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 덜어 내기
하루만 더 내렸으면 했던 비는 끝내 오지 않았다.
하늘만 믿고 물을 주지 않은 채 심은 옥수수 모종들이 갈증이 난다며 아우성이다.
시원하게 한 줄기만 쏟아졌어도 괜찮았을 텐데 현실은 이슬비처럼 내리는 시늉만 하더니
이내 해가 쨍하게 떠버렸다.
지난 수요일 오후까지만 해도 밤새 비가 제법 올 줄 알았다.
당시 기상청 예보로는 목요일 오전까지도 비 소식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 비구름은 우리 동네만 쏙 피해 간 모양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밭으로 향했다.
예초기로 풀을 베어내기 위해서였다.
시작을 해야 매일 조금씩이라도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적거리다 보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테니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섰다.
예초기 날을 어느 것으로 쓸까 고민하다가 이번에는 날이 세개이며 접히는 삼날을 쓰기로 했다.
밭둑을 돌리며 생각했다.
기름이 떨어져 시동이 꺼지면 오늘은 그만하자,라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기름이 오래갔다.
한참이 지나서야 마침내 기름이 떨어져 엔진이 꺼졌다.
그래, 이제 집에 가서 쉬자,라며 예초기를 벗어놓고 밭을 쭉 둘러보았다.
앞서 심은 녀석들은 다행히 뿌리를 내린 것 같다.
하지만 지난 화요일과 수요일에 심은 모종들은 하늘을 너무 믿은 탓인지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아니, 일기예보를 너무 믿은 내 탓이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옥수수 모종이 타 죽을 것만 같았다.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우선 급한 대로 물을 주다 왔다.
점심을 먹고 다시 밭으로 가 남은 모종들에게도 물을 마저 주어야겠다.
목마른 자에게 물 한 모금 건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그게 비록 작물일지라도 그렇게 생각한다.
점심을 먹고 다시 밭에 갈 생각이다.
기분 좋게 일을 하러 가야 한다.
기껏 정성으로 키워 심은 모종들인데 아우성치게 그냥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가자!
옥수수 밭으로...
2026/05/31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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