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 같은 생각
윤슬 같은 생각
숨 가쁘게 달려온 아침
우체국 차가운 셔터 문은
시간의 벽이 되어 갈 길을 막아서고
열리기를 바라는 이십 분의 기다림은
올여름 치열했던 초록의 쉼표가 된다.
오늘 떠나보내는 작은 상자는
내 뜨거웠던 여름날의 종착역이자
강원도 찰옥수수 밭의 마지막 인사.
이 뚜껑을 닫으며
한 계절의 막을 내린다.
봄날의 시작은 가시밭길이었다.
씨앗을 구하지 못해 텅 빈 마음
지난해 절반도 못 미친 반쪽짜리 밭에
불안한 희망으로 심었던 낯선 종자들.
마음 졸이며 바라보던 걱정의 나날들.
오늘, 마지막 껍질을 벗기던 순간
대지는 뜻밖의 기적을 건네주었다.
설탕 한 스푼 넣지 않았어도
꿀을 머금은 듯 입안 가득 터지는 단맛.
며칠 사이 볕을 받아 여문 대지의 선물.
이 달콤한 위로를 안고 서 있으니
우체국 앞 지루한 기다림마저 달다.
상자 가득 채운 백옥 같은 알갱이들은
수술대 위를 지나온 소중한 이에게 보낼
정성 어린 응원의 알약들.
작년의 그 맛을 잊지 못해
아픈 몸으로 옥수수를 찾던 그 목소리.
그리운 마음을 가득 담아
가장 튼실한 놈들로만 골라 담은
나의 살아있는 마음의 편지.
내일이면 도착할 초록의 전령사여.
무더운 배송길에도 상하지 말고
밭의 숨결 그대로 온전히 전해지기를.
입안 가득 퍼지는 여름의 향기로
지친 몸과 마음에 새 살이 돋아나기를.
그 한 입의 달콤함으로
잠시나마 아픔을 잊을 수 있다면
땀 흘린 농부의 계절은
그것으로 눈부신 축제가 되리라.
철컥, 마침내 열리는 시간의 문.
마음의 기도를 상자 틈새로 밀어 넣으며
당신의 건강한 내일을 향해
소리 없는 만세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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