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용 장군의 국경선에 밤이 오다) 6 압록강 뱃사공으로부터 중공군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 보았던 압록강 뱃사공 영감을 만났다. 60 중순의 나이였지만 키가 후리후리하게 크고 기력이 좋았다. 이 영감이 중공군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1950년 10월 20일 중공군 5명이 말을 타고 만포진에서 위원을 거쳐 신도장을 통과했다는 것이다. 5명의 중공군은 창성으로 연락차 가는 길이라고 했으며 만포진에는 10월 17일부터 3일간 야음을 타고 만주에 있던 중공군 대군이 뗏목다리로 압록강을 넘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포진 일대에는 수만 명의 중공구이 있으며 김일성은 강계에 있다는 것이다.
뱃사공과 헤어져 신도장 분주소로 갔다. 북한군들은 급하게 철수하느라고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했다. 서류들은 그대로였고, 고위직의 가족이 사용한 듯한 씽거 재봉틀이 분주소 마당에 아무렇게나 내버려져 있었다. 경비전화도 그대로 있었고 전화선도 절단하지 않고 그냥 있었다. 그래서 위원 내무서와 각 분주소와의 통화를 모두 엿들을 수 있었다.
이대용은 그들의 통화를 엿들었다. 그들은 국방군 1만여명이 신도장에서 뗏목을 끊고 위원읍으로 진격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당시 제1대대의 병력은 모두 700명에 불과 했지만 북한 내무서원들은 1만명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무서원의 전화를 엿듣고 있던 이대용은 내무서장에게 자신이 국군 이대위라고 밝히고 항복하라고 권유했다. 내무서장은 죽이지 않느냐고 물었고 이대용은 생명은 보장한다고 확약을 하고 3일간의 말미를 주겠다고 말했다.
마침 임부택 연대장이 압록강을 찾아와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그 사진을 찍은 사진사가 후퇴중에 행방불명이 되어 압록강에서 찍은 사진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연대장에게 압록강 뱃사공이 말한 중공군에 대한 첩보와 위원 내무서장과의 통화내용을 보고했다. 오후 12시 40분경 연대장과 대대장은 신도장 분주소를 떠나 초산읍으로 향했다.
중대지휘소에서는 정정훈이 대대에서 특식으로 보급된 불고기를 굽고 있었고 박태숙은 다른 반찬을 만들고 있었다. 정정훈은 키가 165cm 정도였고 경기도 파주군 임진면에서 태어났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오빠들이 학비를 대주었다. 말이 없는 편이었고 다소 감상적이었다. 박태숙은 정정훈과 대조적이었다. 키도 작달막하고, 얼굴도 동그랗고 항상 웃는 낯이었다. 서울에는 부모와 오빠 그리고 동생과 같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압록강에 나가 고기를 잡았다. 뱃사공은 압록강의 전설을 들려주었다. 장장 900km에 달하는 이 압록강의 수원인 백두산 천지로부터 실오라기 같은 가느라란 약수가 황해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 약수를 한 방울이라도 마시면 불로불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수류탄을 더져서 물고기를 잡았다. 박태숙과 정정훈 그리고 같이간 홍하사는 물고기를 건져 바구니에 담았다.
강변에서 북한군 여자 의용군 포로들도 빨래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적대적이기도 하고 공포심도 있었으나 그 동안 많이 변해서 협조적으로 변했다. 이대용이 나타나자, 그들은 거수경례를 하면서 깔깔거리고 웃어댔다.
이대용은 불편한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웃으면서 “없어요”라고 했다.
국경선에 밤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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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에서 고기잡을 날이 왔으면... 상상좀 해보았네요.
글 읽다보니...
북한에서 루어낚시 한번 해보고싶어지는군요ㅎ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개인사 까지 정말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군요.
대단하네요..
소소한 에피소드가 흥미롭습니다.
수류탄 던져서 물고기 잡았다는 이야기가 여기서 나왔나보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