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통화의 가치

in zzan4 years ago (edited)

전화 한 통화의 가치/cjsdns

새 아침이 밝아 왔는데도 비가 아직도 내리고 있다.
그제부터 인가 내리기 시작한 비가 봄비 치고는 끈질기게 내린다.

어제는 5월의 세 번째 일요일이었고 가정의 달 제일 중심에 있는 날이었는데 장마철 비 내리듯 쉬지도 않고 비가 온종일 내렸다.
봄비가 아니라 장마철처럼 비가 내리니 내 생각에 사람들이 나들이를 많이 안 할 거 같아 일요일이라 해도 길이 밀리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어머니의 친정 피붙이로는 오직 한분인 어머니의 언니, 내게는 세상에 오직 한 분뿐인 이모를 뵈러 갔다.

고령의 이모님은 헌인릉 아래서 화원을 하는 작은 딸네 집에 계시다.
길이 밀리지 않으면 시간반이면 가는 거리이니 먼 거리는 아니나 코로나를 핑계로 뵌 적이 오래되었다.
건강하실 때는 방일리 집에 와 계셨기에 자주 가서 뵈었고 가끔은 동생을 보러 오신다며 집 앞에서 버스를 타시고 나 갈게 하시면 청평 버스 터미널로 마중을 나가 집으로 모셔오곤 했다.
그런데 몸이 불편해지시고는 서울 딸네 집에 가 계시게 되니 우리도 자주 뵈올 수가 없었다.

인정 많고 늘 다정 다감한 이모는 내가 어릴 적부터 많이 돌봐주셨고 늘 함께 생활하는 이웃이나 한집에 사는 듯 그렇게 지내온 이모님이다.
결혼을 하여서도 사업을 시작할 때도 애들을 낳아 키울 때도 이모님 이모부님 덕을 알게 모르게 참 많이 봤다.
이모부님도 우리한테 참 잘하셨는데 벌써 돌아가신지도 이십 년이 다되어가는 듯하다.
정말 자상하신 분이었고 내가 제대 후 제일 처음으로 시작한 사업이 야채 과일 행상이었는데 그때 제일 큰 사업 도구가 리어카였는데 그때 그 리어카도 이모부님 것을 빌려서 시작했다.

이제 이모님도 구십이 넘어 많이 쇠약해지시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신다.
작년에는 돌아가시는 줄 알정도로 많이 편찮으셔서 병원신세를 많이 지셨다.

이번에 뵈오니 하시는 너무 쇠약해 지셨고 하시는 말씀이 7월에 있을 큰손자 결혼식 날자만 지나서 죽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며 그전에 죽으면 안 되는데 하신다.
그것도 다름 아닌 가족 모두를 상제로 만드는 일이라 그건 정말 아니라며 어떻게든 버텨보려 하신다고 말씀하시는데 부모란 끝까지 자식만 생각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가슴이 뭉클해지는데 말씀하시는 것도 너무 힘들여 보이시니 안타깝기만 했다.

곱기만 하던 이모님에게서도 야속한 세월이 많은 것을 뺏어가 버렸다.
코로나 19로 미루기만 하다가는 언제 뵈올지 모르겠다 싶어서 뵈러 가기로 하고 나서 뵙고 오니 잘했다 싶고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고 큰일 하나 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이모님에게 변변치 않은 용돈은 무슨 날이거나 때에 뵈면 드렸어도 사실 제대로 두둑하게 드려본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이모님에게 용돈도 두둑하게 드렸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 말처럼 어머니에게도 못 드려본 용돈을 드리고 왔다.

사실 오늘은 그냥 뵙기만 하는게 아니라 용돈을 드리러 간 것이 목적도 있었다.
애초는 이모님에게 드릴 용돈이 아니었으나 어떻게 하다보니 이모님에게 가게 되었다.

앞서 이야기처럼 실은 7월에 이종 조카가 결혼을 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엄청 가깝게 지냈던 이모집이라 사촌과도 친형제처럼 지냈다.

그러나 옛날 이모부님의 청으로 너는 뭐든 하면 잘되니 네가 집을 살 때는 나도 같이 하자 하시는 부탁에 이모부님 말씀이니 좋아요, 하고 한 것이 추후에 이모부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정리 과정에서 보통 문제가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사촌들 형제가 많다 보니 대화 상대도 이 사람 저 사람 되다가 나중에는 대학에서 법을 전공했다는 막내와 이야기를 하는데 안하무인에 가관이 따로 없어 보였다.

이야기의 전말은 집안 사정이니 할 것은 못되고 재산 앞에서는 친형제도 싸우는 세상이니 사촌이야 더 말할 나위 없는 것이고 처리를 깔끔하게 하기 위하여 매각을 추진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못볼것들 안 봤으면 하는 것들을 보았다.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고 나눔에서는 내가 좀 손해를 보면 되는 것이나 하나를 들어주면 둘을 들어줘야 하고 둘을 들어주면 셋을 들어줘야 하는 문제가 되다 보니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막말로 형제가 일곱이니 한 마디식 하면 나는 일곱 사람의 의견을 조율해야 했다.
그 의견 중에는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있어도 이모나 이모부님을 봐서 끝가지 참아야 했다.

아니 어머니를 봐서 참아야 했다.
나는 그때 내용 증명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 이종사촌 동생으로부터 받았다.
처음에는 다른 형제들의 위임을 받아서 일을 처리하는 막내가 책임도 있고 아직 어려서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두 번째 내용증명을 보내올 때는 오만정이 다 떨어져 뜯어보지도 않고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다.
도저히 일을 그렇게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결국은 상대 매수자에게 사정이 생겨서 늦어지는 잔금을 받기 전에 모든 것을 빚을 내어 원하는 대로 해주고 끝냈다.

부동산이란 것이 여러 사람으로 공동 명의가 되어있으면 생각하지 못한 돌발 변수가 많다.
어떤 행위를 하려 해도 은행일을 보려 해도 매각을 할 때도 모든 사람에게서 서류를 받아서 해야 하는데 아무리 협조를 한다고 해도 늘 특별한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여하간 당시 일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지만 삶의 회의를 많이 느낀 그런 시기였다.

그래도 원수로 지낼 수는 없는지라 잘 지내보려 해도 그런 일이 있고 나서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사촌들이 예전 같지가 않았다. 뭔가 데면데면해지는 느낌이고 예전 같은 정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내에게 늘 이야기를 했다.
이모님이 살아계신 동안은 서운해도 가급적 서운한 척하지 말자, 이모는 우리 부모와 같은 분이다 우리 애들도 이모집 문창호지 뜯어가며 키운 애들이다. 이런 이야기로 아내에게 이야기를 늘 했지만 실은 내게 아직도 남아있는 서운한 감정의 찌꺼기를 씻겨내는 소리였다는 생각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모님 이모부님 장손의 결혼이니 축의금을 듬뿍하자 아무리 많이 한다 해도 두 분을 생각하면 많은 것이 아니다라며 내 친조카들 결혼을 해도 못해본 액수의 돈을 축의금으로 내기로 결정을 했다.

그런데 며칠 전 아내가 어머니와 대화를 하던 중 어머니에게 슬쩍 축의금 이야기를 말씀드렸더니 하시는 말씀이 애야 그건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너희들 생각이 그렇다 해도 고맙지만 그건 아니다. 어제 이모와 통화를 해보니 '이번 어버이 날에도 찾아오는 것은 고사하고 전화 한 통화 없다'라고 서운해하시더라며 요즘 세상에 누구나 들고 다니는 전화로 전화 한 통화도 못하는데 하시면서 어머니도 많이 서운해하셨다고 한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다.
어머니 말씀대로 축의금을 3을 할 것이 아니라 2는 축의금으로 내고 1은 이모를 드렸으면 좋겠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맞아 그게 좋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잠시 후 아니지 그렇다면 1은 축의금으로 내고 2를 이모님을 드리자, 그리고 이모님에게 드릴 거라면 빨리 드리는 것이 좋겠다, 이런 생각에서 그럼 우리 하루라도 빨리 다녀오자 이렇게 된 일이다.

이야기가 비가 ㅡ왔다.
이모님을 뵙고 왔다, 로 간단하게 끝내려 했는데 길어졌다.

애초 이렇게 이야기가 길어질 것으로 봤으면 잘 생각하고 썼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나 이대로 마무리를 해야 할 거 같다.
한마디만 더하고 말이다.

어머니가 당신의 며느리의 이야기를 들으시고 그러니 너희도 힘들 텐데 정말 고맙구나, 그런데 이모가 걸린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으면 아마 우리는 어차피 마음을 낸 것이니 이모님에게 별도로 하나나 둘을 따로 드리고 축의금을 그대로 셋을 할 것이다. 그런데 전화 한 통화도 없다며 서운해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에 셋이 하나로 바뀌고 그 둘이 이모님에게 간 것이다.

전화 "한 통화 만"이라도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그런 일이다.

그나저나 고마운 건 아내이며 스팀이고 암호화폐이다.
자신의 친정 조카들 결혼식에도 우리 형편에 30만 원이면 큰 거예요, 하는 사람인데 시이모 손자 결혼에 거금을 선뜻 내겠다는 것 도 고맙고 또한 암호화폐가 아니었으면 스팀이 아니었으면 마음은 하고 싶어도 어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내도 고맙고 스팀도 고맙기만 하다.
하여 다음 달에 노총각 처 조가 결혼을 상주에서 한다고 어제 연락이 왔는데 그냥 쿨하게 한 장 하기로 했습니다.
스팀이 쭉쭉 커지면 더할 수도 있는데 좀 쉬어가는 느낌이라 살짝 아쉽기는 합니다.

스팀 짱 유저 여러분들도 결혼하면 초대해 주세요.
신사임당 님 모시고 축하하러 가겠습니다.
축시를 지어 낭송도 해드릴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이야기 하나 더하고 오늘 이야기 끝내겠습니다.
아이 출산하는 분들도 댓글이나 포스팅으로 알려 주세요.

산모에게 최고 품질에 ATOMY 영양제와 미역 등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포스팅하시면 내 글에 꼭 댓글에 링크 걸어주세요.

감사합니다.

2021/05/17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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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together with you 😎 #cjsdns

Interesante post @cjsdns
Saludos

가정의 달 맞나 봅니다.. 화기 애애한 마음 담아 갑니다..

어르신들께 잘 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전화 한통화가 왜 이리 어려운지 잘 모르겠습니다 ㅠㅠ

형제 여러분과 항상 선이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당신의 게시물을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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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post

Es increíble todo lo que puede significar una simple llamada. Su madre. La única hermana y la única tía en el mundo. Demás del buen consejo de todo lo que puede lograr una llamada es increíble.
Es un placer leerlo siemp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