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총, 균, 쇠
저자 : 재레드 다이아몬드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생리학 박사 학위 취득
책 출간 시점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 교수로 재직
생리학으로 학자의 길을 시작한 저자는 조류학, 진화생물학, 생물지리학으로 영역을 점점 확장해나갔으며, 라틴어, 그리스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등을 구사한다.
"무기, 병균, 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이 책 <총, 균, 쇠>는 1998년 퓰리처상 일반 논픽션 부분과 영국의 과학출판상을 수상한 책으로 인류 문명이 대륙별, 민족별로 불평등해진 원인을 다각적인 시각에서 명쾌하게 분석하고 있다.
지리적 조건이 지난 13,000년 간 전 세계인의 역사에 미친 영향을 밝힌다.
책 저자가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아래와 같이 요약했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아래부터는 책을 읽으며 기록해 둔 본문의 문장들 중 일부
어째서 아프리카인 또는 아메리카 원주민이 아니라 유럽인들이 총기, 가장 지독한 병원균, 그리고 쇠를 갖게 되었을까?
아프리카는 선행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진화했고, 해부학적인 현생 인류도 여기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대륙이다.
남보다 훨씬 앞서 출발한 것이 중요한 일이라면, 어째서 총기와 쇠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생기지 못했을까?
가축화, 작물화가 가능한 야생 동식물 종의 지리적 차이를 살펴보는 일은 식량 생산의 독립적 중심지가 그토록 소수에 불과했던 이유, 그리고 그중에서도 어떤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빨리 시작되었던 이유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러한 몇몇 중심지로부터 식량 생산이 다른 곳으로 전파될 때에도 어떤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에서보다 훨씬 빠르게 퍼졌다.
그와 같이 전파 속도에 차이가 나도록 만든 주된 요인은 각 대륙 축의 방향(-가령 유라시아는 주로 동서 방향, 남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주로 남북 방향-)이었다.
식량 생산으로 인하여 농경민들은 식량이 남아돌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농경민 사회는 식량을 생산하지 않고 기술에만 전념하는 전업 기능 전문가들을 뒷받침해줄 수 있었다.
식량 생산 덕분에 농경민들은 필경사와 발명가뿐만 아니라 정치가들도 부양할 수 있었다.
유럽이 남북아메리카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도 실은 오랫동안 거의 개별적으로 전개되었던 두 갈래의 역사적 궤적이 마침내 절정에 이르러 발생한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다.
그러한 두 궤적의 차이는 바로 양쪽 대륙에서 가축화와 작물화가 가능했던 동식물, 병원균, 인간이 살기 시작한 시기, 대륙 축의 방향, 생태학적 장벽 등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말은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장장 6000년 동안이나 위력을 발휘한 군사 무기였으며 결국에는 모든 대륙에서 이용되었다.
그러다가 기병대의 군사적 우월성이 마침내 종말을 맞이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에 이르러서였다.
세계사를 변화시키는 매우 중요한 요인 하나를 제시한다.
그것은 상당한 면역성을 가진 침략자들이 면역성이 없는 민족에게 퍼뜨리는 질병이다.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발진 티푸스, 선페스트(흑사병)를 비롯한 유럽 고유의 전염병들은 다른 대륙의 많은 민족들을 몰살시킴으로써 유럽인들의 정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질병의 역할이 유럽인의 팽창을 도와 주는 일에만 국한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열대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 뉴기니 등지의 말라리아와 황열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들은 유럽인들이 그와 같은 열대 지방으로 이주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유럽을 식민지로 만들지 못하고, 유럽인들이 신세계를 식민지로 만들게 된 직접적 원인에는 총기, 쇠 무기, 말 등을 중심으로 한 군사 기술, 유라시아 고유의 전염병, 유럽의 해양 기술, 유럽 국가들의 중앙 집권적 정치 조직, 문자 등이 있다.
식량 생산은 간접적으로 총기, 병원균, 쇠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선행 조건이었다.
그러므로 각 대륙의 민족들이 농경민이나 목축민이 되었는냐 말았느냐, 또 되었다면 그 시기는 언제였는가 하는 지리적 변동은 그 이후 각 민족의 대조적인 운명을 결정한 주요 원인이었다.
가축을 소유한 인간 사회의 경우 가축이 인간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는 데는 네 가지 방식이 있다.
고기, 젖, 비료를 주고, 쟁기를 끄는 것이다.
그 가운데 첫손에 꼽히며 가장 직접적인 것은 가축화된 동물들이 각 사회에서 야생 사냥감을 대신하여 주된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다는 점이다.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는 19세기에 철도가 개발될 때까지 육상 운송의 주요 수단으로 이용됨으로써 인간 사회를 더욱 혁신시켰다.
동식물의 가축화, 작물화가 정복 전쟁에 가장 직접적으로 기여한 것은 유라시아의 말이었다.
고대 전쟁에서 말의 군사적 역할은 지프나 셔먼 탱크에 필적하는 것이었다.
정복 전쟁에서 말에 못지않게 중요했던 것은 가축화된 동물과 더불어 인간 사회에서 진화한 병원균이었다.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등의 전염병들은 원래 동물들에게 퍼져 있던 매우 유사한 조상 병원균에서 나온 것인데, 각각 돌연변이를 거쳐 인간의 병원균으로 특수화되었다.
가축화, 작물화된 동식물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유라시아에서 제국, 문자, 쇠 무기 등이 제일 먼저 발달했고 다른 대륙에서는 그보다 늦어지거나 끝까지 발달하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해 주는 궁극적 원인이 된다.
인류 역사는 대부분 유산자와 무산자(농업의 힘을 가진 민족과 못 가진 민족, 또는 각기 다른 시기에 농업의 힘을 갖게 된 민족) 사이의 불평등한 갈등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식량 생산이 독립적으로 발전한 곳은 세계의 몇 지역에 불과했으며, 그나마도 각각 시기가 크게 달랐다.
일부 이웃 지역의 수렵 채집민들은 그 같은 핵심 지역으로부터 식량 생산을 배웠고, 기타 이웃 지역의 사람들은 그 핵심 지역의 식량 생산자들로 교체되었으며, 역시 각각의 시기는 크게 달랐다.
오늘날 식량 생산이 곧 육체 노동 감소, 안락 증대, 굶주림으로부터의 자유, 평균 수명 증가 등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상 자기는 직접 먹거리를 기르지 않으면서도 풍요롭게 살고 있는 제1세계의 사람들뿐이다.
전 세계에서 실제 식량 생산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농경민이나 목축민들은 수렵 채집민들보다 잘 산다고 말하기 어렵다.
하루 중 노동 시간이 수렵 채집민들보다 오히려 길면 길었지 짧지는 않다.
많은 식물들은 씨앗을 맛좋은 과육으로 감싸, 그 과육의 색깔이나 냄새로써 잘 익었다는 것을 널리 알려 동물들이 자기 씨앗을 운반하도록 만드는 계략을 쓴다.
배고픈 동물은 그 과일을 따 먹고 다시 걷거나 날아가다가 부모 나무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씨앗을 뱉어내거나 배설한다.
이 방법으로 씨앗은 수천 킬로미터나 멀리 운반될 수 있다.
식물의 종자가 배 속에서도 소화되지 않고 버틸 수 있다는 것, 그런데 배설물 속에서 발아한다는 것은 놀랍기만 하다.
총 20만 종의 야생 식물 중에서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수천 종에 불과하다.
그중에서 다소나마 현재까지 작물화된 것은 고작 수백 종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 세계에서 모든 농작물을 통틀어 연평균 총생산량의 80%를 책임지고 있는 농작물은 겨우 12종에 불과하다.
그 12종 중에서 곡물로는 밀, 옥수수, 벼, 보리, 수수, 콩류로는 메주콩, 뿌리 또는 덩이줄기 작물로는 감자, 마니오크, 고구마, 설탕 공급원으로는 사탕수수와 사탕무, 과일로는 바나나가 있다.
이 중에서 곡류만 따지더라도 전 세계 인류가 소비하는 총열량의 절반을 넘는다.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모두 엇비슷하고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가축화할 수 없는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우리는 흔히 성공에 대해 한 가지 요소만으로 할 수 있는 간단한 설명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중요한 일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수많은 실패 원인들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유라시아인들에게는 기타 대륙 사람들에 비해 가축화할 만한 대형 야생 초식성 포유류가 훨씬 더 많았다.
그 같은 결과가 나오게 된 것, 그리고 그로 인해 유럽 사회가 대단히 유리해진 것은 바로 포유류의 지리, 역사, 생태 등 세 가지 기본적인 현실 때문이었다.
유라시아의 농업이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의 농업에 비해 더 빠르게 전파되었던 것은 유라이사의 문자, 야금술, 기술, 제국 등이 더 신속하게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차이점들은 남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축의 방향과 대조되는 유라시아 축의 방향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남북아메리카의 주요 축은 남북 방향이다. 이보다는 덜 극단적이지만 아프리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와 대조적으로 유라시아의 주요 축은 동서 방향이다.
무기류, 기술, 정치 조직 등의 우월성만으로 유럽인들이 비유럽인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만약 유럽이 다른 여러 대륙에서 사악한 선물(유라시아인들이 오랫동안 가축과 밀접하게 살았기 때문에 진화된 각종 병원균)을 주지 않았다면 그러한 정복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인류의 근대사에서 주요 사망 원인이었던 천연두, 인플루엔자, 결핵, 말라리아, 페스트, 홍역, 콜레라 같은 여러 질병들이 동물의 질병에서 진화된 전염병들이다.
역사에서 병원균이 맡았던 역할을 보여주는 가장 무시무시한 사례는 바로 1492년 콜럼버스의 항해와 함께 시작되었던 유럽인들의 남북아메리카 정복이었다.
스페인의 잔혹한 정복자들에게 희생된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많았지만, 그보다는 스페인의 잔혹한 세균에 희생된 원주민들이 훨씬 더 많았다.
인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성기가 헐거나 설사, 기침을 하는 것은 '질병의 증상'이다.
그러나 병원균의 관점에서 본다면 병원균을 퍼뜨리기 위한 영리한 진화적 전략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이 병원균에게는 이익이 되는 일이다.
우리는 중요한 발명품들이 모두 필요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 수많은 발명품, 또는 대부분의 발명품은 호기심에 사로잡히거나 이것 저것 주물럭거리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개발했고, 그들이 염두에 둔 제품에 대한 수요 따위는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다.
혁신은 실제로 어디서 오는 것일까?
완벽하게 고립되어 있던 과거의 몇몇 사회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사회에서, 다수 또는 대부분의 신기술은 그 지역에서 발명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회에서 빌려온 것들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모든 대륙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대륙이다.
유라시아,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사이의 차이 따위는 오스트레일리아와 그 밖의 대륙들 사이의 차이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단연코 가장 건조하고 가장 작고 평평하며 척박한 대륙이다.
또한 기후도 가장 종잡을 수 없고 생태학적으로도 가장 빈약하다.
모든 핵심적 발전의 궤적에서 왜 남북아메리카는 예외 없이 유라시아보다 뒤쳐졌을까?
네 가지 이유가 저절로 떠오른다.
우선 남북아메리카는 유라시아에 비하여 출발부터 늦었다는 점, 가축화/작물화에 적합한 야생 동식물이 적었다는 점, 확산의 장애물이 많았다는 점, 그리고 아마도 인구가 조밀한 지역들이 비교적 좁았거나 고립되어 있었으리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물론이고 많은 유럽인들도 아프리카 원주민이라면 곧 흑인이고 백인들은 최근에 들어온 침략자들이며 아프리카 인종사는 곧 유럽의 식민 정책과 노예 무역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오늘날 흑인들이 살고 있는 많은 지역은 불과 몇천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매우 다른 민족들이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며, 이른바 아프리카 흑인이라는 사람들도 사실은 각양각색이다.
백인 이주민들이 들어오기 전에도 아프리카에는 이미 흑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인류를 크게 여섯 가지로 구분할 때 다섯 인종이나 살고 있었다.
게다가 그 중 세 인종이 원주민으로 살고 있는 곳은 아프리카뿐이다.
전 세계 언어의 4분의 1이 아프리카에서만 사용된다.
이 같은 인간의 다양성은 그 어느 대륙도 따라가지 못한다.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살아온 기간은 그 어느 대륙보다도 훨씬 길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약 7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태어났고 해부학적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도 아마 그곳에서 처음 발생했을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도 일부 대형 동물(코끼리, 기린, 코뿔소, 하마 등)이 가끔 '길들여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길들인 동물 중에서 실제로 가축화된 경우는 전혀 없었다.
만약 아프리카의 코뿔소나 하마를 가축화하여 타고 다닐 수 있었다면 군대의 식량으로 쓸 뿐만아니라 유럽의 기마병들을 박살내는 막강한 기병대를 편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코뿔소를 탄 반투족 돌격 부대가 로마제국을 무너뜨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홍적세 이후 아프리카의 발전이 유라시아에 비해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마지막 요인은 두 대륙의 주요 축 방향이 다르다는 점이다.
유라시아의 주요 축은 동서 방향인데 아프리카의 주요 축은 아메리카처럼 남북 방향이다.``
남북 축을 따라 움직이면 기후, 생식지, 강우량, 낮의 길이, 농작물 및 가축의 잘병 등이 크게 달라진다.
그러므로 아프리카의 어느 한 지역에서 가축화, 작물화되거나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가축 및 농작물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와 대조적으로 유라시아에서는 서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사회들이라도 동일한 위도상에 있어서 그 기후와 낮의 길이가 비슷하기만 하면 농작물이나 가축을 쉽게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유럽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던 까닭은 백인 인종 차별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리적, 생물지리학적 우연(특히 두 대륙의 면적, 축의 방향, 야생 동식물 등)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아프리카와 유럽의 역사적 궤적이 달라진 것은 궁극적으로 부동산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나는 사회가 인간의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 환경의 차이 때문에 각 대륙마다 다르게 발전했다는 요지의 결론을 내렸다.

This post has been upvoted by @italygame witness curation trail
If you like our work and want to support us, please consider to approve our witness
Come and visit Italy Community
작년? 재작년?에 읽었는데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게 없네요. 큰일입니다.
잘 지내시죠? ㅎㅎ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몇 개월 전에 읽은 책만 해도 싹 다 기억에서 지워지는데, 작년 재작년이면 말 다 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