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그리며, 잘 사는 법을 묻다
한때는 은행에 꼬박꼬박 대출 이자를 내는 것이 곧 국가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고 믿었다.
빚은 성실함의 증표였고, 이자는 내 자산을 늘리기 위한 생산적인 비용이라 생각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
그렇게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온 덕분에 나름 어느 정도의 자산도 마련할 수 있었기에 이자 납부는
내 나름의 자부심이자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다는 긍지도 있었다.
마치 세금을 내면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생각이다.
하지만 세월은 무정하게 흘러 어느덧 나이가 들었고,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수입은 예전 같지 않거나 고정적이며 임대료가 잘 안 들어오다 보니 대출 이자라는 고정 지출은 이제 묵직한 부담으로 느껴진다.
매달 날아오는 이자 고지서는 ‘성실함의 증표’가 아닌 ‘일상의 숨통을 조이는 족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경제에 이바지한다는 낭만적인 생각은 점차 사라지고 이자 상환이라는 현실적인 압박만이 남았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버티는 삶’이 아닌 ‘편히 사는 삶’을 선택하고 싶어진다.
평생을 경제적인 목표를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였다면, 이제는 남은 인생을 위해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싶다.
과감히 규모를 줄이거나 대출을 정리하여 이자 부담 없는 생활을 향해 나가야 할 거 같다.
노년의 삶은 빚의 무게가 아니라 여유와 평온함으로 채우고 싶다.
재산의 규모를 줄이는 것이 퇴보가 아니라, 더 건강하고 내실 있는 삶을 위한 전환임을 알게 된다.
이제는 다른 사업 확장보다는 애터미 파트너 성공을 위한 일만 하고 싶다.
젊어서 돈 벌면 꼭 해야지 마음먹었던 엔절 투자 사업을 애터미 파트너의 성공을 돕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그런 가운데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면 그게 잘 죽을 수 있는 길이란 생각이다.
사람은 태어나므로 반드시 갖게 되는 의무가 죽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을 한다.
하여 잘 죽는 게 잘 살아야 가능한 일이다.
어머니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삶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순간 어머니처럼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거 같다.
요즘 생각하기를 어머니는 잘 사는 방법만이 아닌 잘 죽는 법도 알려주시며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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