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유산국립공원 무주 적상산-2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
덕유산국립공원 무주 적상산-2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
적상호가 있다기에 기대를 품고 갔으나, 철책이 쳐져 있어 접근할 수 없었고 호수 자체도 작고 보잘것없었다. 해발 1,029m의 향로봉까지 5.8km라는 긴 거리는 그만큼 경사가 완만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가을에 왔더라면 단풍이라도 보았겠지만, 지금의 경치는 기대 이하였다. 하지만 불평만 하기엔 시간이 아까워 운동이라도 제대로 하자는 마음으로 발을 옮겼다.
어제는 대관령에서 겨울을 보내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스키가 좋아 매년 겨울이면 3개월씩 대관령에 머무는 친구인데, 꼭 술에 취했을 때만 전화를 한다. 아무리 스키가 좋다 한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는 외로움이 클 것이다.
그는 내게 자신이 몇 번째 친구인지 확인받고 싶어 했다. "네가 첫 번째다"라고 말해주면 그만이겠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친구를 순위로 매겨본 적도 없고, 누구와의 거리를 재보지도 않았기에 그런 질문 자체가 불편했다.
잠들어야 할 시간임에도 그는 전화를 끊지 않았다. 대화할 상대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아내도 있는데 왜 굳이 내게 그 짐을 지우는지, 특별할 것 없는 넋두리를 듣고 있는 것도 피곤했다.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
적상산은 수려한 경관 못지않게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국가적 보관소였다. 바로 조선 왕조의 보물인 '실록'을 지켰던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전국에 흩어져 있던 사고들이 대부분 불타버리고 오직 전주사고의 실록만 살아남았다.
이에 조선 조정은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더 안전한 곳을 찾았고, 사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적상산을 최적의 장소로 낙점했다. 1614년(광해군 6년)에 실록전(實錄殿)을 건립하여 조선왕조실록뿐만 아니라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璿源錄) 등을 함께 보관했다.
보통 사고는 군인들이 지키기도 했지만, 깊은 산속인 만큼 승병(승려 군인)들이 주둔하며 지켰다. 적상산의 안국사가 바로 그 역할을 수행했던 사찰이다. 승병들은 실록을 습기나 화재로부터 보호하고, 유사시 목숨을 걸고 지키는 수호자 역할을 했다.
일제에 의해 실록은 서울(경성제국대학)로 옮겨졌고, 사고 건물은 방치되다가 사라졌다. (당시 실록 중 일부는 이후 북한으로 옮겨져 현재 김일성종합대학에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2년 양수발전소 상부댐(적상호)이 건설되면서 원래의 사고 터가 물에 잠기게 되자, 조금 더 위쪽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우리는 기록의 민족이기도 하죠.^^
조선실록 정말 대단한 기록이지요.
이런거 보면 팔만대장경이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