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고장 거창-3 611봉, 523봉
선비의 고장 거창-3 611봉, 523봉
국립공원이나 도립,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산들은 정비가 잘 되어 있고 갈림길마다 안내판이 마련되어 있어 길을 잃을 확률이 낮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거창의 산들은 정말 관리가 허술했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이정표가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100대 명산이나 100대 명산 플러스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산들의 정비 상태를 타박하기도 했으나, 이곳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간단한 표지판 하나만 있었어도 경로를 이탈하지 않았을 곳에서 이정표 부재로 인해 여러 번 같은 실수를 반복해야 했다.
누군가 작은 종이에 적어 바닥에 놓아둔 이정표 조각이라도 없었다면, 정말이지 헤어 나오기 힘든 구렁텅이에 빠졌을지도 모르겠다. 버스에서 GPX 파일을 받았지만 램블러에서 구동하지 못해 카카오맵을 활용했는데, 음성 경고 기능이 없고 숲속에서 신호를 제대로 잡지 못해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611봉, 523봉
거창의 611봉과 523봉은 단독으로 이름난 명산이라기보다, 거창의 주요 능선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와 같은 봉우리들이다. 보통 북상면에서 시작해 시루봉(증봉), 호음산을 거쳐 성령산으로 이어지는 종주 코스에서 마주하게 되는 지점들이다.
거창군 북상면과 고제면 일대의 산줄기를 타다 보면 이름 없는 숫자봉인 611봉과 523봉을 차례로 만나게 되는데, 이들은 비록 고유한 이름은 없으나 종주 산행객들에게는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한다.
해발 611m의 611봉은 호음산의 가파른 내리막을 지나 성령산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다시금 숨을 고르게 만드는 지점이다. 주변이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어 조망보다는 정적 속에서 산의 깊은 기운을 느끼기에 적합하다.
이어지는 523봉 역시 능선상의 작은 돌출부처럼 보이지만, 겨울철이면 발목까지 빠지는 깊은 낙엽과 희미해진 등산로 때문에 산행 난이도를 높이는 주범이 된다. 특히 이 구간은 인적이 드물어 자연 그대로의 거친 식생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이 두 봉우리는 화려한 정상석이나 탁 트인 조망은 부족할지 몰라도, 칡목재에서 시작해 시루봉과 호음산을 거쳐 성령산에 이르는 긴 여정 속에서 산객이 자신의 호흡을 가다듬고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게 만드는 고독한 수행의 구간과도 같다.
어지간한 지도상에는 표시조차 되지 않는 봉우리지만, 실제 산행에서는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거창의 험준한 산세를 대변하며 마라톤과 같은 종주 산행의 묘미를 완성해 주는 필수적인 연결 고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동네 뒷산을 닮았네요.^^
밋밋한 야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