대론적 도플러는 유의미한 수치를 지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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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열차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보고 있을 때는,
접근할 때 빛의 파장이 1.000000240907431의 계수만큼 늘어지고,
멀어질 때 빛의 파장은 그만큼 수축합니다.
물론 각도를 주고 볼 수밖에 없기에 이 계수는 더 1에 가까워지지만,
완벽히 1은 아니므로, 다가오고 멀어질 때 저와 동일한 색감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파란빛으로 예를 들면,
500 나노미터의 파장이 0.1204537 피코미터의 파장만큼 늘어나고 줄어듭니다.
가까워질 때 더 푸른 쪽으로 보이고,
멀어질 때 더 붉은 쪽으로 보이겠죠.
인간으로써 알아차리기는 어렵겠지만 어찌됐든 색에 분명한 차이는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어떤 것이든 상대방에겐 다르게 보입니다.

색도, 속도도, "지금"이라는 감각도 원리상 개개인이 다 다르게 인지합니다.

그 어느 누구와도 서로의 현재를 정확히 맞추지 못한 채,
각자의 순수한 시간과 모습을 자신만이 간직한 채로 평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눈높이에 나를 억지로 맞추기보단,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자신만이 알고 인지하고 있는 정확한 좌표에서 살아가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