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의 노래, 북유럽 8개국 패키지투어-32 리투아니아 슈레이 십자가의 언덕(The Hill of Crosses)

in #kr10 hours ago

b-DSC01480.JPG

발트해의 노래, 북유럽 8개국 패키지투어-32 리투아니아 슈레이 십자가의 언덕(The Hill of Crosses)

14시 05분에 샤울랴이 십자가의 언덕에 도착했다. 인솔자는 15시까지 버스로 돌아오라는 말만 남겨둔 채 따라오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 이미 역사적 배경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기에 더 할 이야기도 없었을 것이고, 잠시라도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터였다.

b-DSC01413.JPG

b-DSC01422.JPG

b-DSC01425.JPG

언덕으로 가는 길에는 노란 민들레가 초원에 수놓은 듯 박혀 있었다. 주변에는 거대한 마로니에 나무들이 많이 보였는데, 나무마다 꽃이 방울방울 맺혀 있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상점에서는 여러 종류의 십자가를 판매하고 있었다. 독실한 신자인 아내가 십자가를 사달라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다행히 아무 말이 없었다. 화장실은 1유로를 내야 했다. 북유럽의 모든 나라는 비자(VISA) 카드 하나로 다 해결되니 참 편리하다.

b-DSC01452.JPG

b-DSC01439.JPG

b-DSC01436.JPG

십자가의 언덕(The Hill of Crosses)

b-DSC01476.JPG

리투아니아 북부 도시 샤울랴이(Šiauliai, ‘슈레이’의 올바른 표기) 근교에 위치한 가톨릭 성지이자 리투아니아 민족의 저항과 신앙을 상징하는 세계적인 명소다. 인위적으로 만든 기념비가 아니라, 수세기에 걸쳐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순례자들과 현지인들이 자발적으로 십자가를 세우면서 형성된 거대한 십자가 군락이다.

b-DSC01458.JPG

b-DSC01465.JPG

b-DSC01467.JPG

정확한 시작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대체로 1831년과 1863년에 일어난 러시아 제국에 대한 리투아니아인들의 독립 봉기 이후로 보고 있다. 당시 처형되거나 시베리아로 유배된 희생자들의 가족들이 그들의 시신을 찾지 못하자, 영혼을 달래고 추모하기 위해 이 언덕에 십자가를 하나둘 세우기 시작했다.

b-DSC01472.JPG

b-DSC01485.JPG

20세기 들어 리투아니아가 구소련에 병합되었을 때, 이 언덕은 민족주의와 가톨릭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소련 당국은 불도저를 동원해 십자가를 모두 부수고 불태웠으며, 민간인의 출입을 전면 통제했다. 심지어 이곳을 물로 채워 호수로 만들려는 계획까지 세웠다. 그러나 리투아니아인들은 야간을 틈타 목숨을 걸고 다시 십자가를 세우며 끈질기게 저항했다. 이 때문에 이곳은 단순한 종교 성지를 넘어 압제에 맞선 자유와 끈기의 상징이 되었다.

b-DSC01488.JPG

b-DSC01497.JPG

b-DSC01493.JPG

1993년 9월 7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을 직접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은 이 언덕을 "자유, 희망, 정의, 그리고 사랑의 상징"으로 선포했으며, 그가 기증한 대형 목조 십자가가 현재 언덕 초입에 세워져 있다. 이 방문을 계기로 십자가의 언덕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b-DSC01501.JPG

b-DSC01504.JPG

b-DSC01522.JPG

현재 이 작은 언덕과 그 주변에는 작은 손돌 크기의 십자가부터 수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목조·철제 십자가, 묵주, 성모마리아상 등 수십만 개(약 10만~20만 개 이상 추정)의 십자가가 빽빽하게 뒤덮고 있다.

b-DSC01551.JPG

b-DSC01582.JPG

b-DSC01595.JPG

바람이 불 때마다 수많은 나무 십자가와 금속 묵주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독특한 소리가 언덕 전체에 울려 퍼진다.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물은 없지만, 인간의 열망과 신앙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낸 압도적이고 경건한 아우라를 풍기는 장소다. 누구나 제한 없이 방문하여 자신만의 십자가를 놓아두고 올 수 있다.

b-DSC01605.JPG

b-DSC01579.JPG

b-DSC0159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