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행전 Reboot] 반지는 목에 걸라고 준 게 아니야
제1부 도망
소년은 도망을 쳤다. 소녀가 교통사고로 죽어, 주령(呪靈, 인간의 두려움과 증오가 응집되어 의식적 존재로 변형된 염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소녀는 거대한 주령으로 자라났다. 소년의 공포와 두려움을 먹고.

이 이야기는 이 나라의 고대 신화와 닮아 있다. 도망친 남자의 이야기.
"아마테라스(天照大神)'는 어머니가 없다. 그녀는(어떤 설에 의하면 남자라고도 한다) 아버지의 눈에서 태어났다. 그의 동생들 역시. 일본의 국조인 아마테라스는 신인데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 후손인 천황 역시 어머니가 없고, 일본인들 역시 어머니 없이 태어난 아이들인 것이다.
어머니가 없는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기는 하나, 아버지가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테라스의 아버지 '이자나기(伊邪那岐)'는 아내 '이자나미(伊邪那美)'가 불의 신 '카구츠치(火之迦具土)'를 낳다가 화상을 입고 죽자, 저승으로 아내를 찾아간다. 그러나 그녀의 흉측하게 변해버린 모습을 보고 도망을 친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구하지 않고 도망친 것이다."
아내를 두고 도망을 친 건, 건국 신의 후손인 소년도 예외가 아니었다. 죽기 전 소녀는 공원에서 소년에게 반지를 주었다. 커서 결혼하자며 언약을 했다. 소년은 그러자면서도, 반지를 끼지는 않고 신기한 듯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소녀는 죽고, 흉측한 귀신(주령)이 되어버렸다. 주령이 자신의 발목을 잡으며 자기와 결혼해야 한다고 약속을 상기시키자, 소년은 두려움 속으로 도망을 쳤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열망하던 존재가 흉측한 귀신이 되어 나타나면, 일단 회피하고 도망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죽은 자는 자신이 죽은지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형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자각할 길이 없다. 보이는 건 열망하는 상대뿐이다. 그런 상대가 도망을 치면 할 수 있는 건 저주를 내리는 일뿐이다. 사랑할 수는 없잖아?
"그런데 어머니의 부재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슬픔'을 교리화한 이 매우 성숙해 보이는 신화적 해석이 회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의 부채의식이다. 신화에서는 어머니 이자나미가 저승에서 오염된 존재가 되어버려 아버지가 접근할 수 없었고, 잠시 그녀를 마주한 아버지마저 일부 오염되어 정화 의식을 거쳐야 했다고 (변명)하지만, 어머니를 포기한 아버지에게서는 마늘과 쑥만 먹으며 동굴에서 백일을 견뎌낸 어머니의 초월적 그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신화에서는 이자나미가 분노하여 그를 쫓았으나, 이자나기는 쫓아오지 못하게 요미노쿠니(저승)의 입구를 봉인해 버렸다고 한다. 심지어 그 아버지는 분노하여 어머니를 죽게 한 불의 신 '카구츠치(火之迦具土)'를 칼로 오등분 해 죽여버렸다. 물론 오등분 낸 그는 자신의 자식이다. 그 후 정화 의식을 통해 태어난 아이들이 아마테라스와 형제들이다. 그러니 아마테라스는 어머니의 그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어머니 없이 태어난 아버지의 자식들일 뿐. 신화에서 분노한 어머니 이자나기는 도망치는 아버지를 향해 매일 천명을 죽여버리겠다고 저주를 내린다."
소년은 자신이 저주에 휩싸였다고 생각했다. 주령이 된 소녀. 소녀의 저주는 소년으로 하여금 누구와도 관계할 수 없는 외톨이가 되게 만들었다. 소년에게 다가오는 모든 이들이 주령이 된 소녀의 저주로 말미암아 다치거나 죽거나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매일 천명을 죽여버리겠다고, 도망치는 남편에게 일갈했던 저주의 여신처럼.
"나는 더 이상 아무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틀어박힌 채 사라지려고 했어."
소년의 죄책감과 상실에 대한 공포, 억압된 욕망이 거대한 저주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살아있는 소년도, 죽은 소녀도 사라질 수 없는 불멸의 존재가 되어버렸다. 통합되지 않은 에너지는 집착과 회피를 반복하며 계속 불어나니까.

융의 그림자 이론을 따르면 그림자란 버림받은 사랑의 에너지이다. 소년의 의식이 감당하지 못해 외면해 버린 그것이 외부로 투사되어 거대한 주령으로 현현한 것이다. 그것은 남의 것이 아니다. 어둠의 사탄이 보낸 지옥의 악령이 아니다. 그것은 통합하지 않고 잘라내 버린 내 마음의 그림자이다. 그것이 내게 저주가 되고, 나의 저주가 되어 세상을 혼돈으로 밀어 넣는다. 사람들은 나를 만나고 나의 그림자를 만난다. 나는 타인을 만나고, 나의 그림자가 투사된 타인을 만난다. 그래서 나도, 타인도, 모두 혼돈에 빠져드는 것이다. 누가 너인지, 누가 진짜 나인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겠으니까.
그러나 도망쳐 버린 그것을, 내 마음에서 잘라내 버린 그것, 등 뒤에 착 달라붙어서 섬뜩하게 마인드 플레잉을 해대는 그것을, 내 마음의 잃어버린 반쪽으로 여기고 끌어안으면. 소년은 그제서야 온전한 인간으로서 성장의 한 발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오리모토 리카 정도의 엄청난 저주를 퇴치하는 건 거의 불가능해. 하지만 푸는 것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수천수만이 되는 주력의 매듭을 읽어 내서 하나씩 풀어 나가는 거야. 이건 저주받은 본인밖에 할 수 없는 방법이지."
상대에게 투사된 나의 그림자를 감당할 수 있는가? 소년은 소녀를 감당하지 못했고 소녀는 주령이 되었다. 이자니기는 이자나미를 감당하지 못했고, 이자나미는 저주가 되었다. 남자가 사랑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면 그림자는 감당못할 악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여자가 사랑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면 그림자는 폭군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자나기는 이자나미를 인정하지 않고 그림자를 외부화했다. 그래서 그림자는 '불결의 근원'이 되었고 신화 전체가 '정화 의식'에 집중하게 됨으로써 갈등은 영원히 반복되게 되었다. 그러나 소년은 그림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멈추었던 성장이 시작된 것이다.
"리카가 제게 저주를 건 게 아니라, 제가 리카에게 저주를 걸었을지도 몰라요."
"이건 내 지론인데, 사랑만큼 뒤틀린 저주는 없어."

그림자 또는 암흑의 여성
요미노쿠니의 '썩은 시체', '추적하는 존재', '죽음의 선언'. 이는 '그림자의 여성 원형 (shadow feminine)'을 상징합니다. 융은 이처럼 두 얼굴(창조와 파괴)을 지닌 여성을 "무서우면서도 신성한 어머니", 즉 '테라 마테르(Terra Mater)'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니마(Anima)의 어두운 모습
남성(이자나기) 입장에서 보면, 이자나미는 초기에는 아름답고 창조적인 아니마였으나, 무의식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섬뜩한 진실(죽음, 분해, 두려움)'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는 무의식의 깊은 층으로 들어갔다가 '정화와 통합 없이 급히 빠져나오려는 자아의 두려움'을 상징합니다.
이자나미는 “창조와 파괴, 생명과 죽음, 빛과 어둠”을 모두 지닌 원형적 여성 신입니다. 그녀는 무섭고도 아름다운, 인간 내면의 양극을 연결해 주는 통합의 여신이기도 하며, 그 그림자를 직면하는 자만이 진정한 자기(Self)를 찾을 수 있습니다.
_ 젠야타(Zenyatta)
소년들이 혈귀, 주령, 요괴들과 싸운다. 그것은 실체 없는 망령 같아 보이지만 모두 인간에게서 나온 그림자이다. 작가는 그림자를 끌어안고 통합해 내는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이 나라의 근원적 공포를 치유하려고 시도한다. 유난히 혈귀, 주령, 요괴들과 싸우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이 나라의 작품들을 보자면, 이러한 시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겠다. 수천만 명이 이 작품에 열광하고, 심지어 바다 너머 대륙에서도 팬들이 양산되고 있는데, 현실의 소년소녀들은, 자신의 그림자를 용기 있게 대면하며, 도망치지 않고 통합해 나가고 있을까?
소년은 비로소 목에 걸고 있던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주령이 된 소녀에게 약속을 한다.
"리카, 항상 지켜 줘서 고마워. 그리고 날 좋아해 줘서 고마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힘을 빌려줘. 저놈을 막고 싶어. 그런 다음엔 이제 아무것도 필요 없어. 나의 미래도, 나의 마음도, 나의 육체도, 전부 리카에게 줄게. 앞으로는 정말로 같이 있을 수 있어. 리카 사랑해. 같이 가자. "

물론 귀신(주령) 리카 따위는 없다. 강력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주령을 자신의 일부로 여기지 못한 소년의 환상이었을 뿐. 리카가 저주가 된 것은 그녀가 부정하고 악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신성한 힘이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리카는 본래 사랑, 생명, 감정적 진실, 유대의 힘이었으나, 소년과 단절됨으로써 집착, 광기, 저주의 형태로 뒤집혔던 것이다. 그러나 힘은 소년의 것이다. 연약한 존재라고 자신을 하찮게 여기던 소년은 모든 힘을 두려움으로 외부화 시켜버렸고, 그것이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해치려 한다고 공포에 휩싸여 살아왔다. 지킬박사의 하이드씨처럼 두려움을 외부화해서 저주로 만들고 스스로를 처벌한 것이다. 그러나 공포의 근원이었던 그림자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림자와 자신을 통합해 내자, 소년은 모두가 두려워하는 특급 주술사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힘과 하나 된 것이다.
'아니마(Anima)'는 남성의 무의식 속 여성 원형을 말한다. 소년에게 리카는 감성, 생명력, 관계 능력, 치유의 원형이다. 하지만 억압되거나 무시되면 질투, 집착, 광기, 파괴적 사랑으로 전환된다. 그래서 리카는 저주가 아니라 뒤집힌 치유이다. 리카는 소년의 상처받은 아니마, 왜곡된 감정, 역전된 사랑, 그림자의 실체인 것이다. 그걸 소년이 '사랑'으로 받아들였을 때 아니마는 통합되고, 그림자는 크리스탈화 되어 자신의 검에 힘을 불어넣게 되는 것이다.
"리카의 저주를 검에 담아 지배하도록. 조금씩 양을 늘려 가면서 언젠가는 전부 수중에 넣는 거야. 그러면 당당히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어. 너도, 리카도 말이야."
그림자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거부하며 고통 속에서 자신을 학대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마법사는 이를 '고통 중독'이라 부르고, 그것조차 지칠 때까지, 지겨울 때까지 즐길 자격이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생은 영원하고 성장은 멈추지 않으니까) 통합하지 못한 힘은 갈 곳을 몰라 자신의 주위를 배회하고, 두려움은 그것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못된?) 주변 인물들에게 투사한다. 그러나 내가 투사한 힘과는 죽을 때까지 싸워봐야 이길 수가 없다. 더욱 강력해질 뿐. 투사된 공포는 아무리 도망쳐도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분리할 수 없는 나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세계에서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무엇을 투사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은 나의 눈앞에 끊임없이 나타나 괴롭히고 억압하며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하고 있으며 해 왔다. 나에게서 떨어져 나간 나의 힘들. 그것과 대면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니라, 나의 그림자, 도망쳐버린 나의 힘들이다.

제2부 봉인
"일본 국내의 의문사나 행방불명자는 연평균 만 명이 넘는다. 그들 대부분은 인간의 육체에서 빠져나온 부정적인 감정. 즉, 저주의 피해자야."
"일본에 비해 외국엔 주술사나 주령의 발생이 극단적으로 적거든."
건국신화의 남신 이자나기는 아내 이자나미를 봉인했다. 도망치는 이자나기를 이자나미가 분노하여 쫓았으나, 이자나기는 쫓아오지 못하게 저승의 입구를 봉인해 버렸다. 이로써 이자나기는 자신의 아니마와의 접촉을 끊어버렸고, 이자나미는 '죽음의 주재자'가 되어, 후손들의 집단 무의식 속에서 원한, 부정, 저주의 근원이 되었다.
의식이 그림자와 접촉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고 변형되어 나타난다. 사랑, 절망, 소유, 죄책감, 죽음 충동 등의 감정들이 의식과 분리되어 '저주'라는 형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이 나라의 정신세계는 신화로부터, 역사적으로, '죽음과 그림자'를 정면으로 통합하기보다 접촉 불능 상태로 두었기 때문에 주령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이 기묘한 건국 신화는 국가의 집단 무의식을 다루고 있다. 이자나미는 억압된 감정, 죽음의 부정, 애도(哀悼) 실패, 치유되지 않은 채 단절된 관계의 국가적 그림자이다. 이 나라의 국민들은 자신의 집단 무의식적 근원인 이자나미에 닿을 수 없도록 신화적으로 봉인되어 버렸다. 그래서 주령(투사된 그림자)들이 작품마다 난동을 부리는 것이다.

그림자는 억압된 욕망, 감정, 공포, 원초적 충동이다. 그림자와 닿지 않으면 사람은 온전한 존재로 성장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림자의 부재(不在)'는 성장이 봉인된 상태인 것이다. 지킬박사의 반쪽짜리 괴물 '하이드(Hyde) 상'으로 자라나는 것이다. 선(善)으로 가득한 세상. 어둠이 없고 빛으로 충만한 세상 말이다. 그러나 봉인되었다고 존재하는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억압된 것들은 외부로 투사되어 주령으로 현현하니, 무찔러야 할 대상이 생겨나는 것이다. 천황을 위해 옥쇄 투쟁하는 신민들은 아니마와 그림자를 지옥에 봉인한 이자나기 신의 가미카제 전사들이다. 그리고 악은 열도 너머 대륙과 거대한 자연 질서에 외부화되어 침략의 위협과 자연재해의 모습으로 현현한다. 저주받은 소녀가 봉인에서 풀려났으니 자위대가 필요하다. 도망친 이자나기 신의 군대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봉인의 위력과 위험은 전 지구적이다.
"최적화 계획엔 반드시 텐겐의 결계가 필요할 거야. 텐겐을 이용한다는 건 주력이 최적화돼서 주술사가 되는 건 이 나라의 인간뿐이란 뜻이지. 주력이란 에너지를 거의 일본이 독점하게 돼. 그 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이 가만있지 않겠지. 살아 있는 인간이 에너지원이니까. 어떤 불행이 닥칠지는 불 보듯 뻔하잖아. 그건, 내가 그리는 이상과는 동떨어진 세계거든."
_ 주술회전 시즌2: 47화 시부야 사변 폐문 中
작가는 일본의 현대 사회구조와 전통 관념을 '집단 무의식의 어둠'으로 보고 있다. 일본에 주령이 많은 이유는 일본 사회가 억압한 감정이 집단 무의식의 통합 실패로 형상화되어, 집단적인 '그림자 덩어리'로 응축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해소하고 치유하기 위하여, 새로운 이야기의 주인공들인 용기 있는 소년과 소녀들이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통합함으로써 힘으로 변환시키고 있는 것이다. 봉인의 신화를 이야기로써 해방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은 저주를 퇴치하기 위해 저주를 배우는 도쿄 도립 주술 고등전문학교다."
"선생님, 저는 주술고전에서 리카의 저주를 풀겠습니다!"

그래서 너는? 너는 어떤 봉인을 풀지 못하고 있는가? 너의 신화는 어떤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봉인한 채 도망쳐 버렸다 말하는가. 너의 손에는 얼마나 많은 크리스탈이 들려 있는가. 아니, 너는 어쩌면, 자신이 주령이 되어버렸는지 모르는 단절된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무의식인지 모른다. 나는 귀신과 만나, 진짜 그대는 어디로 갔냐며 일갈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게 즐거움이라면, 놓지 못하는 인생의 맛이라면, 나는 주술사를 불러 너를 퇴치하라 하겠지. 내가 아는 진짜 너는 두려움 속으로 도망쳐 버리는 반쪽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반지는 목에 걸라고 준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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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그때 망설였어. 사태가 이 지경까지 됐으니 일단 마음대로 하게 두고 상황을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눈치챘어? 난 너희의 편은 아니야. 그저 세상에서 주령을 없애고 싶은 하찮은 미녀지. 사과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그곳에 있던 아이들은 나와 내 동료가 책임지고 데려다줄게. 나도 이제 그만 텐겐과 마주해야겠지. 넌 어떻게 할래?"
_ 주술회전 시즌2: 47화 시부야 사변 폐문 中
[마법행전 Reboot] 7장. 반지는 목에 걸라고 준 게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