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든 · 손
여름은 봄의 끝물이라는 생각을 갖고있었다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수록
더위는 길게 늘어졌다
태풍이 비를 몰아오면
밤 사이 풀밭에 떨어진 복숭아를 먹을 수 있는
딱 한 가지 빼놓고 좋은 게 없었다
방바닥에 엎드려
빌려온 만화에서 표 안 나게 오려낸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도
밭고랑에 뽑아놓은 잡초더미처럼 짓물렀다
벽지들이 숨을 쉴 때마다 내뿜던
흙 묻은 곰팡이 냄새는
쉬지 않고 온 동네를 떠돌았다
등에 조끼런닝 자국이 선명한 개구쟁이의
까만 고무신안에서 꼬리를 흔들며
바다로 가는 길을 찾는 송사리떼가
햇볕을 발라먹으며
여름의 시간표를 지우고 있었다
그 여름/ 최문자
사랑이 끝나자 여름이 왔다
그해 여름의 절반은 물이었다
나와 한통속인 기분으로
거의 매일 소나기가 왔다
그리움도 퉁퉁 불어 터질 수 있었다
일 분 사이 꽃가루들이 물이 되었다
기도실에서 하나님을 불러내고 나는 무서웠다
비좁은 통로를 올라오면서 울고 말았다
울지 않으면 나쁜 생각을 했다
이 슬픔
살짝 쳐들어보면 모두가 나로 만든 것들
비릿한 물고기 맛
그해 여름의 절반은 이해되지 않았다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허공 너머에도 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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