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in #steem2 days ago

설악에 애터미 센터를 내려고 이국장이 열심이다.
나는 그 열심의 보조자이며 핵 에너지이다.
애터미 센터를 낸다는 것이 세월이 갈수록 더욱 어려워진다.
내고 싶다고 아무나 무조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갈수록 규정이 자격요건이 까다롭게 간다.
지난해까지는 그래도 수월했다.
문지방이 조금은 낮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무척 많이 강화되었다.
그래서 쉽지 않은데 추진하다 보니 일단 가장 어려운 고비는 넘겼다.
이제 마지막 단계만 넘어서면 된다.
그 마지막 단계가 선정된 입지에 부동산 계약을 하고 회사에서 요구하는 조건의 맞게 시설을 갖추고 상세한 도면을 그리고 내용을 보고해야 한다.
그러면 현장 검토 후 합격이 되면 정식으로 애터미 센터 코드가 발급된다.
그렇게 되면 정식 애터미 센터가 설립되는 것이다.
하여 오늘도 선정된 건물에 가서 어떻게 공사를 해야 할지를 연구해야 한다.
큰 공사는 아니지만 내부 칸막이와 수납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이 누구를 위하여 센터를 설립하는가 생각하니 떠오르는 생각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이다.
소설을 젊어서 읽어 본 듯도 하고 영화도 봤지 싶은데 제목 외에는 생가 나는 게 없다.
모르니 찾아보자 하고 찾아보니 헤밍웨이의 소설보다 영국 성공회 신부 존 던이 병과 고통과 건강을 주제로 쓴 기도문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차용을 해온 것이라 보면 맞을듯하다.
읽어보니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린다는 마지막 구절이 마음속으로 들어와 앉는다.
그렇다, 종소리를 듣는 모두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 것이다.
애터미 센터도 누구를 위하여, 에 함께 하는 모두를 위하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실이 또한 그렇다.

존 던의 기도문 'Meditations 17'의 구절

어느 사람이든지 그 자체로 완전한 섬은 아닐지니,
모든 인간이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또한 대륙의 한 부분이라.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간다면
유럽 땅은 또 그만큼 작아질 것이며,
어느 곶이 그렇게 되더라도 마찬가지이고,
그대의 친구 혹은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렇게 되더라도 마찬가지니라.
어느 누구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를 감소시키나니,
나라고 하는 존재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린다.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If a clod b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y were,
as well as if a manor of thy friend's or of thine own were:
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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