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그리다) '스페인 하숙'을 촬영한 마을에 도착한 날
목적지 마을에 거의 다 와서 본 특이한 모양의 집이다.
멀리서 보면 꼭 무너진 집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 와서 보면 지붕과 기둥을 특이하게 디자인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기둥은 좀 난해해서 뭘 표현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붕을 스페인에서 볼 수 있는 산을 형상화한 듯하다.
워낙 시야가 넓은 땅이라서 산도 거의 저멀리 지평선과 나란히 있으면서 약간 능선의 형태를 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스페인의 산의 모습을 꼭 닮은 지붕이었다.
건축이 자연을 닮으면 참 멋진 건물처럼 보이는 법이다.
우리가 사는 제주에 있는 옛날 집들이 매우 제주의 자연을 닮아 있어서 멋진 것과 같은 이치이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이 마을은 규모가 조금 작다.
우선 아침도 겨우 바나나로 떼워서 점심을 먹으면서 더 걸을지 말지를 결정하기로 했다.
우리가 들린 식당은 식사 손님이 우리가 처음이었는지 우리가 순례자 메뉴를 주문하니까 그때서 종업원이 빵집에 가서 빵을 사다가 우리에게 주었다.
그래도 음식이 너무 맛있더니 조금 후에 가게 안에 손님이 꽉 차고 길가에까지 나와서 한손에 맥주잔을 들고 다른 손에 안주로 타파스 하나씩을 든 손님이 왁자지껄해졌다.
오전에 만났던 일본인 부부는 식당 옆에 있는 알베르게로 들어가서 묵으려는 것 같다.
한참을 밥을 먹고 있는데, 그때서야 우리를 앞서간 한국분들이 도착했다.
우리가 한참을 뒤쳐져 올 줄 알았는데 먼저 도착해 밥 먹고 맥주 마시며 놀고 있는 걸 보고 놀라신 듯하다.
그분들은 이 마을에서 묵을 거라고 하시면서 먼저 가서 숙소가 어떤지 정보를 알려주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데이터가 안 되어서 SNS 문자를 보지 못하는데, 어쨌든 숙소에 가신 후 정보를 문자로 보내주셨다.
우리는 밥 먹고 힘을 보충한 후 다음 마을까지 걷기로 했다.
이 마을에서는 재미있는 벽화와 사진 한장 찍었다.
특히 우리가 다음 마을로 가기로 한 이유는 이 마을 알베르게가 하나 있는데, 오래된 성당에서 운영하는 공립 알베르게였다.
아마도 베드버그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기로...
한참을 걷다보니 산티아고가 220킬로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왔다.
800킬로가 다 되는 거리를 걸으며, 600킬로가 남았네 500킬로가 남았네 했을 때는 음 많이 남았구나 하며 시큰둥했었다.
근데 200킬로 남았다니 조금 가슴이 두근 거린다.
그걸 다 걷고 이제 220킬로 정도 남았단 말이지?
왠지 220킬로라고 하니 만만하게 느껴져서 걷다가 보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500킬로 이상 이 길을 걸으면서 점점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도 순례자가 되고 있었다.
어떤 길이든 하나하나 정성껏 걷고, 만나는 사람들과 마음을 다해 인사하고 이야기하고, 밥을 먹어도 맥주를 마셔도 그 순간을 즐길줄 알고, 숙소에 들어가 쉴 때까지도 그 어떤 불편함도 받아들이고 잘 수 있게 되었다. 뭐 아직도 베드버그는 몸서리치게 싫지만.ㅋ
이 길을 걸었던 수많은 사람들도 우리처럼 걷다가 자기도 모르게 순례자가 되어갔을 것이다.
순례자가 무엇인가? 하면 딱히 정의내리긴 어렵지만, 이 길을 걸었던 사람은 순례자가 무엇인지 그냥 느끼게 된다.
이 길에 수없이 많았던 이 표지판처럼 우리는 자연스럽게 순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별로 안 힘들다는 생각에 한 마을 더 가다보면 중간에 잠시 후회를 한다.
그래도 힘들지 않을 때 걸음을 멈추는 것보다는 이렇게 ‘언제쯤 목적지에 다 오지?’하는 투정이 생길 때까지 걷는 게 좋다.
힘들게 걸을 때면 더 멋지게 보이는 풍경도 있다.
오늘은 한동안 보이지 않던 포도밭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 들어서는 마을을 둘러선 산 모두가 포도밭이다.
아마도 이 근방이 포도 주산지일 것이다.
사방으로 보이는 포도밭은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보여 사진에 담아보고 싶었지만, 사진으로는 포도밭이 잘 안 보인다.
넓은 땅에 비해 포도 나무는 너무 작아서이다.
그곳을 걷는 순례자만이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인 듯하다.
그 넓은 포도밭에서 일하는 농부야 그 포도밭이 다 일구더기로 보일테니 우리만큼 감상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어디를 봐도 포도밭인 산 정상에 하얀집이 예쁘게 하나 있다.
아마도 농기계 창고같은 것일테지만 멋진 풍경을 선사해준다.

전에 산티아고 관련 글을 읽는데, ‘어느 마을을 지날 때는 사람은 없고, 집집마다 기르는 개들만 사납게 짖고 있다.’라고 되어 있더니, 정말로 개를 기르는 집이 많이 있다.
애완용 개 한두 마리가 아니라 마당에서 사납게 짖고 있는 개를 보면 대여섯 마리는 족히 된다.
그리고 이렇게 ‘개조심’이라는 표지가 재미있게 붙어 있는 집도 자주 볼 수 있다.
또 어떤 집 개들은 순례자들이 지나가도 짖지도 않고 본 척도 안하기도 한다.
아마도 이 길에서 산지 오래된 개인 듯하다.
낯선 순례자들이 매일 지나가는 것이 그 개들에게 일상이 된 듯하다.

우리가 도착한 마을은 중간 규모의 마을이었다.
검색으로 평점이 제일 좋은 알베르게를 알아두고 그곳을 찾아갔는데, 이런 만실이란다.
순례자가 많아지니 만실인 알베르게도 나온다.
한 마을을 더 걸어 왔으니 앞으로 더 갈 수는 없다.
처음 간 알베르게 직원이 다른 알베르게에 전화를 해 주었는데, 일반실은 거기도 만실이고 룸만 있다고 했다.
룸이 비싸긴 하지만 그래도 편히 잘 수 있는 장점도 있으니 거기서 자기로 했다.
건물은 마을 외곽에 있었다.
직원이 자기의 이름이 ‘리비아’라고 소개해 주면서 전망이 아주 좋은 방이라고 자랑을 했다.
숙소에 와서 보니 브라질 팀도 이 숙소에 묵고 있었다.
짐을 풀고 씻을 때보니 전 마을에서 약을 사먹기 전에 내가 어딘가에서 베드버그에 또 물린 듯하다.
이번에 문 베드버그는 지금까지의 것과 또 달랐다.
모기 물린 것처럼 상처가 나고 일주일 이상 가려운 것이 일반적인데, 이번엔 이상하게 동전만하게 상처가 나고 거기에 물집까지 잡혔다.
그렇게 물집이 잡힌 곳이 다리에 서너 군데가 있어서 아무래도 지금껏 입던 반바지를 입을 수가 없었다.
보기에도 흉했고 며칠 계속 기온이 떨어지고 있는데, 내일은 꽤 높은 산 꼭대기에 있는 마을에서 묵어야 하기 때문에 많이 추울 듯했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만물상 같은 가게가 있어서 두꺼운 양말과 내 긴바지, 남편 긴팔 웃도리를 샀다.
저녁은 피자를 먹었는데, 베드버그 때문에 급 기분이 나빠져서 맛있는지도 모르겠고 해서 대충 먹고 숙소에 들어와 일찍 잤다.
그리고 요즘 티비에서 차승원과 유해진이 운영하는 '스페인 하숙'이 바로 이 마을에서 찍은 것이다.
출연자들이 매일 장을 보기 위해 나서는 길들이 그때 우리가 옷을 사고 피자를 먹었던 그 거리들이다.
새삼 보니 반갑고 아련해진다.
이 글은 2017년 6월 10일부터 7월 8일까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우리 부부의 찬란한 추억이 담긴 글입니다. 사진은 대부분 남편(@lager68)이 찍었습니다. 글은 제가 썼는데 많이 미숙한 글입니다. 그럼에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이 글은 스팀 기반 여행정보 서비스
trips.teem 으로 작성된 글 입니다.
기둥을 왜 저렇게 이상하게(?) 만들어 놓았을까요?
뭐 만든 분이야 예술적이니... 어쩌니 하겠지만! ㅎㅎ
포도밭에 하얀집... 창고라도 너무 멋진데요!! 저런곳에 집짓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네요~ ㅎㅎ
저런 곳에 집을 지으시면 그 앞에 펼쳐진 포도밭에서 일구덩이에 빠져 사셔야할텐데요?ㅋㅋ
제가 시골에 살아봐서 아는데, 시골은 보이는 것처럼 낭만적이지 않답니다.
ㅎㅎㅎ 안그래도 요새 스페인 하숙 볼 때마다 gghite님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물집이 생기는 베드버그라니. ㅠㅠ 외국에는 한국에서 접하지 못한 이상한 벌레들이 있다는 점이 참 힘든 것 같아요. 저도 작년에 뭐에 물렸는지 모르겠는데 마치 라임 진드기에 물린 것 같이 돼서 마음 고생이 심했거든요. ㅠㅠ 그때는 외국 생활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만 싶었습니다.
그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벌레한테 물렸는데, 어쩜 그렇게 사람 마음을 완벽하게 울적하게 만들까요?
낯선 곳에서는 참 뜬금없는 것이 변수가 되기도 하는 거 같아요.
말로만 들었던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시고 계시군요 저도 뭔가 목표를 세워 실천해보고 싶습니다^^
아, 이미 다 걸었습니다.
다녀와서 여행기를 트립스팀에 하나하나 올리고 있는 중이랍니다.
다녀온지 벌써 2년이 되었는데도 어제 걷고 온 것처럼 생생하답니다.^^
아주아주 재미있는글 잘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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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여행은 잘 다녀오셨나요?
전라도 여행기도 포스팅해 보시면 어떨지요.
여행의 스타일이 남다르실 거 같으세요.ㅋ
안그래도 요즘 스페인하숙 즐겨보고 있었어요. ㅎㅎ 몇백킬로를 걷다보면 자연스레 순례자가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살면서 한달 정도 순례자로 살아보게 하는 산티아고 길은 너무 멋진 길인 듯합니다.
진짜 멋진 풍경인데.. 베드버그 때문에 순수하게 감탄만 나오지는 않는 군요.ㅜㅜ
요즘은 순례자들 사이에서 sns로 숙소 정보가 실시간 공유되기 때문에, 점점 베드버그가 출몰하는 숙소는 퇴출되는 분위기라고는 하더라구요.
너무 겁내진 마세요.ㅋㅋ
순례길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는가 보군요.
산티아고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사람은 점점더 많아지더라구요.
워낙 긴 순례길이니 처음부터 걷지 않고, 목적지 근처 지점부터 시작하는 사람들이 꽤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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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런 디자인이 가장 자연스럽다"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우와~ 디자인에 대한 감각이 있으신가봐요.
저는 저 건물을 사진 찍으면서도 어디에 포인트를 줘서 찍어야할지 난감했었거든요..
개조심 간판이 우리네 옛날보다 무지 쎄련됬네요. ^^
아마도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그 길을 걷고 있으니 저렇게 직감적으로 그려두어야 정확히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일 거에요.
요즘 곤님 포스팅에는 감성이 폭발하기 시작하는 거 같아요.
웃음 코드, 눈물 코드, 감동 코드까지 장착되어서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