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줘, 제발

in #kr6 years ago (edited)

우리의 모든 행동은 인정하고 싶든, 그렇지않든 간에 상관없이 무의식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어릴 때는 그저 말 잘 듣는 아이였다.
조용하고 그저 잘 웃는 아이. 무난한 아이.

그렇기 때문에 세상사 아주 나쁜 것들은 교묘히 피할 수 밖에 없었던,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이제껏 이 험난한 세상에서 내 나름의 소심한 방법으로 나를 지키며 잘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소심한 방법으로 나를 지키며 산 결과, 아주 운이 좋아 나름의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이렇게 팔자 좋은 소리나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의 그 소심한 성격이 나의 오늘을 만들어주었는지도.

나의 무의식.

그렇게 말 잘 듣던 아이가. 그렇게 무난하던 아이가. 뒤늦게 철이 들어야 할 나이가 되어서 갑자기 뒤늦은 반항을 하고 해야할 의무는 다 거부하고 마치 세상에서 일부러 미움을 받기로 작정한 사람같이 행동하고.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최대한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인냥 행동하고 앉아있다. 마치 내가 이렇게 했을 때도 내가 그래도 사랑받을 수 있는지 시험하려는 것처럼.

마치 아이가 엉엉 울고 떼쓰면서 그래도 엄마가 나를 안아주는지 확인하려는 철없는 동심처럼. 그래서 안아주지 않는 엄마를 보며 소리없이 절망하고 체념하지만 그럼에도 다시금 나를 안아주지 않을까 다시 떼써보고 싶은 아이의 마음 말이다.

뭐, 그러니 결국 철이 덜 들었다는 말이다.
철이 들어야 할 나이에, 누군가를 이제는 내가 가슴으로 품고 사랑해줘야 할 나이에, 뒤늦게 사랑 받으려 하는 것이다.

어릴 적에 충족되지 못했던 그것을 모공이 넓어져 가고 눈꼬리가 쳐져 가고 뱃살이 늘어져 가는, 마땅히 성숙해져야 할 이 나이가 되어서야 발악을 하고 사랑 받으려 하는 것이다. 세상을 향해 떼를 쓰는 것이다 .

나를, 내 존재로서 사랑해달라고.
그저 따뜻하게 안아달라고.

그렇지만 떼 쓰는 아이가 한없이 짜증나고 싫다가도 그래도 내가 뭐라고 내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를 미워할 수 없는 것처럼, 떠날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을 갈구하는, 내 존재로써 사랑받길 간절히 바라는 내 자신을 참 한심하다고, 너 참 짜증난다고 할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찌보면 이 세상의 인정이 뭐라고, 그것을 이토록 갈구하는 내 자신이기에 더 미워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떼써도 결국은 용서가 되는데 다 큰 어른이, 경로석에 앉은 노인이 바닥에 주저앉아 발을 동동 구르며 떼를 쓰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처럼,

우리는 그저 우리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른의 나이가 되었다고 우리에게 가혹하리만큼 엄격한 삶의 기준을 들이대는 건지도 모른다.

사실은 겉으론 노인네지만 속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안기고 싶은 어린아이인데.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 허용이 안되니 괜한 잔소리, 참견, 온갖 오지랍 등 남이 싫어할만한 행동만 골라서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안아주길 바라며 떼쓰는 아이처럼 말이다.

세상을 겉으로 보이는 그대로만 보지말고 한번쯤은 현상에 가려진 그 이면의 의미에 대해 곱씹어보는 시간도 필요할듯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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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나서야 혼란이 시작되었어요ㅎㅎ 이다혜 자가님의 책 제목과 유사한데 진심 그런거 같아요. 메가님 말씀처럼 어릴땐 그저 그렇게 쉽게 받아들이고 헤쳐나가고, 앉아서 발구르며 떼 쓸 이유를 못찾았지만, 성인이 되고 애엄마가 되고 아내가 되고. 사람들에게 어떤 누군가가 되고 나서부터 혼란스럽기 시작했어요. 숨차게 내 인생을 살아가야하는 그 순간 순간은 나를 먹이고 입히고 키워야 했으니. 그리고 그 순간들의 나는 어리고 나약했으니, 더자라고 더 크고 난 다음이라는 꿈이 있었지만, 이제 우리모두, 그들이 되고 된 어른인 그들이 된 지금은 현재가 중요하기에, 내가 붙들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을 잃을까봐 혼란스럽고 욕심부리고... 그러한 나를 봐 달라고... 들어달라고... 떼를 쓰는거 같아요. 위로가 되는 글입니다 오늘도... 안아줘 제발... 이라는 말을 멈추고 이리와, 안아줄께 하고 하는 연습을 해야겠어요. 감사해요 메가님.

안아주길 바라며 떼를 쓴다는 것은, 안아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고 그 품에서 내 삶이 따스히 데워질 거라는 믿음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뜻이지요^^
나이나 어떤 이유 때문에 그런 기대를 놓아버리는 것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일이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메가님은 건강하고 솔직하네요ㅎ
이 노래를 좋아하실 것 같네요.

어른이라고 떼쓰고 싶지 않을리야 없겠죠. 어린시절부터 감정을 감추는 법을 교육받아온 우리들은 드러나는 감정의 통제에는 능해지지만, 이면에 감춰진 본능과도 같은 감정을 추스르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내적 자아도 가끔은 위로 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닐까 합니다. 보이지 않거나 드러나지 않아도 상처받을 수 있으니 말이죠.

<어린시절부터 감정을 감추는 법을 교육받아온 우리들은 드러나는 감정의 통제에는 능해지지만, 이면에 감춰진 본능과도 같은 감정을 추스르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정말 그런거 같네요...ㅜㅜ

그러고보니 저도 참 다양하게 '떼'를 쓰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떼'는 누구도 잘 알아주지 않는, 충분히 오해할, 뭐 그런 종류의 것들인 것 같아요. 어쩌면 결국은 공허한 울림으로 끝나는...ㅠㅠ

저는 죽기 전까지 철이 들지 않을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 '사랑'을 하고 싶진 않은데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누군가에게 안기고 싶고,
때론 누군가를 안아주고 싶고, 누군가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빌려주고 싶고....
이런 생각들이 교차하는 걸 보면 '정말 사랑하기 싫은 건가' 싶기도 하고, 사랑하고 싶다고 떼를 쓰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 '떼'는 누구도 잘 알아주지 않는, 충분히 오해할, 뭐 그런 종류의 것들인 것 같아요. 어쩌면 결국은 공허한 울림으로 끝나는...ㅠㅠ>

누구도 잘 알아주지 않는..이 부분에서 인간은 그래서 어느 정도는 다 고독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자꾸 떼를 쓰게 되는건지도요..ㅜㅡ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누군가에게 안기고 싶고,
때론 누군가를 안아주고 싶고, 누군가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빌려주고 싶고....>

그래서 인간에겐 <정말 사랑..>이라는 것이 어찌보면 불가능한건지도 몰라요..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약하고..이기적이고.. 그래서 <정말 사랑>은 못하지만 그래도 아이처럼 <귀여운 사랑>은 할 수 있는지도 몰라요..

가끔(자주) 떼를 쓰고 안아주길 바라고 또 나의 그런 맘을 알기에 상대방도 포용하고 싶기도 하고.. 좋단 싫든 떼를 주고 받으며 상처를 주고 받으며 서로 어떤 형태로든 내 어깨와 손길을 건네주고 또 필요로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인듯 싶습니다.. 우리가 이런 댓글을 주고 받는 것도 그 형태 중의 하나겠죠..^^

눈에 안보인다..정답. 안아달라면 그냥 이리와. 하며 안아주면 되는 것을 저도 요즘은 잘 안됩니다. 마눌이 그러면 예전과 다르게 부끄러워집니다.
50을 바라보는 나이에서야 마눌의 그 뒷마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소중하죠. 뭐든 척척 되는 사람들도 많지만 서툴게 느리게 되는 사람들도 있이니까. 누군가 글에 이런 글을 쓰셨는데..인생에 있어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ㅎ 저도 좀 늦은 편입니다.

지랄 총량의 법칙... 정말 맞아요~~~

저나 남의 편이나 계속 지랄하고 있네요 십년째..ㅎㅎㅎ

총량을 채웠으니,,이제 하산하거라,, 모든 것이 니 손에 달렸나니,,옴마니 반메음, 사랑만이 답일 것이다.. ㅎㅎ주말 잘 쉬세요.

네 ㅎㅎ 이젠 총량을 채웠으니 사랑 총량의 법칙을 채워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ㅎㅎ 지랄 총량도 꽤 많은듯 해요 ㅎㅎ

공격적인 사람은 너무나 방어적이기 대문에 그렇습니다.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지요. 약하기 때문에 강해보이고 싶어하는 연약한 마음.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도 사랑이요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도 사랑인데...

이를 제대로 배우며 자라지 못한 게 가장 큰 원인 같습니다.
그저 부모 어깨너머로 본 게 거의 전부인...

뒤늦게나마 깨달은 어른들이
좀더 많이 사랑하고 나누며 살아야겠습니다.

발악(發惡).....악한 기운을 발하는 것...ㅎ
사랑을 받고 싶은게 악한 기운은 아니잖아요.^^
나도 사랑받고 싶어요. 나이들수록 미지의 사랑은 줄고 늘 보는 그 사랑은 체감이 안되곤 하나봐요.

어릴적에 충적되지 않았던 결핍감에 대한 후회가 나이들어서도 교묘하게 무의식 속에는 여전히 잠재하고 있지요, 그러나 때가 되어서 환경이 맞추어지기만 하면 그 욕구불만이 여지없이 튀어나오면서 자신의 말과 행동을 지배하게 되지요, 그래서 나이먹어도 어린애 같은 경우가 아주 많답니다.

기대란..
어린시절 꿈을 키울때만
가능 한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된 지금 기대란
결핍의 또 다른 이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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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에 잠들고 있던
꽃같은 웃음이 길따라
총총히 가고 있다...

<내안에 잠들고 있던
꽃같은 웃음이 길따라
총총히 가고 있다...>

마지막 구절에 눈과 마음이 한참 머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