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담수첩] 현충일을 맞아 어제에 이어서 마저 쓰는 군대 일기. 미소가 아름답던 내 후임들, 보고싶다.

in #kr-pen6 years ago (edited)

어느 집단을 만나 생활하던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군대에서 처음 깨달았다. 어느 위치에서 언제 만나느냐도 조금은 중요했다. 저 뺀질이가, 저 고문관이 내 고참이 아니라는 걸 가끔씩 깨달을 때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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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 여섯이 모이면 못 하는 것이 없다. 무서울 게 없다. 군생활 마지막 전술 훈련 중 24인용 텐트 치고 두돈반 뒤에 짱박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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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별때 내손안에 들어올 뻔 했던 부식차는 상병이 되어서야 내차가 되었다. 다행이었다.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라는 고생을 못해보고 편한 보직부터 시작했다면 고참들의 눈칫밥, 후임들의 인정도 못 받고 군생활을 마쳤을 것이다.

군 생활 내내 군수과 배차가 많았다. 군수과는 부대 살림살이를 관장하는 곳이다. 먹는 것, 입는 것, 각종 유류를 보급수송대대에서 받아온다. 군수과 계원은 견적내고, 운전병은 차를 몰아 수령해온다.

부식차를 처음 잡았을 때 같이 동승하던 군수과 계원은 말년병장이었다. 부사수는 이제 막 전입 온 신병. 인수인계에 필요한 시간도 부족했지만 그보다 신병이 어리버리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일처리는 느렸고, 더 큰 문제는 예산을 잘 관리 해야 했는데...큰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덕분에 부대원들은 맘껏 배불리 밥을 먹었다. 이러다간 한 겨울에 배를 쫄쫄 굶게 되고 놈은 부대 예산 관리 제대로 못해 영창에 가게 될지도 몰랐다.

내가 군수과 계원인지 운전병인지 헤깔렸던 기간은 꽤나 오래되었다. 사수도 아니고, 군수과 사정도 잘 모르는 내가 매번 다그쳐도 나아질 기미가 안보였다. 혼나도 매번 베시시 웃는 얼굴에 욕을 퍼부을 수도 없었다. 녀석은 내 덕분에 영창 안가게 된 걸 알랑가 몰라. 그나저나 나의 3112호 너무 보고싶다. 때깔보소...매일 세차해준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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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때부터 후임이 참 많았다. 수송소대 30여명 중에 10명이 후임으로 있었다. 대대 전술 훈련을 마치자 동반입대한 친구 둘이 전입 와 있었다. 한놈은 뺀질했고, 다른 녀석은 순둥이었다. 뺀질 한 놈은 후반기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운전을 잘해 운전병이 되었고, 순둥이는 정비 관련 대학에 다닌다는 이유로 정비병이 되었다.

뺀질이 놈은 말 끝마다 지는 법이 없었다. 요리 조리 능글맞게 잘도 피해갔다. 나는 나름 착한 선임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갈구는 법도 없었고, 단 한번 집합을 거는 일도 없었고, 누구 한명을 따로 불러내 쪼인트를 까지도 않았다. 그런 나의 나사를 뺀질이 놈은 살살 풀어댔다.

하루는 같이 위병 경계 근무를 서게 되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나 말싸움이 붙었다. 짬밥은 세달 차이밖에 안나도 나이는 두살 차였다. 그래 나이가 군대에서 무슨 소용인가. 갖은 수를 써도 놈을 당할 수 없어 열불이 났다. 이래서 군대에서 사고가 나나 잠시 생각했다. 군생활 희노애락을 그놈과 함께 했다. 여전히 '형 머하요?'하며 연락오는 유일한 놈이다.

순둥이는 성격도 유순한데 귀엽기도 너무 귀엽게 생겼다. 모든 고참들의 이쁨을 받았다. 정비의 정자도 몰랐지만 실력은 군수과 계원과 다르게 가속도를 붙여갔다. 가끔씩 뺀질한 친구놈을 둬서 사고도 쳤지만 큰 사고는 내가 전역한 후의 일이었다. 휴일에 수송관실에서 가스버너에 라면을 끓여먹다 홀라당 다 태워먹었다. 영창에 갔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둘은 광주 출신이었다. 전역 후 광주 갈 일 있으면 셋이 같이 보자고 약속했었다. 녀석들이 전역하고 일년 후 뺀질이 놈에게 연락이 왔다. 순둥이가 죽었다고. 오토바이 타다 그랬다 했다. 왜 이제서야 연락하냐고 다그쳤다. 그래, 정신 없었겠지. 몇 일 후 바로 광주로 내려갔다. 차디찬 돌덩이에 담겨있는 녀석과 마주했다. 꽃혀 있는 사진 속에서 여전히 밝게 웃는 얼굴로 형을 맞이해줬다. 이 못난 자식. 전역 날 껴안으며 배웅해주던 녀석의 온기가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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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 둘 후임으로 밖에서 제대로 정비를 배우고 온 녀석이 들어왔다. 녀석이 들어온 후 내 맞고참은 정비에서 손을 떼었다. 내 고참은 위의 뺀질이보다 더 한 뺀질이었다. 상병이 채 꺽이기도 전에 요리 조리 숨어 일손을 놓았다. 어디갔지하고 찾으면 MB(엠뷸런스)에 모포 깔고 자고 있었다. 그래도 이해했다 나는. 놈이 일,이등병 때 얼마나 고생한지 직접 눈으로 지켜 보았으니.

정비 잘하는 후임 녀석은 정비에 있어서는 간부에게도 지지 않았다. 자신감이 충만했다. 그런 자신감은 정말 후임이지만 부러웠다. 내차의 정비도 항상 녀석에게 맡겼다. 수송부에서도 철두철미했지만 막사에 올라와서도 자기 관리에 철저했다. 일병이 꺽이자 나에게 물어왔다. 근력 운동을 해도 되겠냐고. 음...그래. 내가 밖에 운행나가서 헬스 장갑 하나 사다줄게. 다른 고참들 눈치보지 말고 맘껏 해라. 내가 카바쳐준닷!

상병을 달자 또 물어온다. 단백질 보충제 사서 먹어도 되느냐고...하아, 이 끝장을 봐야 하는 성미. 그래 니 알아서 해라. 그 뒤로 부대에 단백질 보충제 열풍이 불었다. 쥐도 하나 둘 씩 늘어났다. 잘 때마다 침상 밑에서 쥐들의 저녁식사가 펼쳐졌다. 다음 휴가 때 녀석은 쥐약을 사서 복귀했다. 그래, 그래야지.

전역 후 연락이 왔다. 순둥이 녀석을 보낸지 얼마 되지 않았었다. '형, 나 사고 났어' '뭐 하다가?' '오토바이 타다가...' '이런 망할 것들...' 퇴근길에 차가 와서 박았다는데 혼낼 수도 없었다. 녀석이 망설이며 건넨 뒷말에서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 다리 하나를 잃어버렸다...' 프리미엄 수입차 정비 업체에 취직했다며 자랑했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일까. 회사 동료들의 도움으로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며 수화기 너머로 웃어 보였다.

경북 영천에 사시는 고모를 뵈러 가는 길에 녀석에게 연락했다. 경산에 들릴테니 얼굴 한 번 보자. '형 내가 갈게' '니가?' '나 운전함' '이 망할 XX' 온다는 데 말릴 수 없었다. 내가 말린다고 들을 놈도 아니었다. 여전히 밝은 얼굴로 웃으며 반겨준다. 나의 시선은 녀석의 웃는 눈을 바라보고 자연스레 아래로 향했다. 오른쪽 다리 무릎 아래가 허하다. 천진난만한 녀석의 웃음때문에 눈물도 쏙 들어갔다. '왼발로 운전해서 왔냐? 니도 참 대단하다...' 전역하고 가장 많이 본 녀석. 요새는 잘 지내려나. 연락 한번 못해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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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가 아름답던 녀석들, 좌측부터 뺀질이, 철두철미한 놈, 순둥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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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대 내 한달 바로 밑의 후임은 배차계원이었다. 수송부 행정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각종 서류 업무와 사무일을 도맡아 하고, 운행 나갈 차량과 운전병들을 선별하여 차량을 배분하는 일을 했다. 지금도 녀석은 꿈에 나온다. 꿈으 내용은 말년까지 배차를 내달라는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것. 꿈과 현실은 반대다. 전역 사흘 전까지 나를 운행을 내보냈었다. 부식차는 이미 전역 두달 전에 놓았으니, 수송부 휴게실에서 tv나 보며 맘껏 말년의 행복을 보낼 수 있었다.

녀석은 역시 믿을만한 운전병은 나뿐이지 않느냐고, 웃지도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또 배차를 냈느냐는 내 말에 대답했다. 나도 싫지는 않았다. 운전이 좋았고, 바깥 구경을 하는 것이 좋았다. 녀석 덕분에 레토나를 끌고 '국군 유해 발굴단' 배차를 말년에 자주 나갔었다. 최전방 GP 전 까지 가서 북한 땅도 바라보았다.

부식차를 맡았다는 이유로 포대장은 녀석에게 분대장을 위임했다. 멋있어 보이는 초록색 견장을 달고 싶었지만 귀찮은 일이 많았다. 부대 밖에 있는 일이 많은 나보다 행정반을 지키는 녀석이 더 어울렸다. 아이들도 잘 챙겼다. 고참인 나도 잘 챙겨주었다. 잘 웃지 않았다. 츤데레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녀석이었다.

내가 전역할 때 선물이라며 고개를 돌린 채 전역모를 건네주었다. 마지막 훈련 때 함께 했던 사진도 같이 주었다. 운행도 안나가는 녀석이 동기에게 부탁해 전투모에 오바로크를 치고 필름도 현상했구나. 이런 정내미가 너에게도 있었다니, 그래도 나는 다 알았지. ㅎㅎㅎ잘 살고 있는 것이냐, 얼굴 한 번 못보고 연락 한 번을 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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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한지 1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시절이 그립다. 전역일이 8일이 줄어 6월 초가 되었어야 할 제대일은 5월 말이 되었다. 그만큼 달력에서 X를 그어야 하는 날 수가 많았다. 언제 오는 것인지 기다려도 오지 않던 전역날이 되었다. 하필이면 내가 전역하는 날 국지도발 훈련이라니...기상시간이 되어 행정반에선 여지 없이 파스트 페이스(Past face)를 외치고, 후임들은 전쟁이라도 난 마냥 전투화를 신고 침상에 올라 군장을 싸고 위장크림을 발랐다. 국지도발이 그런 훈련이다. 모두 2지대(대대 경계)에 투입되었다. 나를 배웅해줄 틈이 없었다.

나는 아쉬운 마음에 집에 안가고 산속에서 보초를 서는 후임들 곁에 머물며 반나절을 보냈다. '형 집에 좀 가, 왜 안가고 여기 있냐' '야, 자정 안넘었어. 아직 니 고참이야 인마'하며 하이바를 툭 쳤다. 점심 때가 되어서야 훈련이 끝이 났다. 수송부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간부들께 인사를 드리고,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취사반 아이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식당 너머에 있던 포대로 건너가 전 행보관이었던 간부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당직 설 때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다시 수송부 연병장으로 내려왔다. 부사수가 운행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하던 일이었다. 보급수송대대에 3종 수령 간다고 했다. 어리버리 군수과 계원도 있었다. '야, 형이 말한 거 알지? 잘해라...' 1년간 동승했던 군수보급관에게 원통까지 바래다 달라고 했다. 두돈반 짐 칸에 올랐다. 운전석을 향해 한마디 했다. 운전 살살해라, 형처럼.

원통까지 가면서 수없이 넘나들던 고개를 바라보았다. 운전하며 도로 포장 상태는 이미 내 머리속에 다 들어가 있었지만(계란 깨먹으면 큰일 남...한번도 깨먹지 않았다), 놓치고 가는 풍경들이 있지 않은지 고개를 연신 돌리며 눈으로 담았다. 언제 또 오게될까. 후에 설악산을 가며 원통까지는 가보았지만 부대 근처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나니 너무도 그립다.


산으로 둘러 싸인 분지였던 부대는 덥기도 엄청 덥고 춥기도 엄청 추웠다. 에어콘도 없는 옛날 막사에 30명이 주르륵(반대편까지 하면 60명) 나란히 누워 서로 부대끼며 잘 수밖에 없었다. 30개의 매트리스가 깔리는 자리에 38명이 넘었을 때는 매트리스 2개에 3명이 끼어 자야 했다.

훈련은 3개월마다 있었다. 힘든 몸과 마음을 의지할 곳은 옆에 자는 놈들 뿐이었다. 내가 선택한 인연도 아닌 곳에서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난 것 같다. 전역하고 몇 년 동안은 일년에 한번씩은 모였는데 이제 먹고 살기 바쁘고 각지에 흩어져 있다보니 만나기가 쉽지 않다. 언제 한번 다시 모여보려나. 그립다 녀석들.


(전역 전 외박에서 마지막 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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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건 모르겠고 군인이 너어무 잘 생기셨음 ㅋㅋㅋㅋ

몸과 마음이 가장 건강했던 시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ㅎㅎㅎㅎㅎ감사합니다!

이런글보니 저도군대있을때생각이 새록새록 나네요^^

어제가 마침 입대날짜여서 생각나서 적어봤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충석!! 12사단~ 나간다!!
12사단~~ 용사들!!

3대대 을지부대, 번개대대입니다~

태백산 큰줄기 우리의 의지다! 보아라 우리의 모습을 우리는 억세고 늠름한 용사들! 오랜만에 훈련용 수첩을 꺼내들었네요. 이렇게 선배님을 뵙다니 반갑습니다!

서화리 66포병대대 출신입니다. 동계동진지 근처입니다~지명은 잘 생각나질 않지만 89포 근처 부대랑 전방 부대까지 가본 적이 있습니다. 을지작전하느라 수고가 많으셨겠네요!

6개월 GOP 인줄 알았지만..
10개월 있었네요. 12사단은 풀보죠!!
군생활이 전역 후에도 많이 도움이 되네요.

내가 그 지옥 같은 곳에서도 살았는데...

이러면서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ㅎ

운전병이라 3군단 예하 사단 몇군데 가봤는데 12사가 제일 열악했어요...저도 생각해보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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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군대에서의 기억을 지긋지긋해 하던데 ㅎㅎ 축구하는 모습도 넣지 그러셨어요. 군대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짓고 그때 그사람들을 그리는 모습이 참 보기좋아요ㅡ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그런가봐요. 좋은 경치는 덤이구요. ㅎㅎㅎ축구이야기는 너무 길어 뺏어요.
자대배치 받자마자 두골 넣고 대대체육대회때 결승골 넣어 휴가증받았다는 이야기를 쓰려면...벌써 길어지잖어요. ㅎㅎㅎ

군대에서 정말 스토리가 많고 .. 좋은 사람들 좋은 인연을 만드셨네요
저는 어느새 다 까먹은(?) ...

군대가 재미있었나 봅니다. ㅎㅎㅎ거기 있을 때는 언제 벗어나려나 했는데 이제는 가끔씩 그러워질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많은추억이있군요....! 보팅맞팔하고가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몇 백밤을 함께 지냈으니 오죽할까요..
쇠 뿔도 단김에 빼라고 이 기회에 살짝 연락하셔서 밋업 함 하셔요..ㅎㅎ

다들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쉽지 않을 것 같아요. ㅎㅎㅎ
제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누구 한명 결혼하면 모이겠죠. ㅎㅎㅎ

군대 얘기 하자면 날새는 줄 모르죠^^
30개월 군생활 얘기를 30년 한다는 ㅋㅋ

그렇죠 ㅎㅎㅎ30개월이시라니
저는 군생활 8일 줄었다고 친구들에게 엄청 놀림 받았었는데요...ㅎㅎ

가슴이 철렁철렁하네요.ㅠㅠ

건강하세요~

각자 좋은 곳에서 잘 지내고 있을겁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