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주는 기회
오랜만에 Astin(남편)과 버스를 타고 서울에 갔다. 날씨는 춥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재잘대며 손을 잡고 걷다 보니 연애하던 시절 생각이 났다. 왠지 들뜨는 마음에 신이 났다. 정류장에 이미 줄이 길었고, 남은 버스 좌석 수도 여유롭진 않았다.
"오늘 사람이 많네. 같이는 못 앉겠다."
"그래도 맨 뒷자리엔 자리가 있을 수도 있으니 혹시 몰라."
올라선 버스엔 이미 사람이 가득했다. 보이는 대로 아무 데나 앉아야 하나? 고민하며 버스 좌석을 살피는데 맨 뒷자리가 연달아 두 개 비어 있었다.
'럭키비키! 완전 신난다! 오오!'
가벼운 발걸음으로 춤을 추듯 좌석에 앉아서 뒤를 돌아보며 그에게 말을 걸려고 했다. 분명 뒤따라 버스를 탔던 그의 흔적은 온데간데없다. 그는 일찌감치 앞쪽 자리에 이미 앉아버렸다. 자리는 너무 멀었고, 내 옆자리엔 여학생이 앉았고 상황은 끝이나 버렸다. 엄청난 실망감에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
'맨 뒷자리 두 개 비어서 냉큼 왔는데 이미 저기 앉았네.'
'앗 맨뒤ㅠㅠㅠ완전 못 봤네'
내 말에도 그는 조금 아쉬울 뿐, 별 일 아니라는 듯 쿨한 반응을 보였다. 가슴속에 부글부글 화가 몰아쳤다.
'옆자리에 탔으면 데이트하는 기분도 내고 좌석도 널찍해서 좋을 텐데 이렇게 운이 좋았는데 이걸 이렇게 날려버리다니. 난 이렇게 아쉽고 화가 나는데 그는 어떻게 사과의 말 한마디조차 안 할 수가 있지?'
아쉽고 슬프다 못해 분노가 솟아났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단전에서 몰아치는 불바람이었다. 이렇게 별 거 아닌 일에 난 왜 이리 화가 나는 거지? 그러고 보면 이건 그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사과할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과해야 한다고 느끼는 건 내 입장에서 실망감과 분노가 커다랐기 때문이었다.
아! 우주가 가끔 운 좋게도 선물을 줄 때 그 기회를 잡지 못하는 걸 무엇보다도 두려워했다. 그 흔치 않게 찾아오는, 통제할 수 없는 행운을 꼭꼭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잡고 싶다. 삶의 흐름을 타고 있다는 그 짜릿함만큼 기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땐 우주와 둘이서 춤을 추는 기분이 든다. 그걸 너무 좋아하니까 작은 일인지 큰 일인지 상관없이 그런 행운이나 기회를 놓칠 때 서럽게 펑펑 울고 그 기회를 놓칠 때면 몹시 화가 나는 거다. 그 일이 멋진 만큼 그 일을 놓치는 건 세상 바보 같은 일이니까.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두려워하거나 화를 내는 건 모두에게 좋지 않은데.
만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 기회를 놓치는 걸 두고 봐야 한다면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한다. 그건 내 인생과 내 선택이 아니니까 아쉽고 안타깝더라도 그의 인생이나 선택을 내가 바꿀 권리는 없다.
이번처럼 나 혼자 온전히 할 수 없는 일인데, 눈앞에 기회가 보일 때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같이 저것을 선택하고 싶고, 그게 우리에게 좋을 거라고 확신이 들어도 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 걸까?
다음번엔 그 사람에게 더 크고 분명하게 확실히 말할 거다.
'이건 우주가 준 기회야. 이게 우리에게 좋을 것 같아. 나는 저걸 하고 싶어. 같이 저걸 선택하자.'
이미 그가 알고 있고, 나와 같은 선택을 할 거라 지레짐작하지 말고 기회가 오면 다시 분명히 방향을 제시하고 함께 하자 제안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그 선택을 하지 않아 기회를 놓쳐야 한다면 그것 또한 존중해야 한다. 아쉽지만 그와는 그걸 함께 할 인연이 아닌 것뿐이다. 그럼 다음번 사람과 다음번 기회를 모색하면 된다. 그때까지 낙담하지 말고 끊임없이 제안해야 한다.
우리 같이 저 멋진 우주의 선물을 받으러 가자고. 같이 놓치지 말고 기회를 잡자고!
그 생각을 떠올리고는 버스 뒷자리에 앉아 오늘을 사는 게 너무나 기뻤다.
우주가 주는 기회 눈에 빤히 보였는데~ 눈앞에서 못 잡으면 많이 아쉬울 것 같아요.
그래도 노여움을 추스려 기쁨으로 잘 승화(?) 시키시는 과정/능력이 정말 대단하신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멋진 우주의 선물을 잘 받아서
잘~ 즐기실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