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세이] 독립책방을 다녀와서
오늘은 점심을 먹고 소화겸 동네를 휘적휘적 걸어다녔다. 불볕 더위도 이제는 가시고 걷기 참 좋은 날씨였다. 골목골목을 지나며 평소에 놓친 모습은 없는지 관찰했다. 초등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맞는 떡볶이집,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같은 아담한 카페, 새로 단장한 국수 가게 등 소소한 골목의 모습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유독 작은 가게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가게의 통유리 너머로 오밀조밀하게 진열된 책들이 내 무의식을 사로잡은 모양이었다. 가까히 다가가 보니 독립책방이었다. 계획에 없던 일이지만 걷기도 귀찮아 지려던 차에 들러보기로 했다.
책방은 주인장의 취향에 따라 선정된 독립출판 서적을 팔고 있었다. 한 가지 주제로 모아질 수 있는 수필, 시, 단편집들이었다. 사실 서점을 한 바퀴 둘러보니 그동안 내가 관심을 갖는 종류의 책들은 아니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관심이야 새로 가지면 되는 것을. 그렇게 이 책에서 저 책으로 끌리는 책을 찾아 눈을 돌려 보던 중, 책방 주인이 직접 쓴 책으로 보이는 책을 하나 발견했다. 책방을 운영하며 겪은 일들과 감상을 엮어낸 책이었다. 안 그래도 장소에 대한 궁금함이 있었는데, 슬쩍 견본을 집어들어 자리에 앉았다.
글쓴이의 솔직하면서 쉬운 언어로 쓰인 책은 술술 읽혔다. 독립책방 탄생의 기원, 책방을 운영하며 만났던 진상 손놈, 가게에서 키우게 된 고양이, 각종 행사 이야기 등 어느새 나는 앉은 자리에서 책을 모두 읽어 버렸다. 공간에 얽힌 이야기를 해당 공간에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책방의 벽을 직접 페인트칠했다는 대목에서 책방의 벽을 살피어 두리번 거리게 되었고, 글쓴이가 10센치의 팬이라는 대목에서 가게의 배경을 채우는 노래가 10센치의 노래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손을 살짝 깨물은 고양이도 책에서 막 튀어나온 듯했다. 작가의 북토크에 모인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았던 자리들도 보였다.
흥미가 돋은 나는 다시 책방의 책들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나는 문득 ‘아마추어’라는 말이 떠올랐다. 여기서 아마추어는 엉성하고 부족함이라기보다 자유로움을 뜻하는 단어였다. 엉성하게 프로 작가의 흉내를 내보려는 아마추어리즘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독자가 들어주었으면 하는 이야기를 하는 아마추어리즘이었다. 약간은 어설프더라도 그 어설픔마저 생동감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 버리는 자유로움이었다. 상업출반에서 수익성에 얽매여 나올 수 없었던 목소리들이 있었다. 비유하자면, 언제나 신작 영화가 재미있다고만 말하는 일요일 아침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보다가, 자신의 솔직한 비평을 담은 유튜브 채널을 본 느낌이랄까.
또 가만보니 이 공간은 단순히 책만을 파는 공간이 아니었다. 작가와의 만남이 주선되고,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만담이 오가는 공간, 체험을 공유하는 체험을 즐기기 위해 모일 공간으로서 책방이 보였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떠들고자 하는 욕구가 반드시 존재하는데, 책방이 이 욕구를 채워줄 중재자로서 자처하는 것이었다. 이는 앞서 책들에서 발견한 자유로움를 소비하는 독자들의 새로운 방식 같아 보이기도 했다. 아무리 상업성에 얽매이지 않는다 하여도 생계가 유지되지 않는 글에 지속성이 있을 수는 없을 테니, 작가를 지원할 새로운 방법으로 나쁘지 않아 보였다. 혹시 앞으로 온라인 매체와 결합하면 이같은 소비의 방식이 더욱 강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까지 책방을 감상하고 언뜻 밖을 보니, 밖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선 길이었는데,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앉아 있었던 것이었다. 얼른 현실의 감각으로 돌아온 나는 양심상 다 읽어 버린 그 책을 구매하고 서둘러 책방을 나섰다.
오늘 다녀온 독립책방은 어떤 의미였을까? 이제 글의 시대는 저물고 영상의 시대가 왔다고 하는 마당에 독립책방은 글을 매개체로 사용하고 있다. 유튜브를 선봉으로 영상 콘텐츠가 대세가 되었고, 페이스북도 영상 콘텐츠를 장려하고 쏟아내고 있는 현실이다. 독립책방의 존재는 현재의 추세를 역행하는, 글의 마지막 항쟁에 불과할까. 아니면 사람들이 글을 소비하는 방식을 바꾸어, 글의 생명력을 이어갈 새로운 문화의 마중물이 될까. 개인적으로는 글을 좋아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후자의 경우가 되길 희망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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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물은 다루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 있기에 저도 후자를 지지합니다^^
다양성이 좋지요ㅎㅎ
제가 한국에서 자주 가던 카페도 물론 진짜 맛있는 케익을 팔기도 했지만, 주인 두 분만 일하는 곳이라 10년간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던 점도 매력이었어요.
다만 서점은 그곳에 머무는 모두가 책을 살 것이라는 보장이 없어서 아쉽네요.
입에 들어거는 것보다 싸지만 책 사는걸 꺼려하는 문화도 개선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읽었으면 사야죠ㅋㅋㅋ
아마도 P님이 관심 가지고 계실 주제네요.
P님? 피터님인가요ㅎㅎ
아마 곧 오실 듯요. ㅎㅎ
글이 저 뒤로 뭍혔나 봅니다ㅋㅋㅋ
감성플랫폼emotionalp님을 지칭하신듯
저도 독립책방같은 이런 소규모 사업장이 계속 많아질거라고 기대해봅니다. on&off, 작지만 소박하고 소통과 가치에 기반을 둠, 먹고 살정도만 벌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로운 영혼의 터전이되게, 어찌보면 모든 분야에 있어서 이러한 형태가 많아지는 것이 탈중앙화가 아닐까도 생각되지요. 경쟁-driven이 아닌 가치-driven?
제 마음속에 피터님이 있었나봅니다ㅎㅎㅎㅎ
저도 p는 피터님일줄ㅋㅋ
박수를 보냅니다.
당연한거지만 잘 안하시는분들도 많기에.
그리고 그 독립책방은 주인장이 참 사람스럽네요 ^^)
감사합니다ㅎㅎㅎ
진상 손놈이라니..
ㅎㅎㅎ
저 역시 후자의 경우가 되길 바랍니다
저는 하지 못 하면서 누군가는 해주었음 하는 일..
그 멋짐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존재하는 듯해요
그러니까요ㅎㅎ 그들을 응원하면서도 저 자신은 속물이라 못할 것 같습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동네 책방들끼리 뭉쳐서 작가들을 초빙해서 만남을 이어가는 그런 프로젝트들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요즘 아마존의 강세로 이북 또는 배송받는 경우가 많아 책방을 잘 안가니 새로운 만남의 장으로 변한다는 뉴스 접했는데 한국에서도 그렇게 시도하나보네요 :)
팔로우 하고 갑니다~ :)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도인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온라인처럼 상호교류를 이어가는군요. 삶에 여유가 생기고 문화 전반에 대한 소비가 충분히 커진다면 10000명이 아닌 100명만을 위한 컨텐츠들로도 생계를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저도 그러한 시대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마구마구 응원해주고 싶은 책방입니다.
우리 동네에도 그런 책방 하나 있었으면....
이런 책방이 여기저기 새로 생기고 있긴한데, 아직은 주로 서울에 몰려있나 봅니다.
오 ㅋㅋㅋ 독립책방을 들어갔는데 사장님이 쓴 책이 있었다니 ㅋㅋ 공간에 속해 있으면서 그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 더 흥미롭고 신기할 것 같아요.
맞습니다ㅎㅎ 막 여기저기 둘러보게 되고, 또 신기하고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